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but New: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한국 귀신의 모듬판
한국의 괴기담』

에디터:유대란, 사진:신형덕

*영화 < 곡성>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 곡성>을 보고 거의 한 달을 잔뜩 졸아 있었다. 머리로는 귀신이니 악마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수난이 밤마다 떠올랐다. 주인공 종구는 불안한 상태에 처하자 의심에 항복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부터 으슥한 곳을 지날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귀신을 믿지 않지만, 의심하는 순간 그것이 보일지도, 보인다고 착각할지도 몰라!’ 인간의 나약함을 조롱하듯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과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감독의 부정적인 인간관도 뇌리에서 쉽게 삭제할 수 없었다. 영화를 보기로 한 것부터가 의심에 넘어간 결정이었다. ‘설마 진짜 악마라도 나오려구.’ 그런데 진짜 나왔다! 내가 ‘설마’ 하며 영화를 선택한 것처럼, 종구가 ‘설마’ 하던 것을 의심하는 순간, 악마는 손을 뻗쳤다. 의심은 악마의 숙주였다.

무서움은 그 대상보다, 무섭다고 반응할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할 때 증폭된다. 그러니까 무서운 이야기를 자꾸 듣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두려움과 상상력의 임계치를 시험하고 싶어 하는 본능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무서운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줄 때, 많은 걸 각색하고 덧대기 마련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전설의 고향’을 기억하는지. 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 외가에 갔는데, 사촌들을 만나서 미용실 놀이를 하고, 시장에 할머니를 따라갔다가 붕어빵을 얻어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특히 ‘전설의 고향’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고대하던 밤이 되면 할머니 옆에서 잠든 척하고, ‘전설의 고향’을 실눈으로 몰래 봤다. 타이틀 음악이 나오면 그것부터가 무서워서 기절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 보고 싶었다. 처녀 귀신의 억울한 사연,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의 어쩔 수 없는 선택, 복수를 위해 불씨를 꺼트려서 한 가문을 망하게 하려는 원혼의 이야기를 보며, 쪄 죽을 지경임에도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한국 귀신에겐 한이 참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클라이맥스는 종반부, 김용식 성우가 “이 이야기는 OO도 OO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라는 내래이션이 등장하는 대목이었다. 그것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선언같이 들렸고, 나는 밤새 두 발을 이불 밖으로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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