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알록달록 요정나라 놀이터 라 비브 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Maxime Delvaux, © Philippe Braquenier 자료제공. D'HOUNDT+BAJART architects & associates

완연한 봄의 풍경을 떠올리면 역시 파스텔톤 연두와 분홍이 그 배경색으로 떠오른다. 지루한 겨울을 지나 마침내 돋아 나는 새순과 흐드러지는 벚꽃잎을 닮은 색. 따듯한 봄기운을 닮은 이 색 조합은 아이스크림 가게와 같이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공간 인테리어에도 자주 활용되는데, 아마 뚜렷한 이유 없이 보는 사람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분홍과 연두는 사실 서로 보색에 가깝다. 분홍을 반전하면 청색이 아니라, 의외로 녹색 계열인 국방색이 된다. 녹색에 노랑이 섞인 연두와 분홍은 이처럼 서로 상극에 가까운데도, 봄이라는 계절마다 자연이 뿜어내는 생동으로 조화를 이룬다. 자, 오늘 찾아갈 도서관은 일렁이는 봄의 빛깔을 담은, 일견 어린이 놀이터 같아 보이면서도 무척 예쁜 공간이다. 이름마저 유쾌한, 프랑스 북쪽 됭케르크Dunkerque의 라 비브 도서관LA B!B Library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세련되어 보이는 이 건물은 1841년도에 처음 세워졌다. 도서관으로 탈바꿈하기 전에는 16~18세기 미술작품이 전시·보관되었던 됭케르크 미술관이었던 건물로, 1973년도에 대대적으로 보수되면서 20세기 중후반 모던한 건축 스타일을 계승했다. 거대한 규모에 벽 전체를 덮은 흰 대리석, 독특한 지붕이 있는 구 현관 출입구가 그러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재건축 사업 초기에 됭케르크시는 새로 꾸려질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았는데, ‘도서관처럼 보이지 않는 도서관’을 원하는 것으로 요약되었다. 이에 따라 설계사 디하운트 바자르 건축사무소 D’houndt+Bajart architects & associates는 역사적인 원 건물의 전체적인 틀은 유지하되, 내부의 스타일이나 겉모습만이 아니라 동선과 구성을 완전히 뒤바꾸는 전략을 취했다. 우선 1층 이곳저곳에 통창을 크게 내서 건물 내부로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게 하고, 기둥을 여럿 제거해 내부 전체가 구획되지 않은 하나의 널찍한 공간이 되게끔 만들었다.
바깥에서 본 도서관의 네 옆면은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넓은 동쪽 면은 통창이라 바깥 풍광을 내부에서도 그대로 감상할 수 있고, 야외 자리와 실내 사이를 쉽게 왔다갔다할 수 있다. 남쪽 면 야외에는 원통형의 구조물로 둘러싸인 비상계단이 있는데, 미니멀한 스타일이면서도 장식적이어서 이곳이 원래 미술관이었다고 은근히 티를 낸다. 기존 미술관 입구는 서쪽 면에 돌출되어있는데, 지금은 지붕 아래를 유리벽으로 막아 음악 감상실이 되었다. 새 정문 출입구는 북쪽면에 위치한다. 얼핏 전체가 정방형인 듯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획일적이지 않게 1, 2층 창문이 나 있고, 그 옆에 도서관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B!B’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도서관을 뜻하는 준말인 ‘la bib’에서 ‘i’를 ‘!’로 뒤집어 위트를 더한 것이다. 네모반듯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얼핏 권위적이어 보일 수도 있지만, 유쾌한 이름 석 자를 정면에 내세워 이곳이 유연하고 흥미로운 공간임을 드러낸다.
전체 공간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층계를 포함한 바닥 전체에 이어지는 등고선 무늬의 프린트다. 일렁이는 물웅덩이 같기도 한 색면은 간혹 마주치는 벽의 움푹 들어간 자투리 공간에도 맥이 통한다. 이 자투리 공간은 은근히 깊어서 그 안에 몸 전체를 푹 담근 채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영상물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이 바닥재는 기성 건축자재를 조립해 만든 게 아니라서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고 한다. 으레 그러하듯 넓은 바닥면을 작은 유닛의 자재를 사용해 패턴으로 채웠다면, 지금처럼 화사한 색이었더라도 그저 그런 얌전한 공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반면 지금은 공간 전체에 거대한 그림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채화에서 볼 수 있는 색의 농담을 추상화해서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카페로 들어서게 된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1층과 2층을 잇는 중앙의 넓은 층계 구조물과 함께 밝은 공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계단 겸 의자 아래에는 소강당 무대가 숨어 있다. 2층까지 건물 전체가 하나로 트여있는 데다가 층고도 높은 편이라, 전혀 갑갑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이용하는 책장이나 가구를 포함한 디자인 요소는 철저히 휴먼 스케일human scale에 맞춰져 있어 책장도 낮고, 층계나 턱도 전체 크기에 비해 높지 않아 이용하기가 편하다. 용도에 따라 필요한 구획은 천장에서 드리우는 커튼을 활용했다. 이처럼 단절감을 최소화한 공간은 마치 바닥, 벽, 천장이 나뉘지 않은 거대한 굴처럼 느껴진다.
도서관이라기엔 격식 없고 편안한 이곳은 넓은 놀이터와 같다. 모든 놀이와 유희가 그러하듯, 이 공간 역시 통일성보다는 조화로움을 강조한다. 반복 재생산되지 않은 바닥뿐만 아니라 조명이나 집기들도 마찬가지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세로로 긴 등, 바닥 무늬와 유사한 큼지막한 비정형 조명, 동그란 탁상용 등을 활용한 조명도 전체 공간에 잘 스며든다. 열람을 위한 책걸상은 군더더기 없는 흰색, 책장은 먹색이나, 소파나 야외 가구는 다채로운 색을 활용해 밝은 분위기에 걸맞으면서도 돋보이게 배치했다.
어느 요정나라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어딜 봐도 도서관 같지 않은 이곳에 가면 조용히 하라는 어른들에 아랑곳 않고 가위바위보 하면서 깡총깡총 밟고 노는 어린이들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시내 안쪽, 중앙시장 건너편에 이렇게 예쁜 놀이터가 있는데 어떻게 안 들어갈 수 있을까!
April22_SpecialReport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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