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21
누가 책의 미래를 묻거든
글.최재천
SF전문출판사 아작 편집장.
“우리는 우리가 본 대로 된다.”
“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만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우리의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
_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중
어쩐지 종로에 1호 매장을 둔 대형서점에 가면 볼 수 있는 글귀 같지만, 1964년 출간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책 『미디어의 이해』의 전제가 되는 문장이다. 매클루언은 책에서 ‘미디어’의 범주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광고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의복, 주택, 심지어 무기나 자동화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을 포함했다. 그리고 그 모든 미디어는 결국 인간의 확장이자 메시지라고 설파했다. 매클루언이 ‘미디어’로 정의한 그 모든 문명의 이기들에는 일련의 익살스러운 부제이자 해석이 붙었는데, 예를 들면 의복은 “피부의 확장”, 광고는 “사람들에게 안 지려고 야단법석”, 텔레비전은 “소심한 거인” 같은 식이다. 매클루언이 살아 있었다면 요즘의 핫한 미디어인 유튜브에는 어떤 수사를 붙였을지 궁금하다.
지금은 잊힌 지 오래지만, 빌 게이츠가 주도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2000년에 종이책의 종말을 선언하며 전자책단말기 ‘마이크로 소프트 리더’를 출시했다. ‘종이책 vs 전자책’ 혹은 ‘종이책은 정말로 사라질 것이냐’는 논쟁이 시작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논쟁이 여전히 한창이던 2012년, 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트 에코가 종이책의 우월함과 불멸성을 입증하겠다며 루브르박물관 장서각 2층에서 자신의 『장미의 이름』 종이책과, 그 전자책이 담긴 킨들Kindle을 집어 던졌다. 멀쩡한 전자기기는 박살이 났다. 에코가 킨들을 부수기 한참 전인 2007년,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킨들을 출시하면서 “킨들은 기기가 아니라 서비스”라고 천명했다. 즉, 전자책은 ‘킨들’이라는 기기 그 자체가 아니라 독자들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 형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낡은 것이다.”
_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중
과연 영상의 시대, 요즘으로 치면 유튜브의 시대에 종이책은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오승현의 데뷔작인 『꼰대책방』은 근미래인 2030년대, 일단 책의 종말로 시작한다.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까지 다 필요 없다. 사람들은 책 대신에 다른 이들의 지식과 노하우가 담긴 뇌신경칩 ‘미메시스’를 이식하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한다. 종로 1번지에 자리 잡았던 대형서점을 소유한 ‘제노그룹’은 보험과 책 대신에 미메시스를 서비스하며 지식산업과 뇌과학계에 혁명을 일으킨다.
주인공 지언은 이제 존재 자체가 사라진 헌책방집 아들로, 종이책에 대한 향수로 유튜브 채널 〈꼰대책방〉을 운영하다 알바로 연명하고 있는 백수다. 그는 어쩌다 제노그룹의 긴급대응서비스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출근하게 된다. 출근 첫날부터 회사 서비스에 의심을 품게 되면서 뜻밖의 사건에 휘말린다. 미메시스에 심각한 부작용이 계속 발견되었지만 회사는 계속 쉬쉬하며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압축하듯 정신없이 벌어진다. 연구자의 배신과 기업의 음모, 청년층과 노년층의 대립, 정부 관리를 매수해 더 큰 사익을 노리는 악당과의 대결은 물론 부동산 문제까지.‘그래, 역시 한국의 모든 사악은 부동산 문제로 귀결되지….’ 한탄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될 것이다. 아니 잠깐, 그런데 책의 미래는?
사실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되는 분량으로, 조금 더 촘촘히 사건의 얼개를 짜주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지금 같은 이야기라 더 속도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광고업계에 종사했다는 저자의 이력이 부족하지 않게 한 권의 책은 잘 쓴 카피 문구처럼 잘 읽힌다. 무릇 독서의 기쁨은 백 가지 단점을 찾는 일보다 새로 등장한 작가에게서 반짝이는 장점을 발견할 때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나처럼 종이책의 미래가 궁금하여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가 있다면,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문답으로 추천을 대신한다.
“저 끝엔 뭐가 있어요?”
청년은 물었다. 오래된 음성이 들렸다.
“자네 발밑엔 뭐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