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새벽에 온 가족이 목욕탕에 갔다. 하루는 집을 나서기 전 우연히 커튼을 걷었다가 짙은 남색 하늘에 밝은 금색으로 빛나던 완벽한 모양의 그믐달을 보게 되었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날 이후로 일부러 일찍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밖을 걷다가 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컬러 스펙트럼이 펼쳐지니 크레파스의 밝은 파란색만으로 하늘을 그릴 수 없고 흰색만으로 구름을 그릴 수 없었다.
낮과 밤, 그 지나가는 사이
낮이 저물고 (…) 곧 밤이 옵니다. 낮과 밤 사이, 지나가는 시간에 (…) 바로 푸른 시간이 있습니다.
밝은 햇살이 가득한 날의 하늘은 투명하고 선명하게 파랗다. 그런데 우울한 기분조차 한껏 끌어올려주는, 에너지를 내뿜는 하늘을 막상 오래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채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다. 그럴 땐 어깨와 가슴을 펴고 정면을 바라보며 청명한 하늘을 뚫고 쏟아지는 햇볕 아래를 경쾌하게 걷는 게 좋겠다. 햇볕의 푸른 광선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저녁이 내리면, 우리는 낮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시간을 경험한다
해가 설핏 기울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내리면 저만큼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 미묘한 순간이 발생하는데, (…)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이 시간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다. (…)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은 밝음에서 어둠으로 옮아가는 ‘불분명한 시간’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개와 늑대, 빛과 어둠, 이편과 저편,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의 시간적 공간적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시간이다. _신수정, ‘개와 늑대 사이의 인간’, 〈한겨레〉, 2004년 5월 28일
‘푸른 시간’은 일출 직전과 일몰 직후에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을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하루 중 두 번 짧게 지나가는 이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도 한다. 사진작가들에게 이 시간은 드라마틱한 변화의 순간으로,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는 때이다. 시시각각 하늘의 빛과 표정이 달라져서 같은 장소라도 전혀 다른 느낌의 풍경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자와 문학가들은 교차와 교체가 일어나는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불분명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예술가들은 소생의 시간이자 황홀한 풍경과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해 영감이 일어나는 시간으로 예찬하곤 한다.
위대한 자연이 깨어나는 시간
푸른 시간이 자리 잡고(…) 대자연은 고요해집니다.
이자벨 심레르(Isabelle Simler)의 책에서 바야흐로 푸른 시간이 당도했음을 알리는 것은 대자연이다. 한 마리의 큰 어치가 머리를 세우고 날카로운 소리를 뿜어내자 갖가지 동물과 곤충, 식물이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낮 동안 인간들은 지구의 정복자처럼 행세하지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세계는 원래의 자연, 그 야생성이 가장 두드러진 때로 돌아간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인간들이 게걸스레 소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인 ‘길들이기’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여전히 인간은 일방적인 관계 설정에만 급급하며,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대를 소유하게 된다고 여긴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심레르는 오묘하고 경이로운 대자연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자연의 소리와 냄새, 형상과 색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절제한다. 텍스트는 어느새 자연의 일부인 듯 책 바탕과 유사한 색으로 얹힌다. 작가는 푸른 시간 동안 펼쳐지는 관찰 여행에서 동물이나 식물들에게 인격을 부여하여 친밀감을 높이려 하거나, 인간의 상상력만으로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대신 심레르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푸른 시간의 하늘과 공기, 지구에 존재하는 푸른색의 생명체들을 묘사하는 데에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선명한 채도와 색상의 가늘고 날카로운 선을 중첩하여 새의 깃털, 동물의 털, 곤충의 몸과 날개까지 치밀한 디테일로 완성하였고, 어둠이 점차 내려앉는 푸른 공기와 바람조차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 작가의 이런 수고 덕분에 우리는 고요하고 경이로운 야생의 푸른시간 속으로 들어가 생명체들의 생김새와 소리, 움직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희귀하고 아름다운 블루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행성은 오직 지구라고 알려져 있다. 1972년 12월 7일, 달 탐사를 떠난 아폴로17호가 지구로부터 45,000 킬로미터 떨어졌을 때 승무원인 잭 슈미트(Jack Schmitt)는 구슬처럼 작게 보이는 지구를 카메라에 담았다. 태양빛으로 인해 그림자 하나 없이 밝게 드러난 지구는 울트라마린 블루(Ultramarine Blue)로 빛났다. 사이사이 소용돌이치는 하얀 구름이 무늬를 이루고 그 아래 드문드문 보이는 육지는 녹색과 갈색을 띠고 있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행성인 지구는 ‘푸른 구슬(Blue marble)’이란 별칭을 얻었다.
화창하고 맑은 하늘과 광활한 바다 덕분에 파란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이 행성에서, 정작 푸른 빛깔의 생명체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자벨 심레르의 『푸른 시간』은 펼치자마자 32 개 블루 계열 색상들이 이름과 함께 나열되어 있어 벅찬 마음이 들게 한다. 셀러돈 블루Celadon Blue는 청자의 비색翡色, 터쿼즈 블루Turquoise Blue는 불투명하지만 선명한 하늘색의 터키석Turquoise을 떠올리게 해서 하나같이 이름만으로도 해당 색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수긍이 간다. 페이지를 넘기면 펼쳐지는 푸른색 세계는, 그 어느 것보다 더욱 강렬하게 주의를 집중시킨다.
자연계에서 파란 꽃은 매우 드물어 꽃을 피우는 식물 1만여 종 가운데 300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식물칼럼니스트 최새미는 식물이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색소의 색이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유전자가 적기 때문에 파란색 꽃을 쉽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설령 파란색이 발현되더라도 식물 내부의 산성도로 인해 선명한 파란색이 되기는 어렵다. 파란 색소를 지니고 있으면서 파랗게 보이는 동물은 식물보다 더 드물다. 색소를 지닌 꽃은 가시광선의 일부를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하는 반면, 아치의 깃털이나 모르포나비의 날개와 같이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보이는 파란색은 구조적으로 특정 파장의 빛을 보강간섭하거나 산란하기 때문이다.
연꽃들 사이로, 하늘빛 개구리들이 개굴개굴 서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푸른박새들이 일제히 지저귀네요. (…) 푸른 모르포나비 날개가 나팔꽃 위에서 반짝이네요. 물망초, 초롱꽃, 수레국화, 제비꽃 향기가 공기 중으로 퍼집니다. (…) 청왜가리들은 곧게 서 있고, 푸른원숭이들은 침묵합니다. 그리고 푸른 물잠자리 한 마리가 남보라 버섯 위에 앉습니다.
푸른 빛깔의 생물을 사진이나 영상, 혹은 실제로 보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선명하고 청량한 파란 기운에 기분마저 정화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희소하고 특별한 블루, 그 푸른 빛을 내는 생명체들을 한 번에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물론 특정한 색의 생물이 더 큰 가치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자연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색을 띤 채 온몸으로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발현하는 생명체들을 알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어른인 나도, 아이도 함께 얻는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고 뜻깊다. 특히 인간이 초래한 기후 재앙이 곳곳에서 일어나 그 심각성을 어느 때보다 체감하게 되는 지금,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