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Books: 책과 함께 사는 삶

뷰티풀 데이즈,묵직한 여운 뒤의 그 무엇

에디터: 지은경 /
사진: 신형덕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 뷰티풀 데이즈>는 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주연한 장편영화로 탈북 여성의 무거운 삶을 그리고 있다. 애써 뭔가를 보태거나 과장해 나타내지 않고 내면에 품은 많은 생각을 연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선 인간 내면의 이해와 철학적 고찰이 필요한데, 또 이것들은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과 탐구 의지로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일 뿐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깨달을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은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삶을 이어나가는데, 이를 연기한 배우 이나영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엄청난 삶을 살아온 인물이에요. 희망을 찾아 탈북해 찾아온 중국에는 예상치 못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럼에도 적응해 살아나가려 하지만 또다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현재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죠. 하지만 주인공은 절박함을 비롯해 힘든 상황에 대한 모든 감정 변화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어요.
수많은 감정이 녹아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연기잖아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연기하지 않는 듯하거나 어색해 보일 때도 있어요. 만약 제 연기가 그렇게 보였다면 배우로서 내공이 부족해 관객들에게 전달을 제대로 못 한 거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연기를 좋아하고, 또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대본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과거에 많은 일을 겪고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가 무언가에 감정이 흔들리거나 휘둘리는 일 없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특히 와닿았죠. 그래서 이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도 겉으로 굉장히 무덤덤해요. 내면에는 많은 생각이 있을지언정, 밖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삶은 많은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표현되거든요. 나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짧은 인생을 살며 결코 쉽지 않았던 험난한 길들이 많았기에, 또 지금 현재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기에, 그녀가 가진 감정 표현들은 드러나지 않고 매우 눌려 있으면서 담백하게 남죠. 그래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극 중에서 이 여성은 어린 아들을 떠나야 하지만,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책임은 다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나중에 찾아온 아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도 않죠.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최대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기에 자신의 삶에서 당당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나 일종의 희망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주죠. 또 영화에서 된장찌개가 몇 번 나와요. 그 장면들은 ‘가족’이라는 존재를 은유하고 있기도 해요.

영화를 찍으면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 같은데,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요?
요즘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모성애를 그리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죠. 그런데 ‘엄마는 이래야 돼’ 같은 인식처럼 모성애를 매우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의문이 많았어요. < 뷰티풀 데이즈>는 ‘모성애’라는 가치관을 압박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극중 이 여성은 스스로 살길을 살아가지만, 엄마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아요. 아들을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도 굳건히 살아나가죠. 그 점이 좋았어요. 요즘 우리 삶에 화두를 제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November18_LivingwithBooks_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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