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of Life : 삶의 아틀라스

우리가 빈티지 의자를 좋아하는 이유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몽스북

디자인 역사 속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추앙받는 디자이너들 중 다수는 돈 많은 특권층이 아닌 학교나 회사, 구내식당과 같은 공공시설이나 공장에서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보다 이상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가구를 만들었다. 그들의 디자인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이다.
빈티지 의자는 과거 사람들의 체형과 사회상을 반영하기에 오늘날 사용하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이 의자들이 시대를 넘어 여전히 많은 사랑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 먼저는 빈티지 의자에서 인간을 향한 디자이너의 애정이 느껴지는 까닭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작은 부분도 연구를 기반으로 세심하게 설계한 장인 정신은, 이 의자들 자체가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넘어 공학적 설계와 소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 기록물로 남게 한다.
2021년 출간된 『마이 디어 빈티지』는 비투 프로젝트의 빈티지 가구 컬렉터이자 모험가인 권용식이 빈티지 가구를 찾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아름다운 빈티지 가구들 중에서도 인간을 위한, 인간에게 가장 밀접한 가구인 빈티지 의자들을 살펴본다.

AX 체어 by 비트앤뮐고르 스튜디오, 1950

페테르 비트Peter Hvidt와 올라 뮐고르 닐센Orla Mølgaard Nielsen은 1950년대의 산업화에 맞춰 대량 생산과 운송이 용이한, 경제적인 가구를 만들었다. 1944년 프리츠 한센Fritz Hansen과 프랑스 앤 선France & Son, 쇠보르 뫼벨파브리크Søborg Møbelfabrik의 가구를 디자인했던 이들은 1950년에 디자인한 AX 체어로 20세기 중반 덴마크 디자인의 아이콘이 되었다. 임스 부부로부터 영감을 받은 AX 체어는 좌판과 등받이가 두 방향으로 휘어진 라미네이트 목재판 하나로 되어 있다. 두 개의 판이 아니라 하나의 판으로 곡선을 만들어 낸 최초의 의자이기도 하다.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한 착좌감을 주고, 모로 보아도 만족스러운 이 의자는 여러 개를 올려 쌓을 수도 있어 어디서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덴마크의 대표적 산업 가구 중 하나다.

팬톤 체어 by 베르네르 팬톤, 1967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진보적인 디자이너 베르네르 팬톤Verner Panton은 기하학적 형태와 강한 색상에 관심을 가졌던 덴마크 디자이너다. 1958년 프레데리카 퍼니처 페어Frederica Funiture Fair의 응용미술 쇼에서 가구를 천장에 매달아 전시하고 의자의 구조를 변경해 관객과 비평가들을 놀라게 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답고 진부한 것보다는 덜 성공적인 실험이 낫다.” 이는 그의 미래지향적인 성향을 잘 대변하는 문장이다. 그는 가구와 조명, 패브릭 모두에 적용되는 몽환적이고 자극적인 사이키델릭 그래픽 패턴을 활용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의 대표적 의자인 팬톤 체어Panton S Chair는 1967년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디자인으로, 당시 신소재였던 플라스틱을 가구에 적극 활용해 이음새 없고 유기적인 구조를 지녔으며, 단순하지만 동시에 우아하다. 게다가 쌓아서 보관할 수 있고 쉽게 부러지거나 깨지지 않아 카페나 식당, 공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에그 체어 by 아르네 야콥센, 1958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은 덴마크 모더니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에그 체어를 비롯해 드롭 체어, 세븐 체어, 앤트 체어와 같은 다양한 의자를 디자인했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는 “건축물은 외관 못지않게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도 함께 예술적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라는 철학 아래 조명, 식기, 수도꼭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테리어 소품과 생활소품을 바라보았다. 가구를 생활 공간에 놓을 수 있는 조각으로 여긴 그는 무거운 덴마크 전통가구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재를 활용하고 위트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1958년 아르네 야콥센은 코펜하겐 시내 중심에 있는 SAS 호텔의 설계와 디자인을 총괄했다. 호텔은 투숙객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칸막이 설치를 제안했으나, 미관을 해치는 칸막이 대신 몸을 포근하게 감싸며 옆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에그 체어EGG Chair를 디자인했다. 에그 체어는 지금까지도 SAS 호텔의 상징이자 야콥센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디플로맷 체어 by 핀 율, 1958

핀 율Finn Juhl은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이자 가구디자이너다. 1940년대에 그는 숙련된 캐비닛 제작자였던 닐스 보데르Niels Vodder와 만나 새로운 형태와 생산방법을 연구해 다양한 가구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들은 코펜하겐 가구제작자 협회에서 14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6개의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1950년대 핀 율은 미국으로 진출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디자인 부서 에드가 카우프만 주니어Edgar Kaufmann Jr.를 만나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했고, 이들의 우정은 미국에서 핀 율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후한 매력의 디플로맷 체어Diplomat Chair는 1960년대 프랑스 앤 선에서 제조한 것으로, 세계 각지의 덴마크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언뜻 점잖고 평범해 보이는 디자인을 자세히 관찰하면 섬세한 유기적 곡선이 있으며, 이는 사용감에 있어서도 탁월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앉아서 팔을 뻗으면 손끝으로 느껴지는 팔걸이 끝의 감촉까지 신경을 쓴 디자이너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섬세한 디테일은 핀 율 가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로킹 체어 by 찰스 앤 레이 임스

유명한 부부 디자이너이자 오늘날 현대 디자인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는 쿠션 없이 3차원의 성형 합판 기술을 도입해 빠르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고자 했다. 유리 섬유와 철사, 알루미늄 등의 소재를 사용했지만 그들의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인체를 편안하게 지지하는 좌석과 등받이 모양을 찾는 것이었다. 푹신한 쿠션 대신 인체 굴곡에 맞춰 원형을 유연하게 구부린 그들의 디자인에 많은 평론가들이 ‘세기의 의자’라고 극찬했으며, 허먼 밀러에서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임스 스타일’은 가구계에서 대유행을 이끌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품질의 일상적인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활용했던 임스 부부. 1948년에 제작되어 아직까지도 생산되는 로킹 체어Rocking Chair는 시대마다 재료와 마감을 달리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LC2 3인용 소파 by 르 코르뷔지에, 1958

1887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1930년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한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는 화가, 도시 계획가, 작가, 가구 디자이너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진 현대 건축의 개척자다. 그는 주택과 인구 문제로 신음하던 도시 거주자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했으며, 디자인을 통해 혼란했던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애썼다.
1922년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 Pierre Jeanneret와 함께 세브르 가의 아틀리에에서 일하던 그는 1927년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과 협업해세 종류의 크롬으로 도금한 철제 프레임 의자 LC4, LC3, LC2를 탄생시켰다. 특히 LC2는 피에르 잔느레와 샤를로트 페리앙이 함께 개발한 것으로, 당대 태동한 현대주의 미학을 투영했다고 평가된다. 강철 관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직선 프레임과 푹신한 가죽 쿠션이 결합된 이 의자는 가장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모던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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