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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7

화를 다스리라고?

Editor. 김지영

정도를 막론하면 일주일 중 나흘은 술과 함께한다.
술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행복해진다.
가끔 내 주업이 에디터인지 프로알코올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다산3.0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 내게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지만, 그저 밉다. 사람을 이토록 미워했던 적이 있었나 돌이켜보면, 또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못마땅한 사람이 간혹 있었다. 그때마다 나만 괴로웠지만. “너 싫어!”라고 당당하게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미움이 속에서 곪으면, 여드름이 곪아 터지듯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터져버렸다. 끓어오르는 화를 조절하지 못하면 입 밖으로 언짢음이 튀어나온다. 참고 참다가 분노가 폭주하면 그때부터는 이성을 잃는다. 상대가 상처받을 말만 골라서 뱉어내고 나서야 속이 시원하다.
한 번은 남자친구에게 이런저런 속사정을 토로했다. 내 마음에 그간 분노라는 딱딱한 혹이 생겼는데, 이 혹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두서없이 말하다 보니 친구 욕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남자친구는 고심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신경 쓰지 마, 싫으면 무시해”라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좀 더 당당하게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 명목이 필요했다. 속으로 화를 다스리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뻔한 이야기 말고,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이고 이 화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기 위해서 분노라는 감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비슷한 부분에서 화가 났던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책이라고는 소설이나 시 혹은 예술과 관련한 책만 읽는 편이지만, 정말 필요해서 심리학책을 읽었다. 『센서티브』 저자 일자 샌드의 『서툰 감정』을 구매했다. 전작이 좋았으니 후속작도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구매한 건 아니다. 전작이 좋으면 후속작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다분해서 더 신중히 결정했다. 출판사 서평과 카테고리를 천천히 살피고 며칠을 고민했다. 효과적으로 분노를 분출하는 방법은 아니라도 적어도 내 분노가 어디서 비롯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자 샌드는 분노가 흔히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감정을 감추고 있다고 말한다.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분노를 유발하는 요인을 파악하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분노를 처리할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분노의 원인은 대개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내 허영심에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순간 내가 원하지 않거나 받고 싶지 않은 친밀감과 동정을 표현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내 가치관이나 삶의 원칙과 대립하는 행동을 할 때, 내가 바라거나 소망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사실 내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 두 가지 원인은 자기보호를 위한 감정표현의 형태로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워낙 둔해서 듣고 흘려버린다. 오히려 내 경우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쉽게 화를 느낀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라도,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가 오지 않아도,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내 분노는 거기서 비롯된다. 나는 최소한 예절을 지키는 사람이 좋다.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말투나 윗사람에 대한 부족한 예절 같이 아주 사소한 것들 말이다. 선을 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책을 통해 내 감정이 어디에 속하는지 찾아냈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찾진 못했다. 저자가 말하는 감정 해소 방법은 (적어도 분노에 대해선) 대부분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화가 나더라도 내 감정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찾아내고 과연 내 화가 정당한가에 대해 생각하라는 거다. 만약 정당하다면 상대에게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원칙을 알려주고 상대의 가치관과 삶의 원칙을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 친하면 가능하다. 내가 이 사람과 끝까지 인연을 이어갈 생각이라면 가능하지만 얼굴을 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속에서 날뛰는 분노를 억누르며 생기는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걸까?
어차피 어느 정도 분노가 쌓이면 더는 신경이 안 쓰인다. 화가 불쑥불쑥 튀어나와도 그 순간뿐이니 시간이 약이다. 다른 사람과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라도 도달했으니 마음은 편하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은 술안주나 삼아야겠다. 애초에 분노 해소 방법을 책에서 찾으려 한 내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