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예술 위에 앉아봐요

에디터. 지은경 사진제공. 디자인하우스

좋은 옷을 입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고귀하게 거듭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니 별 다를 바 없어 보여도 100만 원이 넘는 청바지를 입고 혼자 만족하기도 할 테고, 시장에서 1~2천 원 오른 채소 가격에는 놀라면서 값비싼 옷값은 척척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 게다. 이와는 반대로 비싸고 귀한 식재료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사람들도 있다. 물건이나 옷 등에 쓰는 돈은 낭비라 여기면서 고급 식당에서 몇십만 원이나 되는 한끼에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자신의 공간을 채우는 가구에 상당히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품 가구에 앉으면 자신의 지위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일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고심해 만든 아름다운 형태의 가구와 밀착된 삶을 영위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일 수도 있다. 왜 사람들은 어느 특정한 것에 꽂혀 신나게 돈을 쓰는 걸까?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디자인 가구 열풍이 불고 있다. 값비싼 디자인 가구를 사는 사람은 아직 소수인데, 시내 곳곳의 카페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표절 상품들이 자주 보이 기도 한다. 아름다운 가구, 더 나아가 사용자의 성품이나 취향이 느껴지는 가구를 집에 들이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인것만은 분명하다. 디자인 가구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가구들이 여전히 유행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어떤 생각과 감성으로 가구들이 탄생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디자인 운동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던 시절에 탄생한 수많은 가구 중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가구들과 그들의 숨겨진 탄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모든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우상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uer는 함께 일하던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 샤를로트 페리앙 Charlotte Perriand과 함께 강철관과 소파 쿠션으로 이루어진 ‘LC2’를 디자인해 세상에 내놓았다. 당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사무소는 건축은 훌륭하나 가구는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진보적 안목을 지닌 페리앙이 1927년에 가구 디자이너로르 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 들어온다. 그때만 해도 차가운 강철관이 실내 소파의 소재로 쓰인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개념이었고, 사람들은 디자인 가구를 좋아하더라도 여전히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파 디자인은 시제품이 만들어진 뒤에도 대량으로 생산할 회사를 찾지 못해 사장되었다가, 35년이 흐른 뒤 카시나Cassina에 의해 복각되었다. LC2 이후 강철 프레임은 가구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오늘날 자주 사용되는 재료가 되었다. 편리함을 갖춘 혁신적인 아이디어 덕분이다.
구부린 강철 프레임이 특징인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의 의자는 ‘바우하우스 스타일’로 자주 오인된다. 많은 사람들이 바우하우스를 특정한 스타일을 지닌 새로운 개념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 바우하우스 정신은 싸고 아름다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대중에게 보급하자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품을 연구하여 최적의 소재를 사용한다. 이러한 바우하우스 정신은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이 있다고 여기는 세간의 믿음은 어쩐지 꺼질 기세가 없다. 바우하우스 재단의 블루메 박사는 ‘바우하우스적인’ 제품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의외의 답을 내놓기도 했다. 싸고 아름다운 대량생산품이라는 점에서 이케아가, 복잡한 시스템을 단순화한 아이폰이 그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Less is More(단순한 것일수록 좋다)”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으면 꼭 특정 재료를 사용하거나 형태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바우하우스 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니멀한 형태만을 보고 단순히 바우하우스 스타일이라고아는 체하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말이다.
1926년에는 신비한 조명이 세상에 나타났다.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이 만든 ‘PH 램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조명의 특점은 독특한 디자인이나 소재가 아니라, 빛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빛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적정한 조도의 램프가 필요하다. 이에 헤닝센은 빛이 적절하게 방 전체에 확산되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조명을 만들고자 했다. PH 램프 전등갓의 안정적인 곡선은 그 아름다움보다도 그 형태가 자아내는 부드럽고 풍성한 빛을 목적으로 한다. 전구가 발명되던 때에 만들어진 꽤 오래된 디자인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램프는 이후의 조명 디자인계에 큰 방향을 제시한 물건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전등을 만나곤 한다.
예전에는 파리에서만 쉽게 만날 수 있던 철제의자인 ‘톨릭스 A체어’는 1934년 자비에 포샤르Xavier Pauhard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 이 철제의자는 포개어 보관할 수도 있고, 실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카페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과거 프랑스의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의자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이 카피되는 제품이기도 하다. 편안한 사용감과 견고성이라는 큰 장점에 더해 디자인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답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프랑스정부는 톨릭스를 ‘역사적 가치가 있는 현존하는 중소기업’이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바 있으며, 지금은 프랑스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서든 톨릭스 A체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는 대중을 위한 디자인 가구가 지금까지 대중에게 남아있는 좋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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