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Report

화성, 『화성의 타임슬립』
은하수를 여행하는 지구인을 위한 안내서

에디터. 김수미 / 그림. 프랑수아 슈이텐 / 자료제공.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 François Schuiten, Sylvain Tesson

한동안 주식·코인 열풍과 함께 ‘화성 갈끄니까~’라는 밈이 인기를 끌었다. 이 개그성 유행어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관련이 깊다.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2029년쯤이면 화성 유인 탐사가 가능할 것이며, 그곳에 1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고로 앞서 언급한 유행어에는 스페이스X의 화성행이 성공하면 테슬라 주식이나 그가 자주 언급하는 도지코인의 시세가 상승할 것이니, 지금 투자해서 훗날 이익을 보겠다는 기대 심리가 투영된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화성에 가게 될까? 허황되게만 여겨졌던 화성 정복의 꿈은 더디지만 한 발 한 발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스페이스X의 화성 탐사용 우주선 ‘스타십’은 지난해 시험 비행에서 안정적인 착륙에 성공했고, 여타 민간 기업들도 우주 관광 산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여름에는 “이번 휴가엔 화성에 한 번 가볼까?”라고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우리가 화성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작된 화성 체류기를 접하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루이 비통 트래블 북』 〈화성〉은 일러스트레이터 프랑수아 슈이텐François Schuiten의 그림에 여행 작가 실뱅 테송Sylvain Tesson의 촘촘한 스토리 라인이 더해져 마치 한 편의 SF 소설이나 그래픽 노블처럼 느껴진다. 이들이 그리는 2121년의 화성은 광활한 미지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프랑수아 슈이텐은 탐사선이 찍은 사진, 관련 서적, 지도, 암석 샘플 등을 참고해 실제 화성에서 볼 수 있는 협곡과 뾰족하게 솟아난 광물, 먼지 회오리를 생생하게 그림에 담았다. 이들의 이야기 속 인류는 아직 화성에 정착하지 못했다. 지구에 비해 현저히 척박한 조건이기에 인류가 이곳에서 생존하려면 우라늄보다 우수한 에너지원인 토륨Thorium이 발견되어야만 한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16번째 화성 탐사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 X와 Y는 화성 깊숙한 곳까지 탐색하며 토륨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SF 거장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소설 『화성의 타임슬립』에서는 인류의 화성 진출이 조금 더 진전된 상황을 그린다. 배경은 1994년이지만 여기에서의 인류는 성공적인 정착을 넘어서, 화성을 식민지화해 토착민 ‘블리크맨’을 착취하고 그들의 터전을 빼앗았다. 사실 거주 가능한 토양이 많지 않고, 자원도 빠듯한 탓에 생활은 매우 각박하지만, 지구에는 화성이 안락한 삶이 보장된 완벽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선전한다. 게다가 화성에 정착한 인간들에게는 어떤 ‘결함’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자폐 등의 장애를 가진 이들을 B-G 캠프라는 곳에 수용하고 그 존재를 숨긴다. 이곳에 억류된 소년 만프레드는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 채로 현실과의 소통이 단절된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화성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수자원노동조합장어니 코트는 만프레드에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특수한 예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자 한다. 그의 수주를 받은 수리공 잭은 숱한 연구 끝에 만 프레드와의 소통법을 찾아내고, 소년으로부터 화성 인류의 미래를 전해 듣는다.
썩 유쾌하지는 않은 두 화성 여행이 역설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결국 지구에서의 삶의 방식이다. 『화성의 타임슬립』에서 수 많은 인구가 화성으로 터전을 옮긴 이유는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한계에 다다른 탓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화성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약자를 착취하고, 심지어 부동산 투기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삶의 방식을 답습한다. 〈화성〉에서 X와 Y가 필사적으로 화성 이주의 가능성을 물색하는 이유도 인구 300억에 달하던 지구가 초토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온을 피해 지하 도시로 숨어들었고, 토양은 메말라서 새로운 생명을 틔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화성을 탐사하던 X와 Y는 마침내 꿈의 물질을 찾아내지만 이 사실을 지구에 보고하기를 망설인다. 토륨을 발견한 날 밤, X의 꿈에 기계들을 대거 동원해 끊임없이 화성을 파헤치고 개발하는 미래가 비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가지고 있던 것, 즉 지구를 몽땅 태워버린 인류를 위해 새로운 목초지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자문한다. 두 작품에서 한목소리처럼 예견하는 이런 풍경이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위해 만들어진 그럴듯한 상상이기만 할까? 현실에서도 인류가 화성행에 매진하는 주요 명분은 지구의 멸망에 대비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계속해서 무서운 속도로 지구를 고갈시키면서 말이다.
태양계 안에서 지구와 가장 흡사한 환경이라고 하지만, 화성의 대기는 95%가 이산화탄소여서 산소가 희박하고, 연평균 기온이 영하 60℃를 밑돌며, 중력은 지구의 40%도 되지 않는다. 조금의 불편함이나 더딘 속도를 참지 못해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구 위에 이 많은 물질을 쌓아 놓은 인류가 화성을 가만히 둘 리 없다. 처음엔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작될지라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편의, 과시욕과 정복욕을 위해 또 무언가를 차곡차곡 만들며 행성을 점령해갈 것이다. 〈화성〉의 그림작가 프랑수아 슈이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오염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 말한다. 이는 화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인간의 손이 닿은 것들의 운명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기도 할 것이다. 화성이 무결한 아름다움을 빛내며 그토록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는 아직 인류가 화성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존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돌아오지 못하는 떠남은 도피나 이주에 가까울 것이다. 언젠가의 화성 탐방을 꿈꾸는 여행자들에게 가상의 두 화성이야기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맑은 공기, 풍요로운 땅, 풍성한 자연과 다채로운 생명들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지구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때, 화성이라는 장대한 꿈도 숭고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돌아올 내 자리의 소중함을 알고 충분히 경탄하기. 그것이야말로 먼 여정을 떠나기 전,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July22_Mars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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