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뒤늦은 의미

에디터. 지은경 사진. © 다할미디어

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각자 남다른 감정을 안고 있을 것이다. 폭압적인 사회 기조에 고통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문화적 풍요와 경제 부흥을 맘껏 만끽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내가 기억하는 1980년대는 쉼 없이 음악이 흐르던 때였다. 동네마다 자리 잡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기 위해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이던 순수한 낭만이 있었다. 열 손가락으로는 모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그룹사운드와 가수들의 노래가 텔레비전을 통해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불안정한 시대를 감싸던 멜로디와 노랫말들은 그대로 우리의 감성으로 자리잡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당시 대중음악은 주위 모든 사물이 흔들리던 ‘배멀미의 시대’를 지나야 했던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누구나가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 시절 우리에게 끝없이 사랑고백을 해 오던 노래들이 있었기에 지금껏 또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우리 시대에 함께 웃고 울었던 뮤지션 36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소개한다.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케이팝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과거 유럽과 미국의 팝스타들에 미쳐 용돈을 모아 비싼 콘서트 티켓을 사더니, 무대에 가수가 등장하자마자 혼이 나가 곧장 병원으로 실려가던 소녀들을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했다. 뭐가 그리도 좋았을까 싶지만 팝스타들을 신격화시켜 ‘우상(Idol)’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게 된 걸 보면 분명 팝 스타들이 대중의 삶을 쥐락펴락하며 수많은 설렘을 조장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케이팝 스타에 열광하고, 그들의 춤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고 한국어 공부를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래 한국인은 음악을 좋아했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깊은 음악적 성찰 또한 대단하다. 한의 정서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음악에서까지 진하게 우리고 또 우려서 즐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정서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며 더욱 깊은 향과 맛을 음악으로 성장했다. 그 시대를 영위하던 음악인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케이팝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화 시대를 겪으면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노래로 만들어 표현했다. 격변기 세월을 겪어낸 우리네 삶을 뜨겁게 채워주었던 음악인들을 책으로 다시 만나자니 ‘우리에게 이리도 많은 훌륭하고 선구자적 음악인들이 있었던가?’ 하고 새삼 되묻게 된다. 그들은 우리 대중문화의 든든한 토양이자 한 시대를 함께 헤쳐나가 보자고 권유하던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대중음악가 열전』은 우리 세대와 우리보다 더 젊은 세대들 모두에게 오늘의 음악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최성철의 말대로 “사느라고 힘들었던 8090년대의 우리들, 사느라고 그 시대 음악에 깊이 심취하지 못했던 부모님 세대, 그러나 그 음악 속에 우리의 청춘과 낭만을 쏟아부었던 그 시대 젊은이들, 그리고 2000년대에 자라나 그들을 알지 못하는 젊은 음악인들까지도, 노래만큼은 부모님이 부르던 그 노래를 듣고 자라, 뼛속 깊이 그 음악이 배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준 8090년대 음악인들, 우리의 마음과 함께 동고동락한 그들이 부르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흔들리는 세상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를 어루 만지고, 이끌어주며 또 격려해주던 진한 사랑 고백이었다. 자아의 무게를 감당함과 동시에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던 그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던 그들. 이제라도 우리의 소중한 대중음악 유산을 새롭게 재조명해보면 어떨까? 음악적 감성이 더욱 두터워지고 흐뭇한 자긍심도 다시 한번 꿈틀대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November20_Inside-Chaeg_02_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