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아시아의 시간

에디터 : 김수미, 정호재, 전지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시아에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상황에 따라 온도 차가 극명하지만 말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동안 아시아가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여겨지면서 아시아계 혐오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한편으로 음악, 영화 등 한류를 필두로 하는 아시아의 문화적 성취에 대한 세계적 관심 또한 나날이 뜨거워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의 측면에서 강대국이라 여겨왔던 나라들의 실망스러운 대처와 달리,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체계적인 방역 수준은 세계적인 귀감으로 손꼽히고 있다. 경제적 성장에 있어서도 아시아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러한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아시아란 무엇인가? 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 질서가 달라질 것이란 예측은 적중할까? 이달의 토픽에서는 오랫동안 서구 세계로만 향해왔던 우리의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보고자 한다.
1-아시아의 기원을 찾아서
‘아시아’ 하면 누구에게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미지나 관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려고 하면 쉽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국가들을 통칭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유라시아 판으로 이어져 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는 계속해서 변화해왔으며, 현재도 러시아나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과 같이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유럽으로 인정하는―혹은 인정받기를 원하는―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유한 문화나 종교, 역사, 인종에 의해 단일한 공동체로 분류해도 크게 이질적이지 않은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단일체로 여기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문화와 인종, 독자적인 역사로 이루어져 있어 뚜렷한 소속감이나 결속감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시아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아시아가 유럽을 포함한 서구 중심의 관점에서 정의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아시아의 역사』의 저자 마츠다 히사오는 “서유럽 세계를 기준으로 그 척도에 아시아를 맞추어 보고, 그 척도에 맞지 않는 것은 ‘아시아적’이라고 정리한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현재도 아시아를 ‘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정도로 여기는 유럽 중심적 인식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분히 퍼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라는 관념이 그 내부 국가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규정되어온 것이 아니라 유럽의 입장에서 타자로서 형성되어왔다는 근거는 지명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그 기원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동쪽’ 혹은 ‘일출’을 의미하는 고대 아시리아제국의 아카드어 ‘아수asu’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게해 동쪽인 터키 쪽에 위치한 이오니아 식민도시를 가리켜 ‘아시아’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의 중동이 아시아로 규정된 최초의 지역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아시아, 인도, 중국 등 서양의 입장에서 동쪽에 위치한 이질적인 국가들을 뭉뚱그려 아시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는 지중해를 기준으로 동쪽일부 지역을 가리켜 ‘동양’으로 지칭하던 ‘오리엔트(Orient, 해돋이 또는 해가 뜨는 방향)’가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동방 세계라는 뜻이 부가된 과정과도 유사하다. 근동(Near East), 중동(Middle East), 극동(Far East)과 같은 지명 역시 서양인의 관점에서 모호하고 막연하게 규정되었던 지정학적 개념이다.

2-콘텐츠, 아시아를 재편하다
얼마 전 종영한 송중기 주연의 드라마 〈빈센조〉는 올 상반기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콘텐츠다. 과거와 달리 넷플릭스와 유튜브라는 글로벌 플랫폼 덕분에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는지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됐는데(불과 5년 전만 해도 객관적 통계 부족으로 “한류는 없다”라는 주장도 팽배했다), 악을 응징하는 마피아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운 이 드라마는 5월 초까지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거의 전 지역에서 드라마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아시아 지역에서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언급하는 일이 조금은 쑥스러운 일이 되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래스〉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이 연달아 아시아 시장을 석권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케이팝등의 선전은 아시아를 뛰어넘은 글로벌 현상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한류의 경제적 역할에 비해 ‘지역’을 창출하는 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최근 많은 학자들은 한류 콘텐츠가 “아시아 지역 형성의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과거에는 주로 미국과 유럽의 방송 콘텐츠가 아시아 지역을 장악해 전통문화와의 충돌을 불러일으켰다면, 이제는 한국이라는 꽤 적절한 ‘역할 모델’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류는 사회·문화적으로 극히 보수적인 이란, 미얀마, 인도네시아, 북한 등의 지역에서까지 파격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로 전통을 크게 희생하지 않고도 현대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3-우리는 모두 이주자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미국을 동경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총격 사고가 발생하며,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표출되고 있다. 착실히 쌓아 올린 ‘위대한 미국’에 대한 호감은 근심과 공포로 변했다. 최근 팬데믹을 통과하며 아시아계 혐오 현상이 증폭되면서 더욱 뜨겁게 논의되고 있지만,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하는 차별과 범죄는 이전부터 공고히 존재해왔다.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대우와 차별에 맞서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이르렀을 따름이다.

소수자나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 혐오 표현과 폭행을 바로잡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에 실망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싹한 기시감이 든다. 이러한 부조리가 미국에만 있는 일일까?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의 사각지대에도 유사한 그림자가 존재한다. 다른 피부색이나 특정 종교를 조롱하며, 난민들에게 테러리스트나 성범죄자와 같은 프레임을 씌운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물론, 상품처럼 다루어진 외국인 신부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마치 제국주의적 군사주의 남성성을 답습한 한국남성 주체들은 지금 젠더의 식민화를 통한 자기열등감의 극복이라는 한계와 동시에 극복 불능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종의 자기분열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베트남의 가난한 여성들은 이미 민족 전쟁의 희생제의를 치르고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는 불행한 디아스포라들이다.”
_최남건, 『경계를 넘은 이방인』 중

최근 발생한 아시아계 인종 차별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불편한 지점을 마주했다. 인종을 구분 짓는 데서 비롯된 비극 앞에 또다시 서로를 구분하고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의적인 이유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점점 더 섞여 들어가는 시대, 서로에 대한 선 긋기는 왜 멈추기는커녕 점점 더 촘촘해지는 걸까?

June21_Topic_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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