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21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
글.최재천
SF 전문출판사 아작 편집장. “내겐 새 책이 있고, 책이 있는 한, 난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있다.” _ 조 월튼
“강한 편견이란 제일 오래되고 제일 추악한 유행 중 하나이고, 워낙 끈질기게 지속하다 보니 대상이 계속 변하지 않았다면 유행이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위그노교도, 한국인, 동성애자, 이슬람교도, 투치족, 유대인, 퀘이커교도, 늑대, 세르비아인, 세일럼의 주부들…. 규모가 작고 다르기만 하다면 거의 모든 그룹에 차례가 돌아갔고, 그 패턴은 절대 달라지지 않았다. 못마땅해 하고, 고립시키고, 악마로 몰아세우고, 박해하고. 그것은 유행을 시작하는 스위치를 알아내면 좋을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편견의 유행을 영원히 꺼버리고 싶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한국 성인 기준으로 평균 6kg 가까이 체중이 증가했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 1년간 나의 배달 앱 주문내역을 상기해보았다. 그럴 만하지, 하고 웃었지만 오랜만에 업무 관련 미팅을 하다 보면 몸무게뿐 아니라 성별을 막론하고 다
들 훌쩍 자란 머리 모양 탓에 안 그래도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을 더 못 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다들 머리를 기르다 팬데믹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다시 짧은 머리가 유행하게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다가 1920년대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단발머리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사회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의 소설이 생각났다.
코니 윌리스의 작품이 흔히 그렇듯 각자 자기 할 말만 하는 주인공들이 정신없는 혼돈의 시간을 겪으며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보지만, 결국 소설에서도 단발머리 유행의 정확한 이유를 찾지는 못한다. 어떤 유행이 언제 시작했는지야 사료를 조사하면 알 수 있겠지만, 주인공의 궁금해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유행의 스위치를 누른 걸까?”이다. 그런데 소설의 배경이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발발해 전 세계를 강타했던 때임을 생각해보면, 20년대나 지금이나 세기의 팬데믹 직후 사람들의 머리
가 짧아진 것이 그저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가롭게 팬데믹 이후의 머리 모양에 대해 궁리하기엔 지금 겪고 있는 감염병의 혹독함이, 그리고 어김없이 바이러스보다 악랄하게 기승을 부리는 혐오의 유행이 너무 대단하다. 2020년 한 해 미국에서 발생한 아시아인 혐오 범죄가 무려 3천
8백만 건이었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19를 노골적으로 “중국 바이러스”라고 칭했던 전직 미국 대통령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코니 윌리스가 점잖게 “강한 편견”이라고 에둘러 부른 소수자 혐오의 강한 파급력을 생각하게 한다. 혐오는 호시탐탐 국경을 초월해 얼마나 우리 문명과 공동체를 후퇴시키는 걸까.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아시아 혐오를 마냥 비판만하기에는, 한국 사회의 소수자 혐오 역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소수자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은 코니 윌리스가 쓴 대로, 유사 이래 참으로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못마땅해하고, 고립시키고, 악마로 몰아세우고, 박해한다.” 한국에서도 세기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지역 혐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는 말할 나위가 없겠거니와, 이 사회의 제노포비아는 이미 오랜 다문화 역사를 가진 나라들에 비해 훨씬 취약하다.
팬데믹 영향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해 2019년 처음으로 250만 명을 넘었다. 전체 인구 대비 5%에 가까운 수다. 미국 내 아시아인의 비율이 6% 정도이니, 아주 단순하게 보면 비슷한 비율이다. 팬데믹 와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공동체가 인종 혐오의 스위치를 누르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소설을 통해 혐오의 작동 방
식을 알았으니, 먼저 “못마땅해하지 않기” 정도의 노력을 해보는 게 어떨까. 일단 작동하기 시작한 혐오는 멈추기 어려운 법이다. 무언가 못마땅한 게 눈에 띄었을 때, 그때 멈추자. 못마땅해하는 것 자체가 대체로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