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미술과 책이 처음 만나는 곳, 의정부미술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의정부시

한국식 공교육 시스템의 맹점 중 하나는 엘리트 교육 위주로 이뤄지고 일반교양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특히나 구조상 교양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분야가 예체능이다. 그래서 한국 예체능계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어렵다. 공교육에서는 수준 있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교육에 의존하자니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집안에 예체능 분야의 전문인이 없으면 쉽게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세계적인 선수나 예술가는 간헐적으로 배출되지만, 국내의 애호가층은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부족하다. 모두가 큰돈을 들여 교양을 키울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적 교양은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럴 때 공공 차원에서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인 동시에 미술 전문 도서관으로써 개관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이 그 사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공기관 중 사회교육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 미술관은 유독 어렵게 여겨지는 곳이다.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 들의 그림은 해외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에서는 주로 현대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현대미술에 접근하기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미술사적, 예술철학적 담론에 관련한 작업이 많아 공교육이 제공하는 교양교육만을 받아 온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물관도 마찬가지로 한 번 갈 때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이지만, 도서관은 비교적 만만한 놀이터다. 이 세 ‘관’은 각각 미술품, 유물, 책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안에서는 비슷한 활동이 벌어진다. 본연의 기능이 아카이브에 가까운 도서관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기획 전시처럼 주제가 있는 책 큐레이션을 선보이기도 하고,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전시의 주제와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모아 마치 아카이브처럼 전시실을 꾸며놓은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과 미술관을 잘 섞어놓은 공간이다. 미술 전시가 열릴뿐 아니라 지역 신진작가가 입주할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어 마치 미술관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내는 가운데, 중앙 원형 계단을 중심으로 건물 내 모든 공간에는 서가와 책이 자리한다.
국내 최초의 미술 특성화 공공도서관이라는 전례 없는 도서관이 탄생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무려 6년이었다. 의정부시는 지역 내 시립미술관이 없어 일반 시민의 미술 향유를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지역에 꼭 필요한 공간을, 지역에 꼭 알맞게 조성해야 했다. 도서관 기획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책임 사서는 전체 16층 중 일부 층을 공연예술을 위한 섹션으로 할애해 특화된 공간으로 꾸린 싱가포르국립도서관의 사례를 보고, 공공도서관에 전문분야를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렇듯 도서관이면서 일종의 미술관이기도 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개관 이래 꾸준히 미술과 책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지역 문화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 기획전을 개최하고, 하와이 호놀롤루미술관에서 기증한 1,000여 권의 미술 전문자료를 구비하는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한편, 도서관 내부적으로도 큐레이터와 사서들이 협력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밝고 환한 건물 내부는 여느 도서관이나 미술관보다 여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1층에 조성된 ‘아트그라운드’에 들어서면 널찍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낮은 서가에서 다양한 예술서적을 볼 수 있다. 중앙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바람개비 모양으로 배치된 서가와 그 사이사이에 놓인 다양한 열람용 책상이 눈에 띈다. 반투명 아크릴 소재의 책장은 안에 꽂힌 예술서적을 향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욱 자극한다. 보고 싶은 책을 골랐다면 근처에 있는 스탠딩 책상 위에 올려 두고 펼쳐보자. 일반 단행본보다 이미지가 많고 판형이 큰 예술서적을 한장씩 넘길 때마다 전체 지면이 한눈에 들어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미술 분야의 다양한 정기간행물을 구비하고 있어 가장 최근의 예술 동향을 살필 수 있다. 2층에는 아이와 함께 찾기 좋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놀이와 학습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부의정부미술도서관이 공공 서비스가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유연하면서도 뚝심있는 사업 유형이라는 사실은 이곳의 안팎을 연결하고 있는 여백과 열림의 미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픈형 사무실과 오픈스튜디오 등 무엇 하나 꽉 채워져 있지 않은, 시민들이 언제든지 찾아오고 감상할 수 있는 빈 공간들이 특징이다. 바로 이 비어있음에서 파생되는 개방성이 의정부미술도서관의 가장 멋진 면모일지도 모른다. 섞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두 분야의 공존을 이뤄낸 경험을 토대로 의정부시는 또 다른 열린 공간을 꾸릴 예정이다. 20년째 개최되고 있는 의정부 음악극 축제와 블랙뮤직 페스티벌 등 지역적 음악 자산을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시민의 새로운 놀이와 교육의 장이 될 음악도서관이 기획 단계에 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하루 종일 둘러보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소개하고 싶다. 국내외 여러 예술대학 도서관을 비롯한 세계 유명 미술관, 박물관은 주로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찾는 곳들이지, 도서관처럼 편안하고 안락하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 차원에서 특정 분야의 책들을 잔뜩 모아두고 누구든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것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참 반가운 일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을 필두로 생길 전문적이면서도 지역과 연결되는, 공공 플랫폼으로써의 도서관들이 기대된다.
March21_SpecialReport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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