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y, 2015

비관과 절망의 끝에서 당신이 만나게 되는 것들

Editor. 지은경

근래 다수의 대재앙과 전쟁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이들은 대재앙의 날 영웅이 나타나 지구를 구한다는 식의 순진한 상상력 가득한 블록버스터라기보다는 그안에서 많은 생각할 수 있는 여지와 위안을 주는 철학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 영화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우리는 왜 비관하고 절망하는 삶도 모자라서 비관과 절망으로 한 겹 더 진하게 씌워진 영화와 책들을 또 찾게 되는 것일까? 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문학동네

소설은 아버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는 아들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첫 페이지부터 묻어나는 무거운 기류와 절망 속에서 실오라기같은 끈 하나를 놓지 못해 살아가는 위태로운 생명을 가진등장인물로 인해 책의 첫 장을 읽자마자 그냥 덮어버릴 수도 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등장인물들을 극적인 상황에 놓이게 한 후 감정섞이지 않은 문체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현상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현실은 이러하고 그 안에서 주인공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장편소설 『로드』는 대재앙 이후 길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왜 지구에 이런 재앙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생존자들은 서로를 해치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지, 절망에 사로잡혀 떠난 부인은 아직 살아 있는지, 또 어디로 간 것인지에 관한 설명은 친절하게도 어디에도 없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이 매 순간을 버티며 그들의 앞에 놓인 길을 따라가는 내용과 가끔 아버지의 기억에 존재하는 과거 이 책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두 개의 총알, 그리고 권총 한 자루가 그들의 전 재산이다. 이 작품은 2007년 퓰리처 상, 2006년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 상을 수상했으며 언론은 코맥 매카시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또한 극한의 상황에서 황폐한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가장 끔찍한 보고서이자 동시에 아름다운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왜 아름다우냐고? 그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문예출판사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낸 책 『자기 앞의 생』은 소년 모모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다. 1975년에 출간되어 콩쿠르 상을 수상하면서 이 작품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소년 모모는 이 세상 누구도 봐주지 않는 밑바닥의 인생을 살면서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몸 파는 일을 못하게 된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아가는 소년 모모.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그의 성장 과정이 이 책을 통해 세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의하면 나는 어떤 일에도 너무 어렸던 적은 없어요.”, “내가 왜 그에게 특별히 적대감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내 나이가 아홉 살 열 살 정도이고 하찮은 존재였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책의 본문에 실린 이 두 문장은 순수하지만 결코 어리다고 할 수는 없는 생각을 가진 한 소년의 슬픈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많은 역경과 아픔을 겪어야 했던 소년 모모에게 사람은 그다지 특별한 모습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타인이나 이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뿐인 것이다. 모모 앞에는 도대체 어떤 인생이 펼쳐질 것인가?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아니 지음
현대문학

아프가니스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미르는 하인의 아들인 하산과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하산은 언청이로 태어나 주변 사람들의 놀림을 받지만 항상 웃어넘기는 착한 소년이었다. 이런 하산을 아미르의 아버지는 친아들처럼 아껴주었는데 그를 본 아미르는 질투심을 느낀다. 아미르는 하산에게 못된 장난도 치지만 착한 하산은 이런 아미르의 모든 투정을 다 받아준다. 12세가 되던 겨울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며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게 된다. 아미르는 하산에게 자신의 날아간 연을 찾아오라고 하고 하산은 날아간 연을 쫓아 떠난다. 아미르는 연을 쫓아 사라진 하산을 찾으러 다니던 중 동네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하산을 목격한다. 하지만 겁이 난 아미르는 하산을 구할 용기가 나지 않아 혼자 집으로 도망친다. 이후 하산에게 심한 죄책감을 느껴 괴로워하던 아미르는 하산을 집에서 쫓아내려 하고결국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쓴 하산은 아버지인 알리와 집을 나간다. 이후 청년으로 성장한 아미르는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평온한 생활을 한다. 그런데 2001년 38세의 나이에 예상치 못한 운명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우연히 하산이 남긴 편지를 받게 되고 동시에 하산이 탈레반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미르, 게다가 자신과 하산이 어머니가 다른 형제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후 괴로워한다. 이후 죽은 하산의 아들 소랍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와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책의 이야기는 전개된다.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한 의사로 틈틈히 소설을 써왔다. 불행한 길을 걷는 조국의 실상을 인간애를 통해 표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그의 작품이 40여 개국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상상이 아닌 지금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실감나게 보여줌으로써 문제의식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