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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6
그럴 수 있을 때 어슬렁거리기
Editor. 유대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 대도시에 살았던 ‘놈팡이들’이 있었다. 인상주의 작품에 행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의 전성기에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한 근대 대도시의 스펙터클한 장면을 목격하고, 도시 산책을 즐겼던 한량들이었다. 보들레르와 벤야민은 이들에게 ‘플라뇌르flâneur’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플라뇌르는 도시의 수많은 ‘아무개’들인 동시에, 도시와 그 ‘아무개’들을 관찰하는 관람자들이었다. 느린 발걸음으로 도심을 누비는 이들은 근대 도시민의 새로운 자의식이었다. 플라뇌르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뛰어드는 대신, 걸어다니기를 자청했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의 파리’로 불렸던 도쿄에도 유달리 산책을 사랑했던 인물이 있었다. 게다를 신고 도쿄 곳곳을 산책하며 급변하는 도시 환경 속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아쉬워했던 그는 문학가 나가이 가후였다. 가후는 골목, 공터, 언덕과 강 주변을 유유히 산책하며 오래된 것들을 예찬하고, 사라진 것들을 기록했다. 손수 그린 지도도 전해진다.
말끔한 수트에 모자를 갖춰 쓰고, 지팡이 대신 박쥐우산을, 구두 대신 히요리게다를 신은 모습은 가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특이한 모습으로 어슬렁어슬렁 도쿄를 탐험했던 그는 항상 가던 식당에서 ‘자기 자리’로 찜해놓은 자리에서만 식사를 했다니, 식당으로선 달가운 손님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가후가 보여준 은둔형 게으름뱅이의 태도와 기행은 기품을 상실한 도시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근대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는 걷기를 택했다. 차를 타고 달릴 때 속도는 스치는 풍경을 뭉개지만, 걸을 땐 풍경을 이루는 모든 요소와 마주할 수 있다. 그는 기세 좋게 달리는 차를 피해 미로 같은 뒷골목으로 향했다. 남들보다 뒤쳐져 느릿느릿 걸으며 마주친 격자문, 하수구, 널빤지, 빨래 건조대를 사랑하고 기록했다. 곧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을 미리 아쉬워했다. 그렇다고 변화를 막을 수 있는 힘은 그에게 없었다.
21세기 서울도 비슷하다. 도시의 무늬를 이루던 골목들, 골계적 정취가 배어 있는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멸종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실상 없다. 가후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기웃거릴 곳이 남아 있을 때 최대한 어슬렁거릴 것.’ 단, 21세기 서울의 플라뇌르는 주의할 게 한 가지 있다. 그 기록을 SNS에 남기지 말기. 공유되는 순간 그곳이 멸종할 시점은 백발백중 앞당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