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아파트의 탄생

에디터: 유대란, 박소정

도시산업화로 전 세계적으로 도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아파트는 현대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2050년이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살게 된다고 하니 아파트 개발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을 뿐 아니라 생활 방식과 깊숙한 의식구조에도 영향을 미친 아파트에 대해 알아봤다.

아파르트멍, 아파트먼트, 아파트
도시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건물 숲에서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 층이라도 더 높은 층을 선호하게 됐다. 그래서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로열층’이라는 이름이 붙고 매매가나 전세가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 현상은 어디까지나 엘리베이터가 들어서면서부터 발생한 것이다. 아파트가 최초로 들어섰을 시기부터 엘리베이터가 대중화되어 아파트에 보급되기 전까지는 고층일수록 오르기 힘들기 때문에 값이 저렴해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빈곤한 노동자 계층이 사는 경우가 흔했다. 아파트는 넓은 의미로 공동주택을 말하며, 오늘날 우리나라 건축법상으로는 공동주택 중 주택으로 사용되는 층수가 5층 이상인 곳을 뜻한다. 4층 이하의 집은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으로 분류된다. 여러 세대가 한곳에 모여 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갖추기 힘든 놀이터, 주차장, 공원, 놀이터 등 공동 편의 시설을 지어 사용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건축공사비, 도로 및 공공시설에 들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라는 명칭이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지만,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어온 말로 그들이 아파트먼트apartment를 줄여 부르기 시작한 것이 들어와 고착화된 것이다. 아파트라고 처음 불리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로 불어 ‘아파르트멍apartment’에서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 저택은 식당과 갤러리, 서재 등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때 주택 내에서 비슷한 성격의 공간을 묶어 ‘아파트르멍’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침실, 의상실 등 가족들이 쓰는 사적인 공간을 아파트르멍 데 소시에테appartment de societe, 즉 친밀한 공간이라고 부르며 큰 주택 내부에서 작게 나누어진 공간을 일컬었다. 사전적으로 보면 아파트apart는 ‘분리된’ ‘독립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엄밀히 따지면 단독주택을 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공동주택’을 뜻하며 상반된 의미로 통한다. 참고로 우리와 달리 외국에서는 아파트의 명칭이나 의미가 조금씩 다르게 사용된다. 일본에서는 아파트를 저층 공동주택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며, 우리나라 기준에서 아파트는 일본에서 ‘만숀’이라고 부른다. 또한 영국에서는 공동주택을 ‘플랫flat’이라고 부르며, 미국에서는 임대 용도에만 ‘아파트먼트’라고 부르고 분양용은 별도로 ‘콘도미니엄condominium’이라고 지칭한다.

아파트의 탄생
아파트의 기원 ‘인슐라’
밑에서 올려다보면 끝이 안 보이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나칠 때면 새삼 문명의 발달속도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현대 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아파트는 언제 어디서부터 지어지기 시작했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아파트의 기원은 놀랍게도 2,000년 전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의 서민들을 위해 지어진 ‘인슐라insula’는 다층으로 구성된 다세대주택으로 아파트의 시초로 여겨진다. 인슐라는 섬island을 뜻하는 라틴어 ‘insulae’의 복수형인데, 독립된 섬과 같은 세대가 모여 살게 되자 이렇게 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보통 건물은 5층에서 6층 높이로 지어졌으나 간혹 10층이 넘는 고층 인슐라도 있었다.
보통 인슐라 1층에는 상점이 있었으며 2층부터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어 오늘날 주상복합아파트의 형태와 비슷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층수에 따라 계급이 차이가 나기도 했는데 2층에는 중산층이 살고 올라가기 힘든 고층일수록 가난한 서민이 살았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음식을 해 먹을 때는 공동 화덕을 사용하거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또한 수도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공중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사용해야 했다.
인슐라는 땅값이 비싼 대도시에서 서민의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로마에 약 4만6,000채가 있었다. 당시 로마의 부자들은 ‘도무스domus’라고 불리는 저택에 살며 인슐라를 소유해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활용했는데, 이때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부실공사나 불법 증축이 횡행하기도 했다. 이에 네로 황제는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세대 간 거리를 30피트 이상 두고, 화재 시 탈출을 위해 베란다를 확보하는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인슐라 건축법을 제정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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