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February, 2019
기지
Editor. 박중현
사적으로 고른 책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불친절하게 이야기합니다.
당분간 한국문학을 더듬습니다.
현실이 더 소설 같아 소설을 떠났다는 사람들. 그들의 표현은 현실이 더 다양한 문제적 상황을 보여주기에 되레 ‘재미’있다는 말이자, 현실에조차 못 미치는 소설에 대한 실망이었다. 이 감각에서 기대하는 건 ‘현실과 다름’이다. 이에 따르면 현실적인 소설은 읽을 가치 혹은 재미가 없다. 현실과 다름없으므로, 현실보다 못하다. 재현은 대상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국소설에 대표적으로 거는 값은 현실성이다. 얼마나 현실에 맞닿아 있으며 나아가 현실에서는 드러나지 않거나 못하는 더 현실적인 사례와 감정을 수면 위로 밀어 올릴 것인가. 즉 얼마나 ‘리얼’할 것인가. 예능과도 닮았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부터 조짐을 보여 ‘관찰’에까지 이른 그 기댓값. 먹방과도 닮았다. ‘남 먹는 걸 쳐다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에서 먹기보다 먹는 걸 보기를 더 즐겨하게 된 포인트. 돌아와, 이야기지만 현실 같기를 바라는 이유. 아프기 때문에. 뉴스나 매체로써는 감당도 못할 만큼 다양한 감정과 생각과 상처와 가치들이 나타나고 유실되기 때문에. 아니면 그것들에게는 선택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쉴 새 없이 손가락 사이로 스러져 떨어지는 모래알을 보듯 헛헛하기 때문에. 하지만 물음은 가능하다. 그로써 모든 소설적 기능과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핍진함이라는 ‘소프트웨어’는 모든 문학성을 호환하는가.
실은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소프트웨어’(틀이나 구조)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와 자극을 불러오는 경우는 많다. 이를테면 카프카의 「변신」의 핵심은 기계처럼 돈만 벌어오는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가 하루아침에 바퀴벌레로 변한다는, 현실성은 1도 없는 가상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맞닥뜨리는 가족의 반응을 비롯한 상황들은 그레고리라는 개인의 실존, 자본주의와 몰인간성이 잠식한 사회의 모습 등을 쓰디쓰게 곱씹게 한다. 물론 ‘16년생 그레고리 잠자’와 같이 구성하는 것과 뭐가 낫다고 할 수 없다. 불러오는 효용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면에서 그저 재현에 그치지 않거나, 혹은 마냥 진지‘만’ 하지 않는 소설은 당연히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 무기가 많다는 소리기도 하고 그물이 크다는 소리기도 하다. 줄기차게 ‘소프트웨어’ 비유를 견지하자면 보다 다양한 값을 출력할 ‘항’을 갖추고 있다는 소리기도 하다.
선생님들의 성대모사를 들으며 혜민은 부끄러워서 기절하고 싶었다. 되면 되지, 이제부터 하면 되지 하고 응원받았지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얼떨떨한 상태에서 오래된 옴잡이의 마음이 점점 어려졌다. —『보건교사 안은영』 중 「전학생 옴」
마찬가지로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안은영이 보건교사이자 퇴마사 ‘투잡’을 뛰는 것은 경제적 윤택함(?)을 위해서도 단순한 판타지 서사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녀는 분명 그냥 보건교사 안은영보다 많은 것을 다양하고 독특하고 희한한 목소리로 풀어낼 가능성을 띤다. 우월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용하기도 한 본문에 기대어 표현하자면 일상에서는 단지 힘든 경쟁이자 지난한 과정인 고교(혹은 인간) 생활이, 인간 아닌 ‘옴잡이’의 목소리로는 응원받는 꿈이자 조바심 날 정도의 욕심으로 출력되는 것처럼.
유쾌하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이 극단에 있는 것이 바로 아예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소재로 풍자와 해학을 보여주는, 지금보다 예전에 좀 더 많이 나오던 소설들이다. 이를테면 ‘국기게양대와 사랑을 나누’거나 ‘가정식 야채볶음흙을 만들어 먹’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그렇다. 언뜻 보기에는, 우습다. 특이하고 희한하니까. 하지만 이러한 소설들이 오히려 훨씬 깊고 무거운 것은, 언뜻 우스꽝스럽고 이목을 끄는 상황이 개연성과 당위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기게양대와 사랑을 나누고 흙으로 요리를 해먹는 비현실에 담긴 현실적 이유가 결국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여전히 말이 안 되더라도, 의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되더라도 세상에 과연 (남아)있을까 싶은 ‘비극’이며 무겁고 정치적이다. 웃기기는커녕 불편해진다. 하지만 이것야말로 이러한 소설들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표현에 개소리가 되지 않는 지점이다.
‘Ex-그레고리 잠자’인 바퀴벌레 이야기가 현실 독자의 눈가와 가슴을 적시는 이유이다. 또한 해당 소설의 문학성을 가장 선두에서 비호하는 것 역시 요놈들이다.
칸트에 따르면 기지ingenium란 “특수한 사항에 대해서 보편적인 사항을 생각해내는” 능력이다. 매력적인 문학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하는 ‘기믹gimmick’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소설의 기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