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ly·August, 2016

가난해도 부족 없는 여행

Editor. 이수언

줍는 것을 좋아해서 별명은 거지대머리.
거지대머리파 두목으로 활동 중이며 이것저것 많이 주웠지만 아직 주머니가 비었다.

『내 방 여행하는 법』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유유
『주거 정리 해부도감』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더숲

최근 해외로 가고 싶어 하거나 해외로 가 있는 지인들이 있다. 지인 1. 이번 여름 휴가를 같이 가자고 했다. 여행, 안 좋아할 리 없지만,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일단 좋다고 얘기한 뒤 한강 수영장이나 가자고 말하려던 순간, 웬걸, 아르헨티나는 어떻겠냐고. 지인 2. 최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과 실업급여로 새로 만난 짝과 함께 곧 일본 여행을 갈 것이라고. 지인 3. 방학을 맞아 독일 숲(왜?)에 갈 것이라고. 지인 4. 워킹홀리데이로 이탈리아에 가서 젤라토를 먹고 있다고. 지인 5.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외국 갤러리에서 구경하고 있는 본인 옆모습으로 변경했다는. 이런 모습들을 보니 해외여행에 대한 근거 없는 로망이 하단전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버거운 노동자에게 해외여행은 사치다. 그렇게 단념한 찰나에 운명적으로 이 책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내 방 여행하는 법
저자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1790년 어떤 장교와 결투를 벌이다가 42일간 가택 연금형을 받게 된다. 무려 226년 전, 우리나라로 따지면 정조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 ‘결투’와 ‘가택 연금’이라니, 꽤 평화로운 이야기다. 저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42일간 집 안 여행을 시작한다.
“요컨대 이 땅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특히 방에 죽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소개하는 새로운 여행법을 거부할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226년 전이건 지금이건 사람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그도 당시 만으로 스물일곱 살. 혈기왕성한 젊은이였다. 저자는 직접 이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해냈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진정한 여행은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새롭고 낯설게 보게 하는 일임을 깨닫게 한다. 이를테면 벽과 벽 사이의 거리가 몇 발자국인지 세기도, 탁자에서 시작해 방 한구석에 걸린 그림으로 걸어갔다가 중간에 의자가 있으면 앉기도, 갑자기 의자란 얼마나 훌륭한 가구인지 찬양하기도 주저 없다. 이렇게 집안 곳곳에 있는 물건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다른 공상을 이어 하다 보면 시간은 한없이 흐르고 그 시간이 빚어내는 여정은 방을 벗어나 안드로메다로 향한다.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어쩜 이 여행법 나랑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지런한 여행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도 무한히 게을러 움직이기가 싫고 끊임없이 자고 싶다. 2년 전 독일 여행을 갔을 때 공원에서 반나절 자는 내 모습을 보고 서울과 독일이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지 말고, 떠나자. 나와 함께 가자!”
여행 짐을 아직 꾸리지도 않았는데 그자비에가 나를 부른다. ‘아 맞다. 나는 우리 집에 여행을 간다!’
주거 정리 해부도감
그자비에를 따라서 방 여행을 시작하려던 참에 10평 남짓한 집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태껏 혼자 지내면서 필요 없는 것은 최대한 줄였고, 불편함 없이 지냈는데 ‘방 여행’을 하려니 좁게 느껴진다니, 마음 참 얄궂다. 여하튼 나의 피서 계획을 변경할 수 없기에 최대한 넓어 보일 수 있게 방 정리를 시작해본다.
『주거 정리 해부도감』은 건축가 스즈키 노부히로가 입주자의 편에 서서 새로운 주택 설계 방식을 제안하는 해부도감이다. 저자는 청소해도 금세 집이 너저분해진다면 집을 설계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최대한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 방법을 들려준다. 가령 거실 테이블 위에 사소한 물건들을 올려두어 어지르는 습관을 테이블 근처에 수납장을 놓아본다든지 아니면 아예 테이블을 없애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는 화장실에 책장, 수납선반을 들여다놓으면, 집 안 골칫거리인 물건들을 화장실 안에 수납할 수 있다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던져준다. 하지만 저자가 누누이 말하는 점은 새로 집을 지으려고 하거나 리모델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정리’라는 관점에서 기준선 정도가 될 것이라는 거다. 그러니 이미 더는 개선할 여지가 적고 작은 기성 집에 살거나 가구가 별로 없는 이들에겐 사실 꿈같은 주거 형태다. 하지만 책을 보고 있자면 언젠가 조금 더 넓은 집, 꿈같은 러브하우스에서 어떻게 정리하고 지낼지 상상에 빠진다. 느지막이 일어나 남쪽에 있는 화장실에서 빛을 받으며 햇빛 샤워를 한 뒤, 아일랜드 키친에서 간단한 라면을 만들어 먹고 커피를 내려 부엌 옆에 딸린 작업 공간에서 작업한다.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다시 결론은 ‘지금이나 잘 하자’다. 닥치고 바닥이나 닦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