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세랑의 사랑으로부터, 소설가 정세랑

글 김겨울 에디터 현희진

따뜻하고, 능청스럽고, 든든한 세계. 정세랑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왠지 마음을 푹 놓고 그 세계에 기대고 싶어진다. 비극이 없는 세계라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비극을 애도할 줄 아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세랑 소설가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비극 같은 삶이 그의 소설 속에서는 의미를 잃지 않으리라는 것을, 함부로 다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손 꼭 잡은 위로와 웃음으로 승화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잡은 손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으리라. 정세랑 소설가를 만났다.
Q.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A.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시리즈 작업한 이후에 다음 드라마 작업하고, 짧은 글들도 좀 썼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Q. 집필 중이신 책이 있으신가요? A. 오래전에 다녀왔던 여행을 돌이켜보는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진짜 오래 쓰고 있는데, 빨리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몇 년 안에 출판에 대한 에세이도 쓸 예정이에요. 출판계가 참 좋으면서 문제도 있는, 명암이 있는 동네잖아요. 그런데 소설만큼 빨리 나오진 않을 것 같아요. 소설이 저에게 딱 맞는 장르라 픽션이 아닌 글을 쓰는 건 너무 어렵네요.
Q.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A. 출판사에 입사하고 나서니까… 스물다섯? 물론 더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재미로 습작을 돌려보기도 했죠.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독후감 쓰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지금 추천사를 많이 쓰는 게 아닌가 싶고요. 쓰는 것보다 읽는 걸 좋아했는데,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쓰게 되었어요.
Q. 대학에서는 역사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셨어요. A.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교육과를 선택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내가 세계사를 좋아하는지 국사를 좋아하는지 현대사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역사교육과에서는 다 배울 수 있으니까 일단 가서 결정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교직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가서 보니까, 제가 문화사와 미시사를 좋아하더라고요. 역사교육과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오히려 국문과에서 구전된 이야기나, 전통공연, 고전 한문학을 재밌게 배웠어요. 그때 배운 걸 계속 꺼내 쓰고 있어요. 등록금이 아깝지 않다! (웃음)
Q. 교직이수 하셨으면 교생 실습도 하셨겠네요? A. 역사교육과, 국문과 모두 교직이수 했어요. 교생 나갔을 때 학생들이 고3이어서 나이차가 아주 나진 않았어요. 재미있게 놀다 왔죠.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Q. 학생들은 자신의 교생 선생님이 이렇게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A. 네. 근데 그렇게 신기해하진 않는 것 같아요. (웃음)
Q. 소설가가 되는 미래는 언제부터 상상하기 시작하셨어요? A. 문학잡지 만드는 일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나도 쓰고 싶다,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십 대 중반에 계속 준비를 하다가 스물여덟에 데뷔를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전업 작가로 계속 많이 쓰게 될 거라는 예상은 못 했고, 회사 일을 하면서 한두 편 발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몰랐던 거죠, 저에게 마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 드라마 관계자분께서 저를 너무 칭찬하고 싶으시다는 거예요. 잘 쓴다는 칭찬이려나 기대했는데, 연락 잘 받고 마감 잘 지켜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약간 미묘하긴 하지만… 아무튼 좋았습니다. (웃음)
Q.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의 전환이 일어난 거군요. 글을 쓰기 시작한 2~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A. 동시대 문학을 읽었던 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지금 막 발생하는 문학을 접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동시대성에 대한 기쁨과 동질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애란 작가님, 박민규 작가님, 배명훈 작가님, 김보영 작가님…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 읽었죠. 대학 때까지는 그냥 고전문학을 많이 읽고, 최신이라 해봐야 1960년대, 1970년대, 1990년대 문학을 읽었거든요.
Q. 작가님을 열렬히 응원하는 독자 분들이 많은데요. 그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나요? A. 거의 매일 느껴요. 그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제 소설을 읽어준 독자분이 딸에게 책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실 때 내가 되게 오랫동안 좋은 시간을 쌓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 어렸던 친구가 벌써 소설을 읽을 나이가 됐구나, 하면서요. 작가로서 가보지 못한 곳까지 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요.
Q. 최근에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이 있나요? A. 스티븐 킹의 최신작 『인스티튜트』 재밌게 읽었어요. 영화처럼 휘몰아쳤어요. 트럼프와 트위터로 싸우면서도 이런 에너지가 있으시구나… 다행이다 싶었어요. (웃음) 그리고 박민정 작가님의 『서독이모』와 전석순 작가님의 『춘천』도 정말 좋았어요. 작가들이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에 관해서 에세이 겸 안내서로 낸 책이에요. 표지가 건조해서 내용도 건조할 것 같지만 한 지역을 오랜 기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나올 수 있는 글들이 담겨 있어요. 춘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편도 있는데, 모든 지역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