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17

되돌아보면, 좋지만은 않았던

Editor. 이희조

아침마다 요가원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정치가 무엇인지 궁금해 녹색당원이 되었다.
매일 밤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며 잠든다.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
한겨레출판사

20세기 흑백 사진 속 바짝 마른 영국 소년을 떠올려본다. 영국의 한 예비학교Prep School(중고등 과정인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한 초등학교로, 대개 사립이거나 기숙학교)에 다니는 이 소년은 허여멀건 한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 일명 니삭스Kneesox를 신고 위에는 체크 포인트가 들어간 니트나 재킷을 입고 있다. (반바지+체크+무릎 양말, 이 조합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런 아이들이 떼 지어 등교하는 풍경이나 바닥에 앉아 책을 보는 모습이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꼬마 니콜라> <싱 스트리트> 같이 이런 소년들의 매력에 호소하는 영화가 많은 것도 이유가 있다.
낭만은 낭만대로 놔둬도 좋겠지만 그들의 실제 생활이 어땠는지 알고 싶다면 조지 오웰의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에세이는 조지 오웰이 열 살배기 어린아이이던 시절 예비학교에서 경험한 것에 관해 쓴 것이다. 낭만적인 회고풍의 제목과는 달리, 그에게 5년간의 기숙 생활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의 기억 속 아이들은 “얼굴은 거의 항상 지저분하고, 손은 잔뜩 터서 갈라져 있고, 손수건은 시커멓게 젖은 게 경악스러운 존재들”이다. 아직 부모 손이 필요한 그런 유아들에게 학교가 하는 것이란 이불에 오줌을 지리면 매질을 당한다고 툭하면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다.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인 데다 수건에선 언제나 썩은 치즈 냄새가 나고 식욕은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종양이라 가르치며 밥은 쥐꼬리만큼만 준다.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하는 것도 다반사다. 집안이 넉넉지 못해 장학생으로 들어온, “성직자나 인도 공무원이나 살려고 발버둥 치는 과부 같은 부류의 자식”인 조지 오웰은 부잣집 아이들은 당하지 않는 체벌이나 노골적인 멸시를 받고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그는 이렇게 평한다.
“내가 보기에 영국 상류층과 중산층 특유의 결함은 여덟아홉, 심지어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을 최근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로 보내온 일반적인 관행에서 어느 정도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내 고등학교 3년 동안의 기숙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저녁 열한 시 반까지 이어지는 자습, 그로 인해 부족한 잠. 그 외에도 부족한 개인 공간, 부족한 수건, 부족한 단백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빼고는 모든 게 부족했지만, 이러한 환경의 제약은 사실 별것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를 진짜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은 서로의 부족한 양심과 부족한 배려, 그리고 당시 우리를 지배했던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방’이라는 인식이었다. 세상의 모든 오차범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양 모의고사 전략을 짜며 되려 자습 분위기를 방해하는 무리며, 평균 수학 점수의 차를 들먹이며 여학생들을 하수 취급하던 일부 남학생의 꼴 같지 않은 연대Ally며, 역겨운 추태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영상 화면 속 인터넷 강사를 인생의 스승 운운하면서 눈앞에 있는 교사나 기숙사 사감 선생에게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던 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아이들의 감성을 단일, 단순 = 추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들을 좁은 공간에 24시간 몰아넣고 똑같은 것을 먹게 하고 똑같은 것을 입게 하고 24시간 공부만 하게 하는 것의 폐해라면 폐해였을까? 아직도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99명의 좋은 사람들이 1, 2명의 나쁜 사람에게 쉽게 자신을 내주듯이 우리는 같이 있으면서 누구랄 것 없이 점점 더 영악해졌다. 지금 그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좋은 일도 많았는데, 이렇게 안 좋은 점만 말하는 것이 미안한 감이 있다. 그래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같이 부대껴 살았나 생각해보면 슬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