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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본능

에디터. 지은경 사진. 호르스트 키스트너 © Horst Kistner

어두운 감정에도 나름의 효용이 있다. 예컨대 분노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감정이다. 슬픔은 변화를 위해 필요하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도록 도와주니까. 두려움은 주의가 필요한 미래를 인식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우리가 수시로 느끼고, 또 함께 살아가는 이 감정들은 설령 받아들이기에 썩 유쾌하지 않더라도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그늘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억누른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위험한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고, 슬픔의 감정을 우려내지 못해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감정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문득 찾아오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 못해 왜곡시키고,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각각의 감정에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본능이다.
호르스트 키스트너의 사진 속에는 마치 패션 모델 같은 아름다운 외모의, 완벽한 화장을 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사진 속 배경은 어느 중산층 가정의 안락한 거실이나 침실, 주방이다. 늦은 오후의 따스한 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든다. 화사한 색상과 잘 어우러지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키치 문화와 그 이전에 유행했던 보수적인 스타일이 절충된 1960년대 스타일을 표방한것이다. 호르스트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온갖 애를 쓰며 살았던 그 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삼았다. 여성으로서 요구받았던 사회적 제약, 짊어져야 할 의무 속에서 이들은 다정하고 지혜로운 엄마이자 사랑스러운 부인으로,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면서도 완벽한 화장과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야 했다. 마음 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토해내고 정화하지 못한 채.
사진 속 인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고 삶을 무르익게 할 감정들을 싹둑 잘라낸 듯 보인다. 공허한 표정과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 때문에 바라보는 동안 숨을 참아야 할 것만 같은 긴장감이든다. 그러나 프레임 안의 모든 대상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듯한, 부드럽게 일렁이는 빛을 따라 인물들을 다시 바라보면 그들이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감정의 실루엣이 슬그머니 드러난다. 지금 사을 바라보는 눈길들이 걷히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순간이 오면 마침내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감정선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 우리가 감정을 잘 인식하지도, 또 잘 다스리지도 못하는 이유는 이 인물들처럼 어떤 정제된 모습을 강요받기 때문일까?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을 때 우리안의 수많은 감정들이 살아 숨 쉰다. 그리고 그 감정들과의 대면 속에서 성장도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는가?
호르스트 키스트너 Horst Kistner
독일 뷔르츠부르크 태생의 사진작가. 베를린 디자인 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22년 동안 음식 및 정물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에드워드 호퍼, 데이비드 린치, 알프레드 히치콕, 로이 앤더슨과 같은 영화제작자들과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은 그는 최근 독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예술 사진가 반열에 오르며 패션과 영화, 정물, 이야기가 혼합된 장면을 사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www.horst-kistn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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