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에로스가 쏘아 올린 물음표들

에디터 : 김수미, 박소정, 전지윤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며, 그 시작점이 바로 ‘에로스Eros’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열정과 육체적인 관계에 기반한 로맨틱한 사랑’을 일컬었던 에로스는 오늘날의 ‘연애’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지성이 가로되 모든 생명의 시작, 만고의 진리를 위한 첫 단추는 결국 사랑인 것이다. 자본이나 명예, 시간 등 수많은 것들이 종종 연애와 사랑보다 우위를 점하는 요즘, 사랑에 대한 논의는 진부하거나 배부른 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사랑을 궁금해하지 않는 시대야말로 명백한 세상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이달의 토픽에서는 사랑에 관한 많은 물음표들을 힘껏 쏘아올려 본다.
1-추적! 연애 세포
기온이 쌀쌀해지면 찬 바람이 몸을 지나 마음의 빈틈까지 파고들기 마련이다. 그 공허한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따뜻하게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딱 좋은 계절이다. 온갖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각자의 비평과 분석이 자유로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런 정보 없이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운명적 순간을 꿈꾸는 우리. 사랑에 풍덩 빠지고 싶다고 해서 지금 당장 첫눈에 반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지만, 첫눈에 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미리 짐작해볼 수는 있다. 우리의 몸을 앎으로써 말이다.

혹자는 운명의 상대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온몸에 전류가 통하듯 짜릿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보자마자 어떤 직감이 뇌리에 딱 꽂히는 이 장면을 잠시 정지 시켜 주인공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에 따르면 이 순간 뇌에서 번쩍이는 것은 편도체다. 편도체는 측두엽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로 순간적인 반응이나 감정을 관장한다. 처음 본 대상에 대해 좋거나 싫다는 판단 또한 가장 먼저 내린다. 이 과정은 약 0.1초 안에 이뤄지기 때문에, 언어로 생각을 거칠 새도 없이 온몸이 반응하는 듯한 감각처럼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미리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편도체는 인류가 가지고 있던 가장 원시적인 기능이다. 이를테면 숲길을 걷다가 우연히 기다란 밧줄을 봤을 때,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깜짝 놀라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신속하지만 정확도는 떨어지기 때문에 편도체의 판단만을 맹신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린 편도체가 보낸 정보를 차분히 판단하는 일은 대뇌신피질의 몫이다. 대뇌신피질은 긴 진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류가 실수나 착각을 방지하기 위해 열심히 습득한 고도의 뇌 기능이다. 낭만을 깨는 이야기인지는 모르지겠만 평생을 함께할 진정한 사랑을 첫눈에 판가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퇴보적이다. 자칫하면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었더라도 천천히 스며드는 사랑 또한 당신의 진정한 운명일 수 있다.

한편 우리가 사랑에 빠질 상대를 알아보는 데에 후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의 체취에는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주조직적합성복합체)라는 유전암호가 담겨있다. 면역 기능은 MHC 분자들이 몸에 들어온 외부 바이러스를 얼마나 잘 감지하느냐에 달려있으며, 사람의 MHC 체계는 저마다 달라서 각각 서로 다른 바이러스를 인식해 낸다. 만약 우리가 유사한 MHC 체계를 가진 상대와 사랑에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인류는 점점 바이러스에 취약해져 허무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면역 체계를 가진 사람끼리 결합하는 것이 인류 존속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MHC를 가진 사람을 체취만으로 구별해냈다. 1995년 스위스의 한 연구팀은 베른대학교 남학생들에게 티셔츠를 나누어주고 며칠 동안 착용하도록 했다. 이후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의 티셔츠를 나누어 주고서 마음에 드는 냄새가 나는 순서대로 적어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여학생들은 자신의 MHC 유전자와 가장 상반되는 유전자를 가진 남학생의 티셔츠를 우선적으로 적었다. ‘땀에 젖은 티셔츠 실험Sweaty T-shirt Experiment’의 결과를 필두로 체취와 사랑에 관한 여러 논의가 쏟아졌다. 그러나 『냄새의 심리학』의 저자 베티나 파우제Bettina Pause는 이러한 결과를 말미암아 ‘냄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자신과 상반된 MHC의 체취에 끌렸다기보다는, 유사한 MHC의 냄새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코가 생각 이상으로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최고의 냄새를 풍기는 파트너를 찾기보다는 피해야 할 인물을 거부하는 데에 관여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분석한다. 파우제는 그동안 ‘페로몬’과 관련한 실험 결과들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근거가 부족했는지 또한 지적한다. “이성을 사로잡는 페로몬 향수” 같은 광고 문구에 더이상 현혹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2-로맨틱 이코노미
인류 역사 속에서 두 남녀의 만남에는 늘 경제적인 의미가 얽혀 있었다. 여러 문화권의 전통 사회에서 결혼은 어느 한쪽 집안이 다른 집안의 노동력을 얻는 대신 지참금을 지불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기 속에서 남녀의 사랑에 성스러운 의미가 부여되고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이라는 가치가 생겨났다고 하니, 우리가 현재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것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사랑은 개인의 정체성과 서사를 조직하는 기제가 되었고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흔히 사랑하는 이를 ‘나의 반쪽’이라고 칭하듯, 하나뿐인 존재를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결여를 메꾸며 삶의 서사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오늘날 이상적인 사랑의 가치다. 연애와 결혼은 이러한 서사에 대한 각본이자 제도적 실천이다.

그런데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낭만적 사랑의 영역을 하나의 거대 시장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그리고 새롭게 나타난 연애시장은 전통 사회가 갖고 있던 집안 간의 거래 풍속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오늘날 친밀성 문화의 기저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불안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정량화된 가치로 측정되는 시장 구조 안에서 개인은 연애에 요구되는 비용과 기회비용을 계산해야 하고, 연애 시장 안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부단히 계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여러 층위가 자본화된다.

영화 〈플랜맨〉에는 모든 것을 초 단위의 철저한 계산 하에 실행하는 강박증을 지닌 남성이 나온다. 한 여성을 짝사랑해온 그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꼼꼼히 기록한다. 그를 지켜보던 주치의는 그가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했는지 묻는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알람을 맞췄는데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이 에피소드는 오늘날 우리의 계산적인 연애 풍속도를 극단적으로 은유한 장면이 아닐까. 후기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오늘날의 정치경제체계는 ‘시장경쟁력’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며 개인을 노동 시장 내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로 호명한다. 이때 자유롭다는 것은 철저히 시장의 입장에 입각한 표현이다. 즉, 개인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되고 이동될 수 있는 노동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개인은 특정한 주체성을 형성한다.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양되는 이 주체성은 ‘기업적인 자아’ 또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자격증 취득, 영어 회화 연습, 코딩 학습 등 부단한 자기계발부터 청약 저축, 주식, 적금 등 노후 대비까지 우리는 삶의 여정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정성에 대비하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으로 일상을 채운다.

이런 개인에게 삶의 서사를 함께 나눌 이를 찾는 것 또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일이다. 시간, 돈, 감정 등 각종 자원을 투자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기존의 연애와 결혼은 불안정한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과 위험이다. 그러한 위험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나타난 ‘썸’은 서로를 독점적이고 합의된 관계로 규정하는 것을 유예하는 관계 맺기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 시장의 자유로운 노동자는 연애 시장에서도 자유롭고자 한다. 물론 이때의 자유 또한 진정한 자유라기보다는 낭만적 사랑이 요구하는 독점적 관계 맺기로부터 이탈해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다. ‘썸남’ ‘썸녀’로 부르는 관계보다도 더 미약한 관계로서 ‘심(心)남’ ‘심녀’가 생겨나고, 그보다도 더 호감이 모호한 대상은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단어 속에 뭉뚱그려진다. 자신의 마음을 확정하고 연인 관계에 진입하기 전에 오랜 시간 리스크를 계산하고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영화 〈플랜맨〉속 남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3-틴더 시대의 연애 공식
한강 다리에 걸터앉은 배우 신구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친구 만드는데는 눈치 볼 것도 없고 잴 것도 없지. 지금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해.” 사람 좋은 얼굴로 인생의 지혜를 일러주는 것 같은이 장면은 틴더 코리아Tinder Korea의 광고다. 틴더는 2012년에 등장한 미국의 소셜 디스커버리 앱으로, 상대의 사진과 400자 미만의 간단한 소개를 본 뒤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그렇지 않으면 왼쪽으로 스와이프해서 좋고 싫음을 표현한다. 양쪽 모두가 ‘좋아요’를 보내면 매치가 성사되어 채팅이 가능해진다. 틴더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보세요!”라고 자신을 알리지만 사실 소개팅 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손쉬운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이 서비스는 빠른 시간 안에 각광받은 만큼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2015년 8월 미국의 연예 정보 월간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에서 대중문화 평론가 낸시 조 세일즈Nancy Jo Sales는 “틴더와 ‘데이트 종말’의 시작(Tinder and the Dawn of the ‘Dating Apocalypse’)”이란 제목으로 뉴욕을 비롯한 미국 대도시의 20~30대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며 틴더와 여러 앱에서 쉽게 이루어지는 훅업hookup 문화(성관계를 사랑과 분리된 신체행위로 여기는 것)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이 기사에 대해 틴더는 서비스의 부정적 기능만 강조되었다고 비판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인 진 트웬지Jean Twenge 또한 『#i세대』에서 훅업 문화를 조명한 대부분의 기사가 마치 젊은 세대가 틴더에 중독된 채 문란하고 가벼운 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호도한다고 지적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아지즈 안사리Aziz Ansari는 틴더나 유사 서비스를 사용하는 다수의 젊은이들이 진지한 로맨스를 동경하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자신의 책에서 역설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고 깊은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를 하며, 관계를 맺고 끊기도 합니다. 결혼이나 가정을 원하기도 하고요. (…) 하지만 불과 수십여 년 전 사람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극적인 차이가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해 봅시다. ‘바로 그 사람’을‘찾는다’는 두 가지 관념이 지난 시대와 완전히 다릅니다.”
_아지즈 안사리, 『모던 로맨스』 중

밀레니얼세대와 월드와이드웹이 등장한 1990년대 이후 출생한 i세대는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스마트폰에 일상이 연결된 채 살아간다. ‘얼굴 표정보다 이모티콘이 더욱 친숙해진 세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직접적 상호작용 대신 소셜미디어와 문자메시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초고속 인터넷이 거의 완벽히 구축된 세계에 태어났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언제나 가까이 해왔다. 웬만한 일들이 인터넷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데이팅 앱은 일탈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어떤 종류이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창구일지 모른다.

November21_Topic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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