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한여름 밤의 책

에디터 : 김수미, 이석호, 전지윤

책 읽기 적당한 계절은 사실 가을이 아니라 여름 아닐까? 짓궂도록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실내에서 작고 간결한 동선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모든 것들이 저문 고요함 가운데 매미 소리와 선풍기 날개 소리만을 벗 삼을 수 있는 밤이라면 더욱 완벽하다. 끈적하던 바깥의 습기를 씻어내고, 집 안이나 휴가지의 가장 뽀송뽀송한 자리를 고른 뒤, 헐렁한 얇은 옷차림으로 책 한 권 들고서 그 공간 안에 몸을 쏙 밀어 넣는 기분이란! 자리맡에 시원한 음료나 맥주 한 잔 놓아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달의 토픽에는 이러한 나만의 시간에 읽으면 좋을 문학 이야기가 가득하다. 싱그러운 계절의 지나감과 아프게 자라나는 성장의 순간이 교차하는 여름 청춘 소설,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핫한’ 장르이자, 뜨거운 감자를 안고 있는 아프리카 문학, 눈으로 첨벙대는 사이 금세 온몸이 시원해질 것 같은 수영 이야기까지! 넘칠듯한 팥빙수 그릇처럼, 각 책들을 더욱 몰입해서 읽게 해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도 함께 듬뿍 담았다.
1-눈부시던 그 시절에게
시간이 흐른 뒤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리는 여름날은 찬란하게만 그려지나, 실제 여름 한가운데에 있으면 마냥 낭만적이기는 어렵다. 찌르는 듯한 햇볕,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발걸음마저 묵직하게 만드는 젖은 공기와 불멸의 벌레떼 등 다양한 요소들이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여름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우리가 청춘을 생각하는 방식과도 닮아있지 않은가 싶다. 청춘을 지나 보낸 이들은 그때의 반짝임을 아름답게만 추억하지만, 정작 청춘을 지나는 동안에는 아픔과 혼란, 절망과 부끄러움을 수시로 겪기 때문이다. 이처럼 밝음과 고통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여름과 청춘은 문학 안에서 종종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을 통해 성장의 순간에 겪는 혼란과 고통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며 명실상부 최고의 ‘성장 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의 초기작들은 청춘의 서사와 자연 풍경에 대한 묘사가 함께 다루어지는데, 그가 나고 자란 독일 남부 슈바벤Schuwaben 지방의 칼브Calw가 울창한 숲과, 작은 계곡 등 유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했던 영향으로 짐작된다. 헤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단편소설 「대리석 공장」에는 그러한 특징들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 짤막한 소설 안에는 다채로운 색과 진한 향기를 내뿜는 여름 풍경이 자주 묘사된다. “뻣뻣한 봉선화는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 굵다란 유리 대롱 같은 줄기 위에 꽃을 피우고 있고, 날씬한 붓꽃은 꿈꾸듯이 서 있고, 멋대로 자란 장미 덩굴은 화사한 주홍빛”을 띤다. 손바닥만큼의 땅도 보이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빽빽한 여름 꽃밭은 주인공의 내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막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여름 방학을 맞은 ‘나’는 조만간 바라던일자리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다. 쏟아지는 열기로 가득한 이맘때, 아침저녁마다 부지런히 노동하는 사람들을 한가로이 바라보기만 하면서, 그동안 수고했으니 자신에게 그럴만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과시적인 여름 풍경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괜스레 짐작해보게 된다.
내 주위의 대지는 마침 여름의 아름다움에 충만해 있었고, 곡식이 자라나는 밭은 누런 금빛으로 물결치기 시작했다. 공기는 아직 건초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무성한 나뭇잎은 여전히 밝고 강렬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아이들은 빵과 과실주를 들고 밭으로 향했고, 농부들은 바삐 일하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 나는 내 젊은 성숙함의 우듬지로부터 다정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어린이, 농부와 소녀들이 즐겁게 생활하기를 진심으로 빌었으며, 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_헤르만 헤세, 홍성광 옮김, 「대리석 공장」 『청춘은 아름다워』 중
2-지금, 아프리카 문학
스웨덴의 한림원은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아프리카 작가를 호명했다. 그의 이름은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 1986년 수상자인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이후 아프리카 작가로는 네 번째 수상이었다. 그는 1948년에 탄자니아의 부속 도서 중의 하나인 잔지바르 술탄국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에서 혁명이 일어난 1964년에 그는 16살의 나이로 영국으로 망명하여 이후 줄곧 그곳에서 살면서 인종과 문명간 갈등을 소재로 한 일명 ‘자전적 이산자 문학’을 전개해나간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그의 문학을 “식민주의 효과와 각 문화간, 그리고 대륙 간 심연에 빠져 헤매고 있는 난민의 운명을 비타협적이고 동정적으로 간파”하고 있다는 소감을 들며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를 비롯해 비서구에서 진행된 언어논쟁 중의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태풍』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본뜬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논쟁’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인 마노니는 유럽인인 프로스페로를 지배자로, 익명의 섬 원주민인 칼리반을 피지배자로 전유하여 이들 간의 심리적이고 언어적인 종속관계를 드러낸 바 있다. 배가 난파되어 고립무원한 외딴섬에 의도치 않케 유배를 당하게 된 프로스페로는 그 섬의 원주민인 칼리반에게서 섬의 주권을 빼앗고 그를 노예로 삼는다. 졸지에 노예 신세로 전락한 칼리반은 온갖 수발을 들며프로스페로의 언어를 배운다. 칼리반이 프로스페로의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프로스페로의 언어에 과학과 힘, 그리고 진리가 들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믿음은 강제된 것이다.
지배자인 프로스페로의 언어를 놓고 그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논쟁은 칼리반의 언어 및 문학 주권을 어떤 방식으로 복권할 것인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칼리반의 언어 및 문학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 내용 안에 다양한 근대의 모순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경제적 착취, 그리고 모국어의 압살 등과 같은 식민주의 혹은 신식민주의적 유제가 대표적이다.
3-헤엄치는 즐거움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로즈메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머리 위에서 하늘을 빙빙 날아다니며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보았다. 푸른 수평선으로 잉크처럼 스며든, 광활한 초록빛 바다를. (…) 해변은 줄무늬 천을 씌운 의자들과 기대어 누운 가족들과 젊은 커플들로 북적였다. 반바지 수영복을 입은 남자들이 원피스 수영복과 수영모 차림의 여자들의 뒤를 따라 달려가고 다 같이 물속에 풍덩 뛰어들었다. _리비 페이지, 『수영하는 여자들』 중
수영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를 들어 수영을 예찬한다. 그중에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꼽는 요소는 수영이 ‘자유로운 놀이’라는 점이다. 『수영의 이유』에서 저자 보니 추이Bonnie Tsui는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과의 인터뷰, 연구자료, 문학 작품 등을 적절히 제시하며 수영이 자유로움, 행복감, 만족감 등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입증한다.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Lidia Yuknavitch는 「언제까지나 물에서 살리라(I Will Always Inhabit the Water)」에서 “물에 들어가 수영하는 것은 내가 아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상태”라고 했고, 세계 최고령 마라톤 수영선수인 킴 챔버스Kim Chambers는 “물은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리는 장난스러움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는 보니 추이가 수영하는 동안에는 “지나간 모든 순간이 곧바로 새로운 순간으로 대체”된다면서 “항상 현재에 존재하는 마음”으로 수영하면 아이들과 같은 마음상태가 된다고 언급한 것과도 상통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수영은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인간은 읽고 쓰고 헤엄칠 줄 알아야 비로소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라는 플라톤의 유명한 격언은 말뿐 아니라 실제로도 존중받았다. 한 논평가는 “수영은 그리스 교육에서 필수 과목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이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헤엄치기는 민물보다 바닷물이 나으며, 차가울수록 좋다.” _하워드 민즈, 『헤엄치는 인류』 중
하워드 민즈Howard Means의 『헤엄치는 인류』에서는 인류가 수영하는 이유를 보다 다각도로 분석한다. 아일랜드 건축가인 에바 캔트웰Eva Cantwell은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자연을 가까이 느끼고 몸의 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며, 완전히 물에 의지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이 분리되는 것 같으며,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 힘이 느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극찬했다. 민즈가 인용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의대의 한 연구에서는 과도한 수영이 고령 실험군의 심방성 부정박동 위험도를 높일 위험이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엔도르핀의 상승으로 인해 인간은 수영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다.
June22_Topic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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