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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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6

긍정과 부정 사이

Editor. 박소정

『감각의 제국』 문강형준 지음
북노마드

가진 것이라곤 성한 몸뚱이인 젊은이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의 사내까지 여럿이서 한자리에 모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우려하던 것이 터졌다. 정치 얘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쪽에서 단기간에 초고속 성장한 우리나라를 배우러 온다는 동남아 국가의 소식, 매년 불어나는 외국 관광객과 곧 다가올 동계올림픽까지 불편한 대한민국 찬가가 울려 퍼졌다.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잿빛에 가깝다. ‘헬조선’이라 불리며 젊은이들은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매번 놓치지 않는 이 악몽 같은 현실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암묵적으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비평가인 저자가 지난 4년간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묶은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 저자는 2012년부터 줄기차게 회자되는 ‘힐링’부터 비정규직의 신화로 떠오른 미스 김, 인문학의 대중화, 2015년 여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루며 좌우 양갈래로 나뉘는 길목에서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빛을 비춘다. 저자는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 곧 정치적 수준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왜 우리나라에서는 언론과 정치를 논하는 드라마 미국의 ‘뉴스룸’ 같은, 파시즘을 얘기하는 독일의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와 같은 수준 높은 TV 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느냐고 개탄한다. 오늘날 뉴스마저 정권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 재벌과 서민의 로맨스, 불륜 등이 난무하는 한국의 드라마 현실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또한 저자는 세월호 사건을 두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에서 이어져온 고질적인 재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운명’이라 운운하는 이들에게 기업의 비용절감을 위해 선박 운용 시한을 10년이나 늘려준 정부, 수익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짐과 승객을 태우는 기업의 ‘합리성’이 배경이 된 최악의 재난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간다.
즐거워야 할 술자리에서 가슴 불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려서 뭘 모른다’는 이유로 잠자코 있어야 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에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난 이들에게 이 책은 숨겨왔던 강력한 한 방을 날리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