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Why so Blue?

파란 자유를 향해 닻을 올려라

에디터. 전지윤 / 사진. ⓒ Charlotte Lemaire / 자료제공. 주니어RHK

친애하는 이웃들에게, 이번주 일요일 정오에 블루베리 오믈렛 드시러 우리 집으로 오세요. -여러분의 새 이웃 클로디 드림-
『블루베리 오믈렛』을 급하게 마구 넘겼으면 보지 못했을 클로디의 초대글, 이런 초대를 받아본 적이 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렇게 다정한 초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단한 파티를 열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어린 이웃에게 온 초대 메시지에 왠지 보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설렌다. 그냥 근처에 살아서 이웃이라는 이름을 서로 얻는 것보다 이웃의 ‘손님’이 된다는 게 더 특별한 일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초대받은 그랑디오즈의 마음이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들썩들썩하는 것은 당연하다. 평소 늘 하던 차림으로 갈지, 점잖게 넥타이를 할지, 아니면 스마트하게 나비 넥타이를 할지, 나였어도 고민할 법하다.
자연스럽게 평소대로 가는 게 좋겠어.
아뿔싸, 너무 신나서 그만 창문으로 머리를 쓱 들이밀어 버리는 실수를 했지만 오히려 서로 어색함을 깨뜨리는 데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초대받은 다른 손님인 사슴은 복숭아색 스웨터를 입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같은 색 케이크를 선물로 갖고 왔다. 클로디의 집은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색과 코랄색으로 꾸며 화사하고 아늑하다.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갑자기 상모솔새들이 정원에 날아들어 잘 익은 블루베리만 콕콕 찍어 먹어버리는 소란을 부린다. 이를 어쩌나, 블루베리가 없으면 어떻게 블루베리 오믈렛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하다.
커다란 블루베리 구하기
클로디가 손님 접대도 못 하는게 아닐까 걱정하는 중, 그랑디오즈는 슬며시 블루베리가 있는 비밀의 장소를 알고 있다는 말을 꺼낸다. 신나게 그랑디오즈를 따라나섰지만 어떤 나무 아래에서 클로디와 사슴을 향해 서더니, 이제 나무를 타고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게 아닌가. 원래 키 작은 나무에서 열리는 블루베리를 어째서 저 위쪽에서 구할 수 있다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클로디는 재빨리 올라가 보기로 한다. 믿을 수 없어서 그랬을까, 사슴은 발이 아프니 올라가지 않고 기다리기로 한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눈앞에 블루베리, 라즈베리, 딸기 등 아롱다롱 열매들의 향기로 가득한 곳이 나타난다. 과연 비밀의 장소라 할만하다. 행복하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이 열매들 중에는 그랑디오즈 만한 크기를 자랑하는 것도 있다.
이번에도 열매들의 의사를 물어 딱 필요한 만큼만 따기로한 그랑디오즈와 클로디이지만, 갈수록 더 잘 익고 더 먹음직스럽게 탐스러운 블루베리들을 발견한다. 오르고 또 올라, 따고 또 따다가 둘은 결국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무 아래로 데구루루 굴러떨어져 버린다. 시 한 편을 여유롭게 외우며 둘을 기다리던 사슴은 우당탕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떨어지는 블루베리를 스웨터에 받아내는 민첩함과 침착함을 발휘한다. 대왕 블루베리 알들과 함께 곰과 여자 아이가 나무 위에서 떨어지다니. 지나가던 청년이 이들을 곡예사라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블루베리 오믈렛 같은 친구들
신나는 모험을 끝으로 커다랗고 달콤한 블루베리를 넣은 오믈렛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좋은 식탁보까지 내어 상을 차렸지만 동물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는 게 좀 어렵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식탁보를 그대로 들고 옮겨 돗자리처럼 정원 풀밭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마치 소풍을 나온 듯 색다른 재미가 있다. 야외에 음식을 차려 귀여운 지렁이도 함께 할 수 있고 어쩌면 무당벌레나 개미와 같은 다른 손님들이 함께하게 될 수도 있다. 곰을 초대해 본적 없는 클로디와 사람에게 초대받은 적이 없는 곰, 시를 외우는 사슴과 대왕 블루베리에서 빼꼼 나온 지렁이까지 블루베리 오믈렛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오늘을 계기로 이들은 이웃이자 친구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랑디오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거든요.
곰과 사슴, 그리고 사람이라니 그야말로 블루베리 오믈렛 같은 이색적인 조합이다. 블루베리와 달걀이 만나 과연 어울리는 맛을 낼 수 있는지 의문이었던 것처럼 이들 역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달콤한 블루베리와 짭조름하고 폭신한 오믈렛은 맛의 조합으로 최강이라는 ‘단짠’의 맛을 낸다. 블루베리와 오믈렛은 따로따로 먹어도 좋지만 함께 먹으면 별미가 된다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믈렛의 주재료인 달걀은 필수 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 무기질 등이 풍부해 영양가가 높고, 블루베리는 비타민 C, 비타민E와 생리활성물질인 폴리페놀, 안토시 아닌 등이 풍부하여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항염증 효과로 심장을 건강하게 하고, 노화로 인한 기억력 저하를 방지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여 ‘10대 슈퍼 푸드’의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곰, 사슴, 사람도 서로에게 즐거움이자 행복을 안겨주는 사이가 되어 참 잘 맞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화사하고 안온한 이야기
아무리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도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고 노력하지 않으면 섞이지 못한다. 곰이나 사슴을 초대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용기를 내어 다정한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곰과 사슴이 초대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더라도 결국 서로 모르는 사이로 남았을 것이다. 게다가 좋은 것은 나만 알고 싶은 마음에 입을 꼭 다물었더라면 이들의 모임은 어색함과 아쉬움으로 마무리되었겠지만, 나눔으로써 더 큰 즐거움을 얻었고 더 소중한 우정을 얻게 된다. 샤를로트 르메르는 그의 그림책 『블루베리 오믈렛』은 지난 몇 년간 뜸했던 서먹해진 친구나 동료, 이웃과의 교류를 재고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미처 없었던 아이들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도록 한다. “우리가 잠시 놓치고 있었던 안온한 유대”의 가치를 일깨운다.
『블루베리 오믈렛』은 사랑스럽고 화사하며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저자 르메르의 그림은 평면적이며 원근감을 배제하고 사물을 실제 크기와는 다르게 묘사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꽃들에게 ‘꺾어도 되는지’ 물어보지 않고 열매를 ‘먹어도 되는지’ 묻지 않는다.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내 손가락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라, 그만큼 미안함 역시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이나 열매가 지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책을 통해 꺾거나 따서 모아야 하는 행동 전에 그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지 않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의외의 크기가 주는 의외의 제스처와 반응에 식물 또한 살아있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감정을 갖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샤를로트 르메르의 『블루베리 오믈렛』은 “사랑스러운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다”는 추천사처럼 조금 지나면 또 보고 싶은, 그리고 블루베리 오믈렛을 꼭 한번 만들어 먹고 싶게 하는 즐거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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