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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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8
마음이 체한 날
Editor. 박소정
고양이처럼 귀가 밝고, 야행성이며, 창밖 구경을 좋아한다.
고양이처럼 만사태평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늘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부대낀다’라는 표현이 있다. 인파로 붐비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는 상황 혹은 음식을 잘못 먹어 탈이 났을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리고 때때로 마음이 괴로울 때도 이 표현을 쓴다. 얼마 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마음이 부대끼기 시작한 적이 있다. ‘별일 아닐 거야, 금방 가라앉을 거야’ 하며 애써 무시해보았지만, 마음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를 더해가며 화까지 나기 시작했고 결국 마음은 단단히 체해버렸다. 그제야 모든 걸 내려놓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아 나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기도, 좋아하는 길로 산책을 다녀오기도 하였지만 거무튀튀한 잡생각만 늘어날 뿐이었다. 체한 마음에 지친 그날 저녁,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도시의 한 사찰에서 주지 소임을 다한 보경 스님은 본래 자신이 있던 송광사로 돌아간다. 산중에 있어 속세와는 단절된 이곳에서 그는 수행자로서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몇 개월이 지나 한해가 넘어가려던 어느 추운 겨울날 갑자기 노란색과 하얀색 털이 반반 어우러진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고양이는 오래 굶주렸던 모양인지 그의 처소 앞에서 도통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고양이를 불쌍히 여긴 그는 급한 대로 우유와 시리얼을 가져와 건넨다. 이날을 계기로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집사의 삶을 살게 된다.
고양이는 정말이지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1센티미터라도 높은 자리를 선호한다. 그리고 바라본다. 오직 움직이는 것은 꼬리뿐이다. 이 꼬리의 동작이 부동의 지루함을 상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바라보기는 불교적 수행이나 일상의 성찰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음의 모든 것은 진지하게 바라보면 가라앉으면서 소멸된다. 번뇌의 불이 꺼지는 것이다. 그는 단조로운 삶을 낯설게 하는 고양이로부터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늘 조용히 있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확고히 보여주는 고양이를 보고 그는 ‘침묵’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양이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선승을 떠올린다. 항상 먼저 말하지 않고, 뭔가를 물어보려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너는?’ 하고 질문을 던지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이별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고양이가 없는 삶을 떠올려본다. 밖에서 돌아오면 ‘야~옹’ 하고 반갑게 인사해주고, 아침 일찍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긁어대고, 사리탑이나 풀숲에서 숨바꼭질하던 모습까지, 그는 이런 모습을 되짚어보며 출가 이후 ‘집에서 기다려준다’는 설렘을 일깨워준 유일한 존재 냥이에 대한 사랑을 더욱 크게 느낀다.
문득 나의 삶에 고양이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SNS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양이책, 펜, 엽서 등은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지나가던 길고양이와 눈인사를 하고 나뭇잎으로 신나게 낚시 놀이를 하면서 우울했던 감정을 순식간에 날려 보내는 일도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재미없는, 삶은 달걀 같은 퍽퍽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했던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정신 건강에 참으로 이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