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오랜 민족사와 질곡의 현대사를 품은 타타르 공화국 국립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Ivan Erofeev 자료제공. XOPA Praxis

러시아 볼가Volga 강 동쪽에 위치한 도시 카잔Kazan은 독특한 문화적 융합이 있는 곳으로, 현재 러시아연방 타타르 공화국의 수도이자 1804년도에 러시아 세 번째 대학이 세워졌던 유서 깊은 도시다. 타타르인은 러시아 땅의 소수민족으로 과거 북방 초원에 살던 유목민 돌궐의 후예다. 그들의 터전을 슬라브인들이 처음 지배했던 것은 무려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자치공화국으로의 분리는 1991년 소련 해체와 맞물려 이루어졌다. 타타르인들은 현재 러시아 본토는 물론, 구 소련 국가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에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투르크어를 쓰는 무슬림으로, 스탈린주의 아래 크게 탄압을 받고 강제 이주를 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카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도서관이 작년에 시민들을 위해 문을 열었다. 타타르 공화국 국립도서관 본관은 타타르의 유산을 충분히 존중하며 지켜낸 공간이다.
새로 꾸며진 타타르 공화국 국립도서관은 1987년도에 ‘레닌 중앙박물관 카잔관’으로 건립되었던 건물이다. 소련 해체 직전, 세계적인 이념적 체계 실험이 부패로 물들어 내리막길을 걷던 때에 지어진 이곳은 혁명 이후에는 ‘카잔 국립문화센터’라는 이름의 시립박물관으로 쓰였다. 1970~90년 사이 러시아에서 지어진 건물들은 ‘러시아 건축’ 하면 떠오르는 1920년대 구성주의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그 유산을 이어받았다. 기계적인 소재들을 활용하고 추상적이고 불안정한 구조를 통해 혁명을 상징하려 했던 러시아 구성주의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되었다. 혁명기 러시아에 남은 유일한 미감은‘사회주의 리얼리즘’이었고, 널리 알려져 있듯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노동자의 삶과 가장 비슷한 것을 표방하면서 체제 순응적인 메시지를 재생산하는,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사조였다.
스탈린이 물러난 60년대 이후 러시아 건축은 조금 달라진다. 반세기 동안 외면되었던 혁명 초기의 아방가르드와 구성주의가 그제야 연구되고 재해석되면서 오래된 SF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무언가를 닮았지만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구체와 추상사이 어딘가에 있는 건물들이 러시아 곳곳에 세워진것이다. 당대 러시아 건축의 일례가 지금은 국립도서관이 된 이 붉은 건물이다. 벽돌로 이루어진 대각선이 몇 겹 덧대어져 있는 듯한 외벽 무늬는 소비에트 연방 소속 국기들이 휘날리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평면적으로 보면 전체 구조는 마치 서로 다른 크기의 네모난 공간들을 붙여서 만든 거대한 나비넥타이처럼 생겼다. 중심의 가장 좁은 연결통로에서 시작해 양옆으로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공간이 확장되고, 거기에 자료실과 열람실 등이 위치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가장자리로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는 동시에 얕은 계단을 통해 약간씩 바닥면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계단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마루 구조는 외관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일종의 고양감을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국립도서관 내부 리모델링을 설계한 러시아의 소파 프락시스 건축사무소Xopa Praxis는 원래의 건물이 가진 특징들을 존중하고 그 안에 공간들을 적절히 배치하되, 화사하고 활기찬 현대적 분위기로 탈바꿈시켰다. 도서관으로서 이곳은 1층에 어린이실, 청소년실을 포함한 자료실과 컴퓨터실, 음악감상실 등의 다목적 공간을 배치했고, 2층에는 식당과 열람 공간을 두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많은 도서관들이 서가와 열람 공간을 융합하는 것에 비해 연구나 공부를 위한 공간을 따로 조성해 보다 고전적인 도서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러 구획으로 이루어진 넓은 열람실 역시 얕은 계단들로 이어져있다. 한쪽에는 벽면을 활용한 ‘반전 데모’라는 제목의 조각 설치물이 있는데, 박물관 에 있던 것을 그대로 보존시켜 둔 것이다. 장식적인 천장 무늬와 인공적인 조명, 따뜻한 색조의 바닥재와 참나무 가구들을 활용한 열람실은 후기 모더니스트 소련 건축을 클래식하면서도 깔끔하게 오마주 한다.
도시 차원에서 볼 때 타타르 공화국 국립도서관 건물은 북쪽의 카잔카 강변과 건물 남쪽의 술탄 갈리예바Sultan Galieva 광장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다. 술탄 갈리예바는 종교 탄압이 심했던 스탈린 시대에 ‘이슬람 공산주자’를 자청하던 인물로, 타타르인의 민족 정서를 잘 드러내는 역사적 인물이다. 스탈린과 다른 방식의 공산주의를 주장했던 그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결국 처형되었지만, 그의 행보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수많은 문화적 압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혁명기와 함께 거의 절멸하다시피 했던 타타르 공화국 내 모스크는 근래에 들어서야 혁명 이전의 수를 회복했다. 이처럼 오랜 타타르 문화와 슬라브 문화,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의 잔재가 공존하는 국가적 정체성을 타타르 공화국 국립도서관은 기꺼이 끌어안는다.
December21_SpecialReport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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