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살았던 적이 있다. 고층 아파트가 없는 동네라 굳이 수상하게 고개를 길게 빼고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웃의 정원이나 창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살던 집으로 가는 길의 첫 번째 집에는 늘 창가에 머무르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오렌지에 가까운 색의 토실토실한 단모종 고양이였다. 몇 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즐겁거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몸짓과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동네를 오가며 고양이의 매력을 알게 된 이후, 『캠핑 좀 하는 고양이 루이』는 고양이의 매력에 더욱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는 캠핑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의 캠핑에 함께 한다면 엄청나게 신날 텐데….
캠핑 떠나는 고양이
햇살이 따뜻한 날, 루이가 길을 나섰어요.
“갸르릉 갸르릉!”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불러요.
안 풀리는 그런 날
‘캠핑 좀 하는 고양이 루이’가 진달래색 차체에 하얀 지붕, 꽃무늬가 고운 햇빛 가리개가 달린 캠핑 밴을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던 바로 그 장면이다. 지붕에 올린 짐마저 예쁜, 화사한 색의 마이크로버스를 스스로 운전하는 그림 말이다. 내가 고양이였다 해도 루이처럼 꼬리를 살랑대며 갸르릉 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전에 했던 상상을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밴을 타고 루이는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엄청 재미있을 거야.”
어느덧 루이는 한적한 숲에 자리를 잡았다. 가져간 모든 짐을 그림처럼 완벽하게 세팅하기 위해 마음은 몹시 바빴겠지만, 모든 게 다 준비된 장면은 두 번째 로망의 실현이다. 차 문을 활짝 열어 아늑한 공간을 더하고 나니,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귀엽고 아기자기한 루이만의 공간이 완성된다.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드림캐처와 가랜드, 캠핑장을 가로질러 줄줄이 걸어놓은 전구까지 열심히 장식한 루이는 게으른 집고양이가 절대 아니다.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살펴본 다음 자전거에 앉은 루이, 분명 방금까지 있었는데 벌써 쌩 하고 사라졌다.
캠핑 좀 하는 고양이
“슬슬 둘러볼까?”
…
신이 난 루이가 풀숲을 헤집고 다녀요.
숲속 구경을 떠난 루이를 찾으려면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책을 활짝 펴고 잠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살랑거리는 꼬리를 발견했다면 이제 자연스레 시선은 아름다운 풀과 풀꽃으로 옮겨가고 사이사이 보호색으로 몸을 가린 벌레와 곤충을 만난다. 섬초롱꽃, 귀리, 하늘나리와 개망초, 괭이밥 같은 들풀과 여치, 고추좀잠자리, 제비나비에 지네와 개미 같은 곤충들… 마치 자연 도감을 보듯 집중하게 된다. 전문 캠핑족 못지않게 부지런하면서도 여유로운 루이의 행보에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과 보는 것, 그의 발이 닿는 곳 모두 스냅사진처럼 고스란히 포착된다. 한참 풀숲에서 토끼와 놀다 더워졌다면 연못에서 물고기, 소금쟁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면 된다. 잠깐, 고양이가 물속에 제 발로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물이 싫다고, 헤엄을 못 치는 건 아니지.”
캠핑에 진심인 고양이
캠핑은 자연에 오롯이 노출된 채 흘러가기 때문에 기상 상황이 변덕을 부린다면 그에 맞춰 대응해야만 한다. 태풍이나 폭우와 같은 날씨에는 얼른 철수하는 게 맞겠지만 지나가는 소나기라면 도착하자마자 든든히 세워 둔 텐트안으로 들어가 비바람을 피한다. 금세 훈훈해진 텐트 안에서 잠시 아늑하게 있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날이 저물어 간다. 조금 낮은곳이었는지 셸터(Shelter)에는 백조 한 쌍이 새끼 백조를 데리고 찾아올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하지만 루이는 이런 것도 캠핑의 매력이란 듯 차분하기만 하다. ‘캠핑 좀 하는 고양이’라고? 아니, 그 누구보다 ‘캠핑에 진심인 고양이’다. 캠핑의 꽃이라면 모름지기 캠프파이어다.
캠핑은 분명 신나는 일이지만 막상 제대로 캠핑을 즐기기 위해서는 온갖 짐을 챙기고, 커다란 텐트를 세우고, 준비해 온 것들을 제대로 내어놓는 수고로움의 단계를 지나야 한다. 게다가 제한된 집기와 재료로 제대로 된 음식을해 먹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생선과 고기 바비큐로 배를 채운 다음 불가에 둘러앉아 남은 불에 달콤한 마시멜로도 구워 먹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불을 바라보거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면 캠핑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만다. 캠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또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캄캄한 밤이다. 불빛 하나 없는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후드득 쏟아질 만큼 수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다. 그 특수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올려다보면 이 광활한 우주에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혼자여도 최고로 빛나는 밤이에요.
그림도, 캠핑도 좀 하는 고양이
우리는 종종 반려인이 집을 비운 사이, 반려동물이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무척 궁금해한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의자는 『그림 좀 아는 고양이 루이』로 우리에게 이들의 미스테리한 시간을 알려주었던 적이 있다. 종일 뒹굴뒹굴, 꾸벅꾸벅 졸던 루이는 심심함을 참지 못해 정원을 지나 이웃으로 가는 길에 진귀한 고미술품, 유명한 작품들을 보게 된다. 『캠핑 좀 하는 고양이 루이』에서 의자는 부드러운 갈색 털에 통통한 몸집의 고양이 루이가 떠나는 캠핑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작가는 수채화의 맑고 선명한 색감과 세밀한 묘사로 자연을 더욱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캠핑에 필수인 텐트와 집기, 소품들 역시 자세히 그려내 마치 캠핑 장비와 용품 회사의 광고 사진처럼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창 코로나19 시국을 지나며 가족과 함께 떠난 캠핑이 고되어 ‘캠핑은 당분간 안할 테다’ 하고 선언했던 내 외침이 무색할 정도로, 생생한 캠핑 장면들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에 불을 댕긴다.
대조적으로 고양이 루이를 그릴 때는 정밀한 묘사 대신 루이의 움직임이나 표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로 인해 루이는 원근감과 입체감을 가진 배경에서 다소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도드라진다.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움직임과 자세를 하고 있는 루이를 보며 고양잇과 동물의 움직임과 표정, 성격과 습성이 궁금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늘 심드렁하거나 무관심한 표정이지만 고양이 도감이나 백과사전의 그림 속 표정과 비교해 보면 만족스러워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수년 전 이웃의 창가에서 날마다 코믹하고 창의적인 자세로 자신만의 평온한 시간을 보내던 고양이 맥스가 나에게 고양이의 매력을 알려 주었다면,『캠핑 좀 하는 고양이 루이』는 어쩌면 내게도 ‘집사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