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Report

체코 프라하, 『프라하 러브레터』그대로 멈춘 영원

에디터. 정현숙 / 그림. 파벨 페퍼스타인 / 자료제공. 루이 비통 © Louis Vuitton / Pavel Pepperstein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잡고 건너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프라하의 명소, 카를교Charles Bridge에 얽힌 전설이다. 아무런 근거도 논리도 없는 말이지만 그 불확실성에 기대어 낙관하고 싶은 듯, 카를교는 밤낮 포옹하고 키스하는 연인들로 가득하다. 진한 애정 표현의 현장은 마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영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프라하는 가히 낭만의 도시라고 불릴 만한 풍광을 지녔기 때문이다. 고딕 양식에서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 사방을 둘러싼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은 미학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이루며 찬란하고 웅장한 기품을 연출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중세의 향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 천 년 전 즈음에서 시간이 완전히 멈춘 듯한 프라하에서라면, 인생에서 드물게 만나는 아주 황홀한 순간도 영영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영원으로 꿰어지는 단 하나의 좌표, 프라하가 꼭꼭 봉인해두었을 법한 두 개의 빛나는 순간을 열어본다.
서울에서 제일 큰 출판사, ‘작가시점’의 회의실. 긴 타원형 테이블에 네 명의 여자가 모여 앉아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재인의 차기작 출간을 앞두고 편집자들과 마지막 점검을 위해 모인 자리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무거운 공기가 맴돌고,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한 에디터가 재인에게 묻는다. 프라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 속 로맨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냐고. 이에 재인은 백 퍼센트 상상이라고 답한다. 그건 사실이었다. 편집자들은 영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강물은, 정말로 수억 개의 비밀을 안고 있기라도 한 듯 풍만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저 안에 내가 소설 속에서 빌었던 두 가지 소원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그제야 재인은 햇빛이 블타바강 표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장면을 제대로 묘사할 방법을 찾았음을 알았다. 얀 네포무츠키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간직된 수많은 이들의 소원이, 강물 바닥에서부터 수천수만 가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거였다.” _「재인의 시간」 중
출판사는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준비했고, 그중에는 해외순방 북 토크도 포함되어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프라하. 운명적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카프카처럼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두 가지 꿈을 간직한 재인이 오래도록 선망해온 도시였다. 며칠 후, 프라하 북 토크 현장. 예상 시간보다 훨씬 길어진 행사 막바지에 한 남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져온다. 책 제목을 왜 ‘카프카의 시간’이라 지었냐는, 재인이 처음 책을 집필하면서부터 꼭 한 번 받기를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자신의 소설 속 남자 주인공과 아주 많이 닮은 그 남자와 함께 재인은 그토록 고대했던 카프카 생가를 방문한다. 어느새 손을 잡은 채 걷고 있는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누며 그곳을 막 떠나려는 그때,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다가와 한국말로 말을 건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만난 지 이틀째인 사람들답지 않게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프라하에는 있더라. 마법 도시 같았어. 어째서 연인들의 도시로 그렇게 유명한 것인지 알 것도 같아.” _「재인의 시간」 중
『프라하 러브레터』는 운명적 사랑을 향해 내달음 하는 두 여성, 재인과 미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성에 의거해 진행되는 이들의 ‘사랑 찾기’는 『루이 비통 트래블 북』 〈프라하〉 편을 작업한 파벨 페퍼스타인Pavel Pepperstein의 그림을 통해 개연성을 얻는다. 페퍼스타인은 기하학적 요소와 순수한 색상을 통합한 기법으로 날마다 켜켜이 쌓여가는 도시 모습을 현대적 감성으로 포착한다. 구석구석 모두가 보석인 프라하를 여행하도록 이끄는 그의 그림에는 프라하가 가진 고풍스러움과 우아함, 화려함이 잘 묻어난다. 한편 그 진한 분위기 사이로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설렘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프라하라는 도시가 지닌 생명력이기도 하다. 청혼하거나 사랑을 고백하기 좋은 장소들이 프라하에는 셀 수 없이 많다. 마치 연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이 도시가 안겨줄 두근거림을 상상하며, 이번에는 미나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서울의 한 레스토랑. 미나는 주변 등쌀에 못 이겨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사람과 소개팅을 하고 있다. 코스요리의 마지막 순서인 디저트가 나오자, 상대방이 여행을 좋아하느냐 물어온다. 자신은 17살 때부터 쭉 미국에만 있었다고, 꼭 가고 싶은 도시가 프라하라고 덧붙이면서. 전 세계 195개의 나라, 그 중 인구 15만 명이 넘는 4,416개의 도시 중에 하필 프라하를 꼽을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낯선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프라하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미나는 헐떡이는 숨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복서의 마음이 된다. 까만 천장을 바라보다 결국 눈을 감아버리는 복서처럼, 어두운 터널을 천천히 더듬어가며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July22_Prague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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