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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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6
섣불리 딸에게 공주라 부르는 엄마들에게
Editor. 김지영
할 수 있는 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아침에 일어나
멀뚱멀뚱 눈만 뜬 채 천장을 바라보다 밥 먹을 때만 이불 밖으로 나와 밥을 먹고 또 이불 속으로.
딱 겨울잠 자는 개구리. 침대에 너부러져 자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딸을 가진 부모들은 애칭으로 ‘공주’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 공주라 불리며 자랐다. 여섯 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 막둥이여서 아직도 아빠는 휴대폰 주소록에 내 번호를 ‘막내 공주’로 저장해두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어릴 적 다른 이들이 나를 공주라 불러주길 바라며 팔자에도 없는 ‘공주 코스프레’ 를 하고 다녔다. 벌레를 보고 무섭다며 달려가 안기고,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품에 안겨 뽀뽀나 윙크를 하는 등 갖은 애교를 떨었다. ‘공주’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섭다. 혼자서는 버스도 못 타는 여자아이가 어른처럼 내숭을 떨게 하는 마법 같은 단어랄까.
저자 페기 오렌스타인은 ‘공주’라는 단어가 여아의 정서, 환경 등에 끼친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잠만 자다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나 행복하게 산다는 혹은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받고 살던 신데렐라를 왕자가 구제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동화가 여아들을 남성 의존적 여성으로 자라게 할 수 있으며, ‘공주 이미지’가 여아에게 예뻐져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건강보다는 몸매를 가꾸거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도록 부추긴다고 말한다. 또 여자아이가 심사위원을 향해 윙크하고 성인 모델처럼 무대를 걷는 ‘예쁜아이 콘테스트’의 이면에서 보이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도 하고 있다. 저자가 언급한 문제 중 가장 주목하고 싶은 건 “상상력을 자극하여 감수성을 키워준다”는 ‘디즈니 컨슈머 프로덕트Disney Consumer product’의 경영자 앤디 무니Andy Mooney의 발언이다. 혹자는 앤디 무니의 발언에 부모들이 딸에게 공주 드레스, 플라스틱 구두, 왕관 등 공주 캐릭터 상품을 사줬고 그 덕에 디즈니가 큰 이익을 보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점을 짚었다.
최근 한 학급에서 아이들에게 ‘내가 ~라면 상점에 ~하며 갈 텐데’라는 문장을 던져주고 완성하게 했다. 남아의 경우 ‘내가 ~라면’에 거미, 슈퍼히어로, 공, 운동선수 등의 단어를 통해 세계를 탐색하는 사고를 했고, 여아의 경우 공주, 나비, 요정, 발레리나 같은 단어를 통해 여성상을 탐색하는 제한된 수준의 사고를 했다.
이 결과는 앤디 무니의 여아에 대한 상식이 수박 겉핥기 수준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저자는 ‘공주’를 좋지 않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부모는 딸에게 공주라 부르는 행위를 통해 ‘내 아이를 고통에서 보호할 수 있다’ ‘아이들이 슬품을 몰랐으면 한다’ ‘레이스(lace)를 통해 순수함을 지켜주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걸 저자 역시 잘 알고 있다.
언젠가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시중에 ‘딸 육아법’을 담은 다양한 실용서가 판매되고 있지만, 실용서를 읽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다. 자의든 타의든 사회가 ‘공주’를 통해 내 딸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줄지는 물론이고, 내 딸이 저자가 말하는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조심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딸을 공주라 부르는 엄마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