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우정이라는 가능성

에디터 : 전지윤, 김광기, 김수미

여러 관계 중에서도 친구 사이는 유독 유연하고 한편으로는 긴밀하다. 무조건 영원을 맹세하려 들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멀어짐과 가까워짐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가끔은 우정을 위해 내 손해나 희생을 감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상호적이지 않으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는 법칙은 꽤나 정확하게 적용된다. 두터운 유리구슬처럼 단단하지만, 자칫 방심하면 하나둘 실금이 늘어나는 이 까다로운 관계를 능수능란하게 맺고 확장하는 능력이 우리 안에 분명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 위기의 징후로 ‘단절’‘분열’ ‘불안’ 등이 꼽히는 것은 우리가 점점 우정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어느 때보다도 우정의 연결회로를 재활성하자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요즘이다. 우리가 자꾸만 잃어가는 그 능력 안에는 자꾸만 득세해가는 혐오와 차별, 갈등과 외로움의 얼룩을 지워낼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친구라는 세상
솔직히 가끔은, 소위 말하는 ‘인싸’가 부럽다. 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기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개 매력적이고 타인에게 호감을 준다는 뜻일 테고,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아 심심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친구가 꽤 많았다. 교실 뒤편에 앉아 삼삼오오 공기놀이를 하고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나 잡기 놀이를 하는 동안 함께 뛰는 모두가 친구였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친구들 모두와 공평한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거나, 같은 관심사와 고민거리를 나누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지면서 그만큼 거리감이 생겨 관계가 소원해졌고, 그 사이에는 어김없이 균열이 생겼다. 그때보다 훨씬 많이 자란 지금, 나는 별로 인기가 없는 편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친한 친구들의 숫자로만 굳이 따진다면 그렇다. 하지만 내게도 여전히 소중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많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과 네트워크 양상이 계속 변해왔다해도 그중 많은 부분은 오래 지속되고 예측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인간 네트워크에 대해 이해하고 변화 과정을 추적함으로 써 우리는 우리 세계에 대한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다.” _매슈 O. 잭슨, 『휴먼 네트워크』 중
어머니는 항상 내가 발이 넓은 반면 친구는 별로 없어 걱정이라며, 친구가 있어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발이 넓다’는 건 다양한 사람과 교제하여 ‘아는 이’가 많음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고, ‘친구’가 많다는 말로 치환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휴먼 네트워크』의 저자 매슈 O. 잭슨Matthew O. Jackson은 ‘네트워킹이 잘 되어 있다’는 의미를 한 개인이 직간접적으로 주변의 행동이나 생각에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이끌어내는 도달 능력이 나쁘지 않다는 뜻으로 정의한다. 쉽게 말해 ‘인맥’이란 정보나 인적 자원의 협력과 영향력을 충분히 활용할 줄 알고, 그것들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신념이나 의견,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교류하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향, 즉 ‘동종선호homophily’ 경향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에 걸쳐 거의 모든 사회에서 나타났고, 동종선호가 없는 사회는 찾기 힘들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동종선호 현상은 왜 일어날까? 위의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젠더, 인종, 종교, 나이, 직업, 교육 수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일수록 어울리려고 노력하며 그들과 형성한 집단 내 교류가 ‘쉽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공통된 특징’이라는 근접성은 우정을 나누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나이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정보를 공유하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나 또한 우리 아이 친구들의 부모들과 우정을 나눈다. 서로의 양육법을 보며 배우고, 반성하고, 새롭게 익히는 유익하고 고마운 관계는 공통된 관심사 이상으로 우리의 우정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듯, 동종선호 또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 외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잭슨은 ‘인간 네트워크’의 이해를 강조한다. 저마다 다른 영향력이 만들어내는 비균질적인 네트워크에 내재된 편향을 인식하고 경계하자는 것이다. 여러 같고 다른 생각들을 보며 사는 지혜가 우리의 집단지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그는 단언한다. 그 지혜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질 높은 정보를 나누고, 차이를 넘은 협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때, 휴먼 네트워크가 가진 영향력은 어쩌면 친구라는 가치의 제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임신과 출산을 기점으로 여성에게 신체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나, 모든 어머니의 삶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패턴이나 사건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세대와 사회가 변하는데, 어머니에게 기대되는 규범이 18세기부터 그대로라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어머니란 존재는 이렇다’라는 모든 명제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며 그와 비슷한 모든 ‘모성’의 정의는 허디의 지적처럼 과학보다는 종교적 율법에 가까운 것이다. 어머니로서 겪는 현실과 과제는 모성이라는 오래된 율법이 만들어진 이후로 전혀 달라졌는데,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이러한 괴리에 대해 이해의 기반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대착오적인 윤리주의와 가부장제에 반감이 형성되고 전통적 성 역할에 거부감이 이는 일은 이처럼 관념이 사회 현실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2-연결의 키워드, 이방인
인간은 믿음, 곧 신념의 존재다. 믿음 없이 가능한 것은 없다. 종교적 믿음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믿는 것 없이 벌어지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후자는 고개가 약간 갸우뚱해진다. 일상생활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후자의 경우에도 답은 ‘그렇다’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금쪽같은 돈을 은행에 가서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행원에게 맡기고 나오는 것도 믿음이 작동해서다. 그런데 현대인은 과거 전통사회에 살던 사람들에 비해 어떤 대상에게 부여했던 믿음이 그리 오래 가질 못한다. 쉽사리 믿음을 부여하다가도 그것을 쉽사리 도로 거두어들인다. 종교적 믿음도 마찬가지고 일상생활에서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소위 개종이 밥 먹듯 일어나는 사회인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L. Berger는 ‘경신의 시대The age of credulity’라고 불렀다. 즉, 경박한 믿음이 만연한 시대란 것이다.
경신의 시대에선 모든 것에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어떤 것에 몰려 열광하다가 한순간 돌변해 그것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다른 것에 우르르 몰려가 숭앙하고 따른다. 핫플레이스 열풍이 그 예가 아닐까. 그곳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줄서서 열광적으로 방문하지만, 한번 인증샷을 올리고 나면 그곳에 또 들르기보다는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세상, 즉 ‘가변성’이 현대사회를 읽는 핵심어다.
이러한 경박성, 가변성, 변덕성은 현대인의 사회생활 속에 그대로 침범해 들어와 사람 간의 사귐에서도 어김없이 목도된다. 다시 말해, 현대인은 쉽게 사람을 사귀고, 너무 쉽게 헤어진다. 마치 아무런 의미 없이 하는 악수처럼, 그렇게 쉽사리 자신을 상대방에게 노출하고 대화하고 심지어 어떤 경우 긴밀한 육체적 접촉까지 하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요샛말로 ‘쿨’하게 헤어진다. 나는 이런 시대를 경박한 사귐의 시대, 즉 ‘경교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경교의 시대엔 깊이 있는 우정이나 사랑이란 게 존재하기 힘들어 보인다. 여기에 ‘사적 이해’까지 가미되면 사태는 악화일로다. 마치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건기의 들불처럼 관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지는 지경에 이른 관계에선 오로지 타인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으로만 구분 짓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을 도구적으로만 해석하는 관점과 딱 맞아떨어진다. 여기서 ‘도구적 instrumental’이란, 인간을 하나의 진지한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어디다 써먹을 구석이 있는지 그 기능만을 따진다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즉, 오로지 타인을 자신을 위한 하나의 ‘쓰임새’로만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3-그 우정 편지가 남긴 것들
아주 오랫동안 편지는 그리움을 전하고 단절된 관계를 잇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만날 수 없어도 곁에 있어주는 법, 나의 못난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고 기댈 줄 아는 법, 진심으로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법 등 지금 우리의 짤막하고 건조한 연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우정의 기술들이 편지 안에 깃들어 있다. 예술가들의 편지는 더욱 특별하다. 작품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내밀한 면면을, 소중한 벗에게는 가감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추억, 고뇌, 공감, 위로를 친구와 끊임없이 나누며 숱한 우정의 기록을 남긴, 그리하여 예술가이기 이전에 열정적인 ‘우정가’였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본다.
1946년 프랑스, 어느 두 사람의 교우가 시작된다. 한 사람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다른 한 사람은 프랑스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르네 샤르Rene Char다. 카뮈는 샤르를 ‘행성 길동무’라 지칭했고, 샤르는 그들의 교류가 서로에게서 공통된 ‘배후지’를 발견하는 일이었다고 표현했을만큼 두 사람의 우애는 꼭 닮은 정치관과 문학관 속에서 피어났다. 오랜 시간 카뮈를 연구한 작가 프랑크 플라네유에 따르면 “죽음의 수용소와 핵무기를 이용한 파괴가 상징이 된 무절제한 시대”에 두 사람은 각자 제국주의에 직접 저항했으며, 격정 속에서의 글쓰기를 구원이자 수련으로 삼았다.
카뮈와 샤르는 1946년 3월부터 1959년 12월까지 13년간 18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시작은 갈리마르 출판사 총서 ‘에스푸아르Espoir’의 책임자였던 카뮈가 르네 샤르에게 그의 책 『히프노스의 단장들』을 포함하고 싶다는 요청을 편지로 보내면서부터다.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엮은 책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에는 창작자의 고독을 이해하고, 서로의 작품에 경의를 표하는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샤르에 대한 카뮈의 각별한 찬사다. 카뮈는 우리에게 주로 날카롭고 강렬한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가 샤르에게 보낸 사적인 문장들은 달랐다. 그는 “요즘은 제가 말과 태도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1947년 6월 30일) 또는 “내가 언제나 적어도 존재를 느끼길 갈망하는 친구는 바로 당신입니다”(1955년 7월 8일)라면서 친구에게 자신의 애정을 서슴없이 표현했다. 또한 “감탄은 나의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는데, 어른이 되고는이 즐거움을 기대하지 않았지요. 당신과 만날 때까지는 말입니다”(1951년 5월 1일)라거나 “당신 자신에 대해서도, 비교할 데 없는 당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으시면 안 됩니다. 그런 의심은 우리와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나 다름없습니다”(1951년 10월 26일)라면서 동시대 문인으로서 샤르를 깊이 지지하기도 했다.
카뮈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뒤늦게 알려진 『태양의 후예』는 샤르와의 공동 작업물이기도 하다. 1950년 여름, 르네 샤르의 작품에 감탄한 젊은 사진작가 앙리에트 그랭다가 샤르의 고향 릴쉬르라소르그를 찾았고, 1950년 가을 동안 그 인근을 촬영하게 된다. 샤르는 카뮈에게 그 사진들에 짤막한 글을 더해 줄 것을 제안했고, 샤르는 책머리에 서시 ‘순간순간’을 덧붙였다. 그러나 1952년에 작업을 마쳤음에도 이 책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다가 카뮈 사후인 1965년에 아주 적은 부수로 출간되었다. 더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판본이 빛을 본 것은 1986년이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끝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르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책이 존재하게 하세요!”라던 카뮈의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를 무한히 신뢰했고 존경을 아끼지 않았던 두 사람의 우정은 정다운 편지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남았다.
“예술가가 걷는 길 위로 점점 더 짙은 어둠이 내립니다. 결국, 그는 눈 먼 채 죽어가지요. 나의 유일한 믿음은 빛이 그의 안에 깃들어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춘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걸 확신하겠습니까? 그러니 친구에게 기대야 합니다. 같은 걸음으로 걷고 있다는 걸 알고 이해하는 친구 말입니다.” _알베르 카뮈·르네 샤르,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중 카뮈의 편지 일부분
카뮈와 샤르처럼 서로 꼭 닮은 짝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1860년대 중반부터 10여년 간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성별도, 세대도 다를뿐더러 세계관과 문학관마저 극과 극이었지만 그들의 우정만은 꾸준했다. 두 사람은 1857년 4월,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 집필을 막 마쳤을 무렵 처음 알게 되었고 본격적인 교류는 그로부터 6년 후, 플로베르의 『살람보』가 혹평을 받고 있을 때 상드가 그의 편을 들어주면서 시작되었다.
상드는 남자처럼 옷을 입는 식의 기행이나,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 작가 알프레드 드뮈세와의 연애 등 가십으로 더 잘 알려져있지만, 30여 권의 소설을 펴낸 당대의 성공한 작가였다. 또한 방대한 분량의 편지를 남긴 그는 세계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서한문학가이기도 하다. 그가 평생 남긴 편지는 분실된 것을 포함하면 약 4~5만 통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그의 서간집에 등장하는 인물만도 2천 명이 넘을 정도다.
국내서로 출간되지 않은 관계로 플로베르가 상드에게 쓴 편지는 만나기 어렵지만, 조르주 상드의 편지 전집(지만지 출판사) 가운데 그가 플로베르에게 남긴 문장들은 만날 수 있다. 그는 플로베르가 ‘열 내지 열두 명을 위해서만 글을 쓴다’고 한 발언에 대해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글을 쓴다”(1866년 10월 1일)고 반박했고, ‘여성적 문학’과 상드식 낭만주의 소설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플로베르에게 광범위한 사랑의 힘과 선(善)에 대한 자신의 뜨거운 열정을 역설하기도 했다. 또한 플로베르의 희곡 『르 캉디드(Le Candidat)』에 대해 “당신의 희곡은 방법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재능을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재능을 쏟지 않는 지반 위에다 집을 짓는 데 사용되는 그럴듯한 골격이에요. 그 건물은 위치가 잘못됐어요”(1874년 4월 3일)라며 신랄한 비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플로베르에게 남긴 모든 편지에는 고된 노작에 시달리는 벗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겪지 말라며 “바람이 당신의 현 사이를 넘나들도록 내버려두세요”(1866년 11월 29일)라는 식의 따뜻한 조언과 애정 표현이 빠지지 않았다. 플로베르 또한 17세 위의 상드를 언제나 ‘스승님master’이라고 다정하게 불렀던 것으로 알려진다.
서로 다른 점이 많은 두 사람이지만, 그 생각들을 주고받는 것이 이들의 우정 방식이었다. 진솔함과 상대에 대한 커다란 애정으로 이들은 서로를 확장할 수 있었다. 상드가 플로베르에게 남긴 편지 중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꾼들 중에서 가장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성시킨다”는 구절은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April22_Topic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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