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작가의 곁에서 독자의 눈으로
문학 편집자 강윤정

글 김겨울
에디터 현희진
사진 조성현

책의 세계에 머무를수록 편집자의 역할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 전후로 수많은 일이 있고 그 수두룩 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책을 쓰다 원고가 풀리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는 사람, 원고에 대한 반응이 가장 궁금한 사람 역시 편집자다. 편집자로 14년 차에 접어든 신뢰받는 편집자인 동시에 각종 채널을 통해 사랑받는 출판계 인플루언서, 그리고 이제는 두권의 책을 낸 저자인 문학 편집자 강윤정을 만나 보았다.
Q. 『문학책 편집하는 법』 출간 이후로 어떤 변화가 있나요?
A. 똑같아요. 주중에는 책 편집하고 주말에는 유튜브 영상 편집하고. 책 출간 후 조금 더 바빠졌는데, 무리 가지 않을 만큼 하고 있어요.
Q. 평일에는 출근하고 주말에는 유튜브 영상 만들고, 도대체 언제 쓰신 거예요?
A.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두세 달에 걸쳐 썼어요. 제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유튜브나 책 집필이 다 같은 이야기인데,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었어요. 책 이야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두세 달을 보내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하나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으니 좋기도 했죠.
Q. 책에 대한 반응이 느껴지시나요?
A. 현업 편집자분들이 올려주신 후기들이 꽤 있어서 조금 놀랐어요. 본인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인데 굳이 이 책을 사서 볼까, 생각했었거든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올려주는 후기가 힘이 되더라고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서로 아니까요. 저는 출판 편집을 14년째 하고 있는데요. 책을 쓰기 전에는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지난 시간을 정리해서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조금 뭉클해요. 쓸 땐 정말 힘들었는데. (웃음)
Q. 저자와 편집자일 때 책을 만드는 기분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책 중의 책은 단연 남이 만든 책입니다. (웃음) 저자로서 책을 쓸 때는 편집자일 때와는 또 다르게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 특히 ‘편집자 공부책’ 시리즈는 한 분야를 한 명의 저자가 대표하도록 기획되었기 때문에 그 중압감이 더욱 컸죠. 뛰어난 문학 편집자분들도 많고, 선배들도 많은데 굳이 내가 왜? 하는 마음이었어요. 사실 제가 편집자로서 작가들을 섭외할 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제가 그걸 어떻게 써요. 제가 뭐라고 그런 책을 써요”예요. 근데 제가 유유 편집자님께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웃음)기왕 쓰기로 한 거 마감 어기지 않는, 편집자 속 썩이지 않는 저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Q. 편집자 입장을 너무 잘 아니까, 담당 편집자님과 의사소통이 수월했을 것 같아요.
A. 손이 덜 가는 원고를 드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비문이나 수 정할 문장이 없도록 많이 의식했어요. 그런데 유유와 문학동네의 띄어쓰기 규칙이 다른 점을 간과했어요. 문학동네는 보조용언을 다 붙이는데 유유는 다 띄어서 쓰는 거예요. 교정지를 받아 보고 아차, 싶었죠.
Q. 표지는 첫번째 책에 이어 이번에도 이기준 디자이너님이 작업해주셨다고요.
A. 이 시리즈의 표지에 점들이 찍혀 있는데요.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 『역사책 만드는 법』은 각각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문학은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분야라고 생각해서 선을 잇지 않으셨대요. 책을 처음 실물로 보고는, 생각지 못한 표지와 색 조합이라 조금 낯설었어요. ‘유유이기 때문에 이런 책이 만들어졌구나’ ‘출판사의 색깔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죠.
Q. 책의 구성이 실제 업무일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A. 기획 단계부터 생각한 구성은 아니었어요. 결국 ‘만드는 법’이라는 실용적인 제목이 붙을 책이잖아요. 실용적인 정보를 재밌게 드리고 싶은데,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 쓰다 보니 일단 저조차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문득 평소에 제가 자주 듣는 질문인 “한 번에 몇 권 만드세요?”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저의 매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회사에서 매일 업무일지를 쓰거든요. 2월 한 달 동안 쓴 업무 일지를 4주분으로 나눈 뒤 각각 일지에 맞는 소스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썼어요. 예를 들어, 첫 주에는 외근 나갔던 일을 썼어요. 저라면 이런 궁금증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편집자가 외근도 하나? 안에서 교정만 보는 거 아닌가?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오디오북 녹음 현장에 갔던 일과 작가와의 첫 미팅 이야기를 담았죠.
Q. 14년 차 편집자이시죠.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어요. 서점에 가면 서가에 오래 있는, 구석에서 책 찾기를 좋아하는 독자였죠. 대학을 졸업할 무렵, 그저 막연하게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다른 기업에는 지원할 생각도 안 했어요. 마침 청림출판에서 신입 편집자를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청림출판의 여러 브랜드 중 추수밭이라는 인문 브랜드에 원서를 넣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교보문고 홍보팀에도 자리가 나서 그렇게 두 군데에 지원했죠. 둘 다 1차 합격을 했는데, 면접이 같은 날이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출판사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님이 쓰신 편집자계의 고전 『편집자 분투기』를 읽고 편집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었던 것 같아요. 책과 관련된 이렇게 매력적인 일이 있다니! 나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Q. 예상과는 다르게 첫 회사에서는 경제경영과 자기계발서 분야를 맡게 되셨다고요?
A. 네, 너무 모르던 분야라 힘들었어요. 제가 청림출판에 입사한다고 하니 행정학과에 다니는 친구가 “어, 거기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 나온 곳인데, 네가 그런 책을 읽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안 읽었고, 몰랐죠. 그리고 당시에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편견이 강하던 때였어요. 그렇게 일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깨지고, 비로소 이게 취미가 아니라 일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만약 처음부터 문학분야에서 시작했다면 독자와 편집자 사이의 거리감을 확보하는 데 훨씬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Q. 독자가 아닌 편집자로서의 자의식은 언제쯤 생겼나요?
A. 편집자로서의 자의식이 생기는 것과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청림출판에서는 매주 기획 회의를 했어요. 잘 모르던 경제경영 분야에서 기획 아이템을 찾으려다 보니 신문이나 책, 잡지를 볼 때 독자이던 시절의 여유를 더는 가질 수 없겠더라고요. 회의마다 모르는 이름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걸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했어요. 기획자로서의 훈련을 받았던 거죠. 그때의 경험이 이후 문학 분야로 넘어와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이를테면, 표지 문안을 쓸 때 작품 안에서 조금 빗겨 나와 시장과 독자를 염두에 둔다든지.
Q. 그래도 마음산책으로 가실 때 마음이 조금은 편하셨을 것 같아요.
A. 연차가 쌓이면서 출판 편집의 과정을 알고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일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에서 좋아하는 분야로 가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있었죠. 정은숙 대표님이 계신 곳이기도 했고요. 청림출판 다닐 때 선배들이 “윤정은 마음산책 가면 잘할 텐데”라고 자주 말했었거든요. 그리고 마음산책 다닐 때는 선배들이 “윤정은 문학동네 가면 잘할 텐데”라고 얘기했죠… (웃음)
Q. 옆 사람이 그렇게 느낄 정도면, 국내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나 봐요.
A.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청림출판 선배들도 모두 문과대 계열의 전공을 한, 인문 서적을 좋아하는 선배들이어서 신기했어요. 다들 개인적인 독서 취향과는 달리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는 진취적인 책을 만들었으니까요. 선배들은 이미 있던 원고를 다루는 문학책보다 편집자의 역할이 주도적인 경제 경영책 일이 더 잘 맞는다고 느꼈던 거죠.
Q. 문학 편집자의 경우 작가와의 유대 관계가 끈끈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A. 제그렇죠. 경제경영책은 작가가 한 권의 책에 각자의 관심과 역량을 집중해요. 문학책의 경우, 작가가 각자의 트랙에서 달리고 있으면 시기마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배정된다고 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이승우 작가님은 40년 동안 달리고 계시잖아요. 제가 2017년에 이승우 작가님 곁에서 달려서 소설집을 한 번 냈고, 이후 3년 동안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분들이 함께 달려주셨고, 이번에 연작소설집 『사랑이 한일』로 또 한 번 함께 달린 거예요. 『문학책 만드는 법』에서도 썼는데, 문학 편집자는 작가의 달리기에 순간순간 함께 뛰는 러닝메이트예요. 따라서 함께 작업하게 된 책 이전에 달려온 길도 알고 있어야 하고, 앞으로 어디로 달릴지도 알아야 하죠.
Q. 나는 이런 문학 편집자이고 싶다!
A. 잘 만드는 동시에 잘 파는 문학 편집자이고 싶습니다. 함께 작업한 작가의 책 중 가장 빨리 중쇄를 찍게 만들고 싶어요.
Q. 최근에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을 추천한다면?
A. 제가 최근에 작업한, 이승우 작가님의 연작소설집 『사랑이한 일』 추천합니다. 이승우 작가님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을 써오셨는데, 이번 책에는 창세기를 모티프로 한 다섯 편의 연작소설이 담겨 있어요. 성경은 아주 오래되고, 재해석도 많이 된, 규모가 큰 문학 텍스트잖아요. 저는 종교가 없는데도 정말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도 추천드립니다. 역시 책 중의 책은 남이 만든 책!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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