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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비추는 빛

에디터. 정현숙 자료제공. 알마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유년시절 고사리 손으로 치던 피아노 건반 멜로디와 함께 익숙한 노랫말이 귓가를 맴돈다. 동요와 소설, 드라마의 제목이 될 정도로 친숙한 노래 ‘즐거운 나의 집’ 덕분에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집이란 기쁘고 아늑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즐거운 웃음이 피어나는 집, 행복이 가득한 집,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집… 그런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질문의 모범 답안이 되어줄 만한 곳으로 초대한다. 스웨덴의 가구회사 이케아가 정신적 지주로 삼은 사람, 화가 칼 라르손 Carl Larsson의 집이다.
칼 라르손은 1853년 5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 구시가지 빈민가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지독하게 가난해서 배를 곯았고, 학대를 서슴지 않았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빚만 잔뜩 남긴 채 결국 집을 나간다. 14세 때는 남동생 요한이 죽는 슬픔도 겪었다. 무책임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세탁소에서 일했다. 그러나 가난은 쉬이 극복되지 못했고,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하고 쥐가 들끓는 허름한 집을 전전해야 했다. 사생활이나 안락함을 기대할 수 없었던 라르손에게 집이란, 그 어떤 긍정적인 요소도 없는 장소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그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주위 어른들 덕분에 라르손의 인생에도 점차 고운 빛이 드리운다. 열세 살에 그는 학교 선생님의 제안으로 왕립예술아카데미 기초과정 예비학교에 진학했고, 얼마 후 아카데미 정식 회원이 됐으며, 이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기에 이른다. 당시 라르손은 화가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는데, 아내 카린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이전과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실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즈음, 라르손의 화풍은 전통적인 유화에서 벗어나 수채화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당대의 유화에서는 볼 수 없는 그만의 맑고 투명한 수 채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888년, 부부는 스웨덴 서쪽의 작은 마을 순드본Sundborn으로 이사한다. 새 집도 생겼다. 카린의 부친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딸 부부에게 선물한 오래된 목조주택이었다. 여기저기 손볼 곳 많은 이 낡은 시골집에 젊은 예술가 부부는 ‘작은 용광로’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는데, 바로 오늘날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 된 ‘릴라 히트나스Lilla Hyttnäs’다. 라르손과 카린은 함께 고치고 꾸민 보금자리에서 여덟 남매를 길렀고, 또 생을 마쳤다. 부부의 취향과 감성이 담긴 릴라 히트나스는 현대 스웨덴 디자인의 초석으로 여겨진다.
스칸디나비아에선 춥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에 라르손 부부는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를 추구했다. 아기자기한 소품에서부터 벽난로와 양초, 여러 개의 조명을 이용해 밝고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산뜻하면서도 선명한 색감들을 과감하게 섞어 사용했다. 라르손은 집의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았고, 마당의 꽃은 물론 집 앞 작은 호숫가의 풀들까지 직접 가꾸었다. 카린 역시 아이들의 옷부터 식탁보, 소파와 쿠션 커버, 침대 시트와 이불까지 모두 스스로 수를 놓았다. 손수 디자인해 만든 가구와 물건들은 식구가 늘고 아이들이 자랄 때마다 천을 덧대거나 다시 바느질해가며 계속해서 쓰였다.
자녀들에게만큼은 따스한 주거환경을 선물하고 싶었던 칼라르손. 그가 평생에 걸쳐 가꾸고 완성한 것은 비단 집의 내외부만은 아니었다. 라르손은 가정의 행복을 자신의 삶과 예술의 세계에 투영했고, 이를 자신의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냈다. 부드러운 빛깔로 두텁게 칠한 그의 수채화 그림들은 가족을 향한 극진한 사랑과 헌신에 의해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칼 라르손과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북유럽 인테리어’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용적이고 소박한 가구들, 손맛과 정성이 느껴지는 침구들, 온화한 조명들, 그리고 그 가치의 정점에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두는 것. 이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의 방식이야 말로 집이라는 작은 우주를 완성하는 단 하나의 빛은 아닐는지.
November22_Inside-Chaeg_01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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