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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일상

에디터. 지은경 사진. 리사 소르지니 © Lisa Sorgini

유대인 속담에 “신은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 모두를 보살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하고 위대하며, 모성이 얼마만큼 무한한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모성을 아름답고 신성한 일로만 치부해도 괜찮은 걸까?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와 역할을 강요하고 왜곡해온 건 아니었을까? 엄마라면 어떤 희생도 감내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되레 하찮게 치부되진 않았을까?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보건 분야의 분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바이러스 대유행이 만든 사회적 변화도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팬데믹 사태는 여성들의 삶에 특히 가혹한 직격탄을 날렸다. 사진작가 리사 소르지니Lisa Sorgini의 사진 시리즈 ‘비하인드 글래스Behind Glass’는 강도 높은 격리 조치로 인해 부모들의 육아 부담이 커진 상황 속에서 발현되는 모성에 대한 다층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자녀들에게 쏟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은 단순한 초상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적 성찰을 담은 창의적인 논평이자 문화적 가치를 지닌 기록물로써 큰 중요성을 가진다. 모성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설득력 있게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은 호주에서 첫 번째 자택 대피령이 시행되면서 시작되었다. 사진 속 유리창 너머의 세상은 고요하다. 부드럽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은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지루하게 보일 정도다. 얼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인 것만 같다. 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좌절과 두려움, 절망도 한데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녀와 함께 고립된 보호자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같이 노력하고, 그 드러나지 않는 힘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더욱 단단하게 벼려진다. 마치 문어가 새끼들의 부화를 기다리며 먹지도 자지도 않다가 죽음에까지 내몰리듯이 이들은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보살핀다.
그러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지키는 일에 따르는 감정의 결이 항상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작가는 격리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더욱 배가되는 양육과 돌봄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측면을 가시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그의 사진들은 모성의 빛과 어둠을 조명하고 있다. 색조 대비를 통해 육아 노동으로 얻게 되는 기쁨과 슬픔을 시각적이고, 종합적으로 전달한다.
각각의 사진은 창문이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을 설정했다. 흔히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창문은 관조자의 입장에 서도록 유도하고, 선뜻 접근할 수 없는 타인의 세계임을 암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창문 속 풍경은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진 시리즈만큼은 예외다. 투명한 창 너머의 모습이 실은 접촉을 막기 위한 강제적인 격리 상황임을 인지하고 나면, 일순간 답답함과 갈증에 휩싸이고 만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엄마는 불편을 감수하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낸다. 아이들은 오직 한 사람, 엄마에게 의지하고 있다. 옷과 피부를 잡아당기는 작은 손, 세심한 배려와 포근한 손길에 안긴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 등 익숙한 아름다움과 아늑함을 담은 이미지들은 그것이 엄마들의 마땅한 행복이자 희생이라 말하는 듯하다. 여성이 엄마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만들어왔던 삶과 정체성은 그렇게 서서히 잠식 당한다.
창문 안에는 따스한 기운만큼이나 강렬한 어떤 격정과 괴로움이 머문다. 차분한 색조를 머금은 이슬 맺힌 얼굴은 바로크시대 초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도 내면을 밝히는 자아의 빛을 찾으려는 개인의 욕망과 성찰이 느껴진다. 사진 속 한 엄마가 창밖을 응시한다. 그녀는 이제 막 무언가를 깨우친 듯 쓸쓸하고도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연 무엇을 이해한 것일까? 우리는 해독할 수 없다. 엄마와 아이는 이토록 이상한 일상을 그저 살아내야 하는,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는 각본 한 편을 써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일률적으로 맥락화된 모성은 그 이면이 철저히 감추어져 왔다. 모성은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의 부재는 죄악시되고, 때론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고립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뒤틀린 모성의 틀은 누가 만들었을까? 여성에게 씌워진 모성의 실체에 대해 되짚어보게 만드는 이 시리즈의 핵심은 결국 ‘연결감’에 있다. 단순히 희생이나 사랑, 혹은 모성이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기에 엄마인 여성들의 모습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오며 긴 여운을 남긴다. 오랜 세월 쌓여온 엄마들의 집단적 경험에 합류하는 사진들은 쉬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건재하는 여성들의 서사를 직시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사랑과 헌신으로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이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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