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작지만 크게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 Gestalten

혼자 살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살든, 집은 우리 삶의 중심이며, 매일의 루틴을 실행하는 은신처이자 일상 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잠재력을 가진 공간이다. 이에 전세계의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은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도 삶의 표준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듯 사람들은 점점 더 크게 개인 주택을 짓는 경향을 보였다. 갑자기 두 개의 차고나 개인 사우나룸을 만들고, 주방을 넓히고 객실 수를 늘리고, 아이들의 놀이방을 따로 마련하는 등의 로망은 어느덧 서구 세계 사람들 다수에게 현실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1970년대 에너지 위기로 촉발된 난방 비용의 증가와 차세대 가족을 위한 작은 집들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건물 크기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곧이어 1990년대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조직을 더욱 밀집시키는데 주요 원인이 되었다. 도시의 구조적 업그레이드가 도시를 더 살기 좋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생활 물가 역시 더 비싸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도시에는 녹 지공간과 자전거 도로, 수영장 등 여가를 즐기기 위한 제반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이같은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임대비용 상승을 피해 콤팩트한 삶으로 다시금 눈을 돌리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도심 속 삶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됐다. 그렇다면 작은 집에서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임대비용은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더 작은 공간을 임대하거나 소유하는 것은 더 적은 수입으로도 가능하므로, 더 많은 시간을 돈벌기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더 작고 콤팩트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공간의 사치를 대체할 수 있는 귀중한 가치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한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거주 형태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콤팩트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근처에 사는 이웃과 벽, 편의시설 및 대중교통을 공유할 수 있고 직장과 집이 자전거로 왕복 가능한 거리 안에 있다면 수많은 건축재료와 일상의 소비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작은 공간에서는 어떻게 좋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다음 세가지 삶의 예는 지역의 기후, 문화 및 습관 혹은 생활방식에 따른 결과이지만, 그 안에 내재된 아이디어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공간이 만드는 라이프 스타일
사생활은 시각적 분리를 통해서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온 가족이 한 집에 생활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마주치지 않는 데에는 소형 생활 공간을 통한 시각적 분리가 기능한다. 일본의 경우 매우 작은 집에서 생활하는 가족은 반투명 스크린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잠을 자거나 층을 달리하는 공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이상 문만이 사생활 보호의 조력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이다. 또한 일본의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가구에 온갖 기능을 갖추도록 설계하여 가구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바닥에 몇 개의 다다미 매트가 있는 하이브리드방은 하루 종일 다양한 목적을 수행할 수 있으며 간단한 조작으로 일상적인 작업에서 그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일부 문화에서는 식탁과 소파의 배치로 식당과 거실을 분리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식당과 거실이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하곤 한다.
한편,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한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집의 크기에 관계없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두 개 이상의 문을 두고 집의 양쪽 끝에서 각자 분리해 생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수면 공간이 거실과 중앙에 있는 주방에 의해 나뉘면서 새로운 공공의 공간이 형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러 사람이 한 데 모여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은 현대 가정의 중심이 된다. 과거, 부엌에 있는 어머니이자 아내, 거실에 머무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라는 구식 분리법은 사라지고, 침실과 욕실을 제외한 중심 공간들로 대체되고 통합되었다. 스칸디나비아 주택의 또 하나의 특징적 측면은 실내와 일광과의 관계다. 자연광이 귀한 긴 계절과 춥고 습한 기후로 인해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인공 조명이 스칸디나비아 가정의 인테리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계기이다. 여러 시간에 걸쳐 해가 천천히 지는 동안 각 가정에서는 램프와 양초가 하나씩 차례로 켜진다. 이같은 빛의 섬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빛을 분산시키면서 하나의 방 안에 여러 공간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알프스의 전통적인 가옥 형식인 ‘샬레’ 스타일에서도 개인취침 공간과 요리하는 공간 사이의 기능적 분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난방 방식으로 인해 대부분의 경우 수직적인 분리가 이루어진다. 샬레 가옥의 중심에는 생활과 요리에 필요한 열을 제공하기 위해 거대한 오븐이 설치되어 있는 탓이다. 오븐은 가열된 후 몇 시간 동안 열기가 축적되어 따뜻함을 온 집안에 발산한다. 특히 거대한 오븐 바로 위층에 위치한 침실은 오븐의 열기가 상승한 덕분에 온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넓은 경사 지붕의 이러한 다층 주택은 여러 세대에 걸쳐 개발된 최적화된 구조로, 외벽의 표면을 최소화하여 온기를 보관한다. 이러한 샬레는 아담한 나무 헛간의 구조로부터 탄생한 디자인이다.
스마트한 작음
콤팩트한 생활의 중요한 측면은 작은 공간을 크게 보이게 하는 데에 있다. 감방은 의도적으로 작고 외부 환경과 단절되도록 설계되어 고립을 통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도원의 방들은 명상과 금욕적인 생각을 위해 매우 작게 고안되었지만 수도자의 일상 생활은 대성당의 도서관과 들판에서도 이루어진다. 작은 방에서 자고 명상하는 시간 외에 하루의 나머지 시간은 다른 수도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넓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콤팩트한 생활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방을 넓게 보이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적인 생활에 대한 보상과 더 적은 수입으로 얻은 시간은 외부의 공원이나 박물관, 스포츠센터, 레스토랑과 같은 대형 공공 장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한다.
도시 한복판으로만 몰리는 사람들로 인해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개인과 커플, 그리고 가족의 공간을 점점 더 작게 만들어내는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인다. 더구나 팬데믹 이후 한동안 집 안에만 머물러야 했고, 또 일해야 했던 사람들은 이전까지 잠만 자고 나오던 매력 없는 장소를 탈피하고 작은 집의 구조가 보다 스마트하고 아름다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한된 작은 장소에서 지혜롭게 구획을 나누고, 동선을 계획하며, 경제적인 측면까지 고려해 본다면, 집은 이제 크고 넓기보다는 자신에게 딱 맞는 공간을 지향하기에 이르렀다. 함께 살지만 서로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하며, 집 안에서 수많은 활동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생활하는 집은 아름다워야 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번뜩이는 기지가 마음껏 발휘되어야 하는 이유다.
April23_Inside-Chaeg_01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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