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Why so Blue?

푸른빛의 비밀

에디터. 김경란 / 자료제공. 반니

아득히 어둡고 광활한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우리 행성은 흰색이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녹색과 청색이 섞인 푸른 구슬의 형태이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과 산소 또한 바다와 하늘에서 푸른빛을 띠고 있으니, 파랑은 인류에게 상징적인 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파란색은 우리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귀한 색이다. 좀처럼 자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색일뿐더러, 인류는 오랜 시간을 거처 숱한 시행착오 끝에서야 비로소 지구를 덮는 이 색을 색소로 담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파장에 반응하는 망막 속 여러 종류의 원추세포 덕분에 색을 감지한다. 망막의 원추세포 중 청색을 담당하는 세포의 수는 전체의 10퍼센트로 아주 적다. 나아가 시각이 민감한 곳에는 청색 원추세포가 아예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청색을 인지한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분자 생물 의학을 전공한 뒤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독일 『사이언스』 기자 카이 쿠퍼슈미트(Kai Kupferschmidt)는 파랑이라는 색과 경험에 매료 되었다. 한여름 에게해의 짙푸른 물빛 위를 여행하던 중, 그는 문득 ‘파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푸른 공간 위에 떠 있는 기분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파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파랑이라는 색을 넘어 하나의 현상으로 접근하는 『블루의 과학』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과학 분야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파랑과 관련된 연구 성과를 짚고, 색의 특징을 이루는 요소들의 원리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파랑은 화학이다. 인류 최초의 색소는 철이 함유된 광물이었다. 선사시대인들은 노란색과 붉은색 황토, 부서진 뼈와 숯 등 다양한 물질을 섞어 색소를 만들어 냈지만,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고 나서도 청색을 만들지 못했다. 인류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지역의 광석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를 발견하며 처음 청색 원료를 접하게 되었다. 석회석이 마그마와 접촉하는 지각층에서 만들어지는 이 원료는 힌두쿠시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아주 긴 항해 끝에 수입돼 ‘바다를 건너’라는 뜻의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라피스 라줄리는 여러 광물이 섞인 광석으로 가루로 빻으면 뚜렷한 청색보다는 옅은 회색에 가깝게 발색되었고, 선명한 청색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식초와 송진 등을 활용한 제조법이 개발되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울트라마린은 청색의 기준으로 오랜 시간 자리 잡았는데, 잠잠했던 색소에 대한 관심은 200년 후인 2009년 ‘인민블루YlnMn Blue’의 등장으로 또 한 번 급부상했다. Y(이트륨), In(인듐), Mn(망간)으로 이루어져 역사상 가장 파랗다고 평가받는 이 색은 고성능 컴퓨터에 쓰일 신소재를 연구하던 화학자 마스 서브라매니언(Mas Subramanian) 박사의 연구에서 우연히 발명되었다. 애초에 기대하던 특성은 온데간데없이, 새로운 푸른빛을 내는 물질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수많은 파랑은 화학의 발전에 따라, 복잡한 화학반응에 의해 탄생해 왔다. 미래에 접하게 될 새로운 파랑 또한 새로운 색소 분자 활동을 보이며 나타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파랑은 생물학이다. 인류가 푸른 색소를 찾아 실험하고 산란의 원리를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자연에서는 푸른빛의 꽃과 동물이 진화했다. 태양광 에너지를 사용해 광합성을 하며 생존하는 식물의 대다수가 녹색인 가운데 푸른 식물이 드문 이유는, 적색을 흡수해 청색으로 비치는 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색소가 오직 안토시아닌(anthocyanin)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색소는 세포액의 산도에 따라 색이 바뀌기에 색감의 변수는 더욱 늘어난다. 그런데도 푸른 꽃을 피우는 식물은 자연계에 어느 정도 존재한다. 환한 청색의 수레국화꽃, 샐비어와 달개비 등의 꽃들은 같은 안토시아닌과 색소 분자의 숫자는 물론 동일한 분자 구조를 따르며 실현 가능성이 낮은 환경 속에서도 푸른 성질을 보존하고 발현해 왔다. 이러한 꽃들을 보며 과학자들은 안토시 아닌의 한 종류인 델피니딘(delphinidin) 계열의 분자를 이용해 오랜 시간 푸른 장미를 재배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파랑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청색 계통의 동물들에게서 보이는 파랑은 생존을 위해 색소를 내재하는 식물들과는 다른 원리로 발현된다. 물고기, 나비, 새의 푸른색은 대개 광선을 꺾거나 분산시키는 표면 조직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미세한 격자, 골, 공, 겹 모양의 결이 빛을 반사하고, 그 반사된 빛은 중첩되는 간섭작용에 서로를 밀쳐낸다. 이때 특정 색의 빛을 주로 발산하는 색을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부른다. 선명한 파란색을 자랑하는 모르포나비의 비늘에는 1마이크로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서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모양 막대들이 겹겹이 빛을 반사하며 신비한 색을 표현하는 반면, 푸른하늘소의 등딱지 비늘에는 200나노미터 지름의 공 모양 결정들이 빽빽이 들어있다. 공작새의 깃가지 안을 형성하는 막대형 멜라닌 겹들은 빛을 굴절시켜 홀로그램같이 화려한 색상을 뽐낸다. 이 외에도 온몸이 푸른 구조색을 띠며 예쁜 깃털로 암컷에게 매력을 보여주는 유리멧새와 파랑어치, 그리고 발의 색상을 통해 자신의 영양 상태를 드러내는 푸른발얼가니새 등 여러 푸른 동물들이 각자만의 개성과 이유로 진화한 푸른 모습으로, 푸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블루의 과학』은 이러한 흥미로운 원리들을 쉽게 설명하는데에 그치지 않는다. 카이 쿠퍼슈미트는 파랑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을 추적하며 각 주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다닌다. 책은 그가 발로 뛰며 실험실과 현장을 찾아가게 된 과정과 그곳에서의 일화를 담고 있어 더욱 생생하다. 끊이지 않는 저자의 관심에 따라 이 파랑의 원리에서 저 파랑의 과학으로 넘어가는 책의 전개는 평소 과학에 흥미가 없었던 독자에게도 과학자 특유의 꺼지지 않는 궁금증과 매력을 전해준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파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쏟아지는 빛은 파랗다는 느낌만 준다. 눈의 수정체는 청색 물체를 뚜렷히 보기 위해 수정체 주변 근육을 이완하며 납작해진다. 파란 것을 볼 때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 느낌이 드는 것은이 때문이다. 파랑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느낌을 인지하도록 진화했다. 『블루의 과학』은 푸른 느낌을 만들어 내기 위해 동식물이 기울인 노력과 이것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인류의 관심에 주목한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어떤 과학적인 결론이 아니다. 그저 그 과정과 노력, 현상과 원리 모두 경이롭다는 것이며, 블루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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