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땅과 먹거리

에디터 : 박주연 전지윤 현희진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비와 바람, 햇살을 품었던 땅에서 생명이 자라난다. 우리는 그 생명을 통해 숨을 쉬고 살을 찌우며 땅을 딛고 존재한다. 죽음 이후 다시 땅으로 돌아간 몸은 다른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이 순환 구조에 맞춰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땅에 영양을 주고 물을 대며 지구로부터 식량과 에너지를 얻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풍족하다. 동시에 밥상에 작물이 오르기까지 그것들을 누가 키웠는지, 그 과정에서 지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상상하는 힘은 그 어느때보다도 빈약하다. 이달의 토픽에서는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온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자연을 살리는 몇 가지 농법들을 공부한 뒤 생명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제안을 들여다본다. 땅과 인간이 오래도록 배부르기 위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식물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손을 내밀어보세요. 갓 뽑아 마치 방금 감은 머리카락처럼 하늘거리는 향모 한다발을 올려드릴게요. 윗부분은 황금빛 감도는 반짝거리는 초록이고, 땅과 만나는 줄기는 자주색과 흰색 띠를 둘렀어요. 향모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 잊은 줄도 몰랐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하죠.(…) 우리 할머니의 등에 드리운 댕기머리처럼 굵고 윤기 나는 향모 드림을 당신에게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제 것이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고 당신 것이어서 받는 것도 아니에요. 윙가슈크의 주인은 윙가 슈크 자신이에요.”_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중

있어야 할 곳에 어김없이 존재하며 기꺼이 스스로를 내어주는 존재. 식물은 인간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더 놀라운 건, 모든 식물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텃밭과 화단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식물부터 인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식물까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자연이 지닌 완전한 지성과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잊고 지내던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빵밀
밀은 서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식용작물로 수메르,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 이르는 다양한 문명의 발전과도 연관이 깊다. 서구 농경문화의 중심이 되는 식물로 넓은 지역에서 대규모로 자라 손쉽게 수확할 수 있어 많은 유목민의 정착을 가능하게 했다. 매년 수확량을 예측할 수 있게 되자 경작을 통한 생존방식이 자리 잡았고, 문화가 태동했다. 곡물 중심의 농업 생활로 식량을 축적하며 생존에 유리해진 인간은 유전적 변이도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채집과 수렵 생활에 적응해 온 인간은 점차 단백질과 비타민에 비해 탄수화물을 과하게 섭취하게 되면서 철분부족 현상, 비타민D 결핍 등을 겪었다. 체격과 체형도 달라졌다. 밀은 자연 채집식물보다 쉽게 씹히기 때문에 턱은 점점 약해지고 치아는 작아졌다. 신장 역시 수렵채집을 하던 조상들보다 3cm나 작아졌다고.

올리브
지중해 특유의 향기와 미각을 일깨우는 올리브는 식탁에서 널리 사랑받는 식재료 중 하나다. 올리브는 약 7천 년 동안지중해에서부터 이란에 이르기까지 국제 상거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물이었다. 식재료이자 연료로 귀하게 다뤄져 왔고, 현재도 지중해 연안의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양의 올리브를 수확하고 있다. ‘olive’는 그리스어 어원을 거쳐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노아의 방주에서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나무 가지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고, 올리브 기름은 실제 유다파 그리스도교 종교의식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2-오롯이 자연 그대로
자연을 길들인 인간
인류 초기에는 수렵채집 생활과 식량의 생산이 함께 이루어졌다. 약 11,000년 전에 시작되었던 인류 최초의 채소밭은 야생 먹거리를 구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하여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처를 확보해 두는 일종의 보험과 같은 기능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제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인간은 농경생활 이전부터 야생 곡물로 먹거리를 만들었지만 기후와 환경의 변화가 야기한 식량 부족으로 인해 식량 통제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인구증가와 식량부족의 불균형은 이를 더 압박할 뿐이었다(앨리스 로버트,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이는 “농업이 인구증가를 가져왔기보다, 인구증가가 어떤 식으로든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변화를 추동” 했음을 보여준다.

‘식물의 작물화’는 “어떤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 소비자에게 더 유용하도록 야생 조상을 유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로 정의할 수 있다(제러드 다이아몬드). 점차 많은 식물이 작물화되었고, 농경과 정착 생활을 계기로 인간은 문화, 예술, 건축에 걸쳐 상당한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작물화를 온전히 인간의 쾌거로만 볼 수는 없는데, 이는 밭에서 자라는 잡초 정도에 불과했던 호밀, 귀리, 보리 등의 야생식물들을 길들이려는 의도는 분명했지만 농업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야생식물을 작물화하려는 인간의 무수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알아채지 못했던 ‘형질 변이’와 같은 ‘자연선택’이 오히려 큰 역할을 했다(앨리스 로버트).

3-우리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THE DATA OF MORE
과학자나 환경주의자는 오래전부터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고 경고해왔다. 사람들은 이제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그들을 지루해한다. 사람들이 지구를 위해 행동하도록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금연을 시키거나 운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얼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수십억 달러 규모의 관련 산업들이 24시간 내내 작동하며 변화를 가로막는다. 지구물리학자 호프 자런Hope Jahren 또한 기후변화에 관한 수업을 처음 부탁받았을 때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의자 깊숙이 몸을 구겨 넣고 한숨을 쉬던 호프를 움직인 건 오랜 동료 빌의 짧은 한마디였다. “그게 바로 너의 일이니까. 닥치고 가서 할 일을 해.” 그때부터 호프는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변화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 농업이 얼마나 집중화되었는지, 에너지 사용량이 얼마나 치솟았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를 정리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성실하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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