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커다란 정원의 정원사처럼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이마주

“정원은 나에게 무한히 많은 것을 준다. 지난 수년 동안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 속에서 정원과 나는 친밀해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잎사귀들과 그들이 꽃
피고 열매 맺는 모습은 물론, 생성하고 소멸해 가는 모든 과정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친구였다.” _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

커다란 정원의 열정적인 정원사
질 클레망Gilles Clément이 쓰고 뱅상 그라베Vincent Gravé가 그린『커다란 정원』은 어린이를 위한 책일까, 어른을 위한 책일까. 판형은 415mm x 297mm이고 올리브색 제본 테이프로 책등을감싸 마감했으며, 책 앞뒤 표지는 3mm 두께의 하드보드지로 되어 아이가 손에 들고 읽기에는 무겁다. 그렇지만 이건 어른 손에도 마찬가지다. 얼핏 아트북 제본 형태로 판화 작품들을 묶은 것 같지만 한 번 보고 마는 장식용으로 두는 책은 아니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읽는 책이 분명한데, 이 책은 그림과 글을 번갈아 몇 번이고 또 들여다보게 한다.
그림을 그린 뱅상 그라베는 항상 그림을 그려왔고, 스케치북에서 손을 뗀 적이 없다. 2003년부터 그는 교사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러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10여 편 이상의 만화책과 책을 냈다. 그가 쓰고 그린 『Jardins des Vagabondes(방랑자의 정원)』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보면 화면 구성 스타일이 지금과는 다르다. 여전히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삽화는 특히나 세밀하고 기괴하며 유쾌하다. 5월에 시작해 열두 달 동안 커다란 정원의 구석구석과 땅속, 하늘 위와 물속까지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렸다. 화면은 바쁘게 움직이는 정원사만큼 바쁘게 채워졌다. 5월의 정원사가 콩알을 업고 가는 모습이나 구름 아래에 우산을 쓰고 밭이랑을 걷는 모습,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 뒤를 뛰는 정원사의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괴기스럽다. 6월, 7월, 8월로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 정원사는 때마다 다른 일을 하고 커다란 정원에 자라는 꽃과 풀, 잎과 줄기, 뿌리의 모습도 바뀌지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네덜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의 작품에서처럼 뱅상 그라베의 작품에 등장하는 요소들도 여백 없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다. 히에로니 무스 보스의 작품에서 인물과 동물, 기괴한 생물들은 풍자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뱅상 그라베의 그림 역시 클레망의 텍스트를 기초로 하긴 하지만 그라베의 상상력이 닿는 대로 표현되었다.

이 세상이 커다란 정원이라면
이 책의 저자 질 클레망의 경력은 대단하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경 디자이너이자 정원사로 세계 각지의 공공 정원을 조성해 왔다. 그는 ‘움직이는 정원(The Garden in Movement)’ ‘제3의 정원(The Third Garden)’ ‘행성 정원(The Planetary Garden)’과 같은 독창적인 생태주의 조경·정원 철학을 주창하기도 했다. 또 클레망은 식물학자이자 곤충학자이다. 곤충학자로서 그는 아프리카의 카메룬에서 산누에나방과(科, family of Saturniidae)의 새로운 속(屬, genus)을 발견하여 ‘부나에옵시스 클레멘티Bunaeopsis clementi’라 명명한 적도 있다. 그는 어릴적 상당히 위험하고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그의 생태주의 철학적 태도의 기초가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적 그는 부모님의 정원에서 장미 줄기를 기어오르는 작은 곤충을 잡으려고 분사기로 살충제를 뿌리려 했다. 그러다 분사 손잡이가 뒤로 튕기면서 눈썹에 상처를 냈고, 해충제가 벌어진 상처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그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졌는데,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를 유지하다 이틀 만에 겨우 다시 깨어났다고 한다. 그 뒤로 그는 해충제와 같은 독극물을 가까이한 적이 없다고.
그가 『커다란 정원』을 쓸 때 ‘행성 정원’이라는 생태주의 정원철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성 정원 이론은 자연계를 지배하는 법칙과 지구라는 거대한 정원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칙들을 개괄적으로 해석한 환경선언이자 철학이라 할 수 있다(Gilles Clément et al,『“The Planetary Garden” and Other Writings』, 2015, Universityof Pennsylvania Press Inc.). 그는 우리의 행성인 지구 전체를 하나의 큰 정원으로 보고,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자연, 즉 지구라는 행성을 정원사의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원사는 정성껏 정원을 돌봐요. 정성껏 돌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건 자연에서 늘 일어나는 일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날마다 배우고 깨닫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이 행성 정원 이론의 내용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면 첫째, 정원에서 자란 식물의 씨앗, 꽃가루, 열매 등은 그 정원을 찾아오는 벌, 나비 등의 곤충과 새, 다람쥐,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들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방식으로 교류가 일어난다. 정원에서처럼 지구에서도 다양한 종들이 어우러져 살며 종의 교류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다만, 인간이 교통과 물류를 통해 교류 시간을 더 빠르게 만든다는 차이가 있고, 인간의 이동과 정착에는 자연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환경과 생태 균형의 파괴 등이 일어난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 정원사가 바쁘게 정원의 작은 식물의 상태를 파악하고 다니듯이 인간도 지구의 상황을 정원사처럼 살필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고 이를 활용하여 지구를 아끼고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지구의 생물권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며, 그것이 행성의 정원으로서 우리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한계이다. 정원사는 정원의 생물 상태와 환경에 매우 기민하고, 정원 생물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내 정원처럼 여기고 아낀다면 생물 간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인위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조심하고 모든 생물유기체를 존중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지만 어려운
“정원사는 생명을 돌보는 사람이에요.”
‘커다란 정원은 결국 우리가 사는 지구인 것이야?’라고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 책의 정원은 집 앞의 정원일 수도 있고, 정말 이 지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우리는 이 짧은 대화를 뒤로하고 책을 열 번 정도 다시 읽었다. 그때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정원사도 찾았고, 또 몰래 지나가던 곤충도 찾았다. 클레망의 글은 심오하지만 지루 하지는 않았다. 정원사처럼 잠자코 기다리며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찾아와 이 책을 펼치고 정원과 정원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는 아이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봐도 좋다. 즐거운 동화책 시간을 기대했다가 어렵다고 도망가는 어린이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열매가 익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씨를 품은 열매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기다린 만큼 더 맛있는 열매를 맛볼 수 있지요. 탐스러운 빛깔을 띠면, 드디어 다 익은 거에요.”

October20_TailofTales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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