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동네를 밝히는 낮은 전등 도른비른 공립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Albrecht Schnabel , © Aldo Amoretti 자료제공. Dietrich | Untertrifaller & Christian Schmölz

반짝이는 보석함처럼 생긴 건물 외관이 예사롭지 않다. 요리조리 보아도 예술적 맥락에서 지어진 건축물일 것만 같은 이곳이 상설 도서관이라니! 오스트리아의 도른비른 공립도서관은 밤과 낮, 안과 밖 구분없이 빛난다. 도서관 건물이 품은 따뜻하고 은은한 빛은 그 주변까지 부드럽게 밝히는 데 일조한다. 잘 들인 조명 하나 열 가구 부럽지 않듯, 기능에도 충실하고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책의 공간. 특히 커다란 전등갓처럼 보이는 건물 외관을 둘러싼 문살은 빛을 들이고 내보내는 데 탁월하며,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좋다. 예쁜데 피곤하지 않고, 충분히 실용적인 이런 조명 하나 침대맡에 두면 참 좋을 텐데.
곡면인 외부에 비해 내부 서가와 열람 공간은 직선으로 깔끔하게 구획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에 박힌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역시 유연한 외형 덕분이다. 네모반듯한 공간에 네모난 책꽂이가 열을 맞춰 늘어선 도서관은 갑갑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도른비른 공립도서관은 벽에서 벽까지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아 책 사이로 걷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채광에 있어서도 유동성이 생긴다. 각진 벽에 막히는 느낌 없이 둥근건물 옆면 전체를 통해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 의미가 없다. 거기다 천장 한가운데에 창이 나 있어 중앙로비에도 빛이 풍성하게 쏟아진다.
겉에서 볼 때 둥근 형태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옆면 전체를 감싸는 일종의 문살, 껍데기다. 이는 아랍계 건축에서 자주 쓰이는 마슈라비야Mashrabiya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마슈라비야는 이슬람 전통 가옥에서 2층 발코니에 설치되는 무늬가 있는창문살로, 중세 중동과 동유럽에서 시작해 이후에는 그리스에까지 전파되었다. 그 일차적인 용도는 차양과 보온에 있어서의 효율성이지만, 마슈라비야는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들이 밖에 나가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을 때 이들이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살은 특히 낮 동안 공간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준다. 그 무늬 대로 선명한 흑백 그림자가 내부에 드리우기 때문이다..
도른비른 공립도서관의 문살이 전통적인 마슈라비야와 구분되는 점은 먼저 이 문살이 건물 일부가 아니라 옆면 전체를 덮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소재가 빛이 어느 정도 투과되는 흰색세라믹이라는 점이다. 세라믹 문살이 만드는 그림자에는 전통적인 마슈라비야와 달리 완전한 어둠이 없다. 흰색 스테인드글라스에 투과된 것처럼 보이는 이 무늬는 오히려 해가 진 다음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바깥이 어둑어둑한 가운데 내부 조명을 켜면 세라믹 문살을 통해 불빛이 은은하게 밖으로 퍼져나가, 건물 전체에서 빛이 난다. 세라믹 문살의 무늬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자로 만들어진 책 모양 유닛이 철제 골조에 붙어있는 형태인데, 단순하지만단조롭지는 않다. 흔히 보는 똑같은 높이의 선반이 층층이 쌓인 책꽂이가 아니라, 나름의 리듬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높이가 약간씩 다른 층에 ‘책’들이 똑바로, 혹은 비스듬히 꽂혀 있는 모습은 클래식 음악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오스트리아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고, 전에는 섬유산업이 발전했고 지금은 상업도시인 도른비른 시는 시민들을 위한 사랑방이 되기를 바라며 이 도서관을 기획했다. 이곳을 설계한 디트리시 운터트리팔러 건축사무소Dietrich | Untertrifaller와 건축가 크리스티안 슈몰츠Christian Schmölz는 시민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곡선과 직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물 외관만큼이나 내부 또한 유기적인 공간감을 보여주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례로 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5단 책장은 가운데 3층 면이 비스듬해, 책이 꽂히지 않고 표지가 보이게 눕혀지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디자인적 선택은 이 도서관이 그저 수많은 책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 책을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공간임을 드러낸다. 지하에는 미디어 라이브러리와 게임 라이브러리, 워크숍 및 행사가 열리는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락거릴 수 있는, 혼자여도 좋고 여럿이 모이면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기 좋은, 그야말로 사람과 마을을 한껏품은 열린 소통의 장이다.
이처럼 도른비른 공립도서관은 외관이 눈에 띄긴 하지만, 겉에서만 보고 즐기기엔 아까운 공간이다. 어차피 책 읽는 곳인데 이렇게까지 ‘보기 좋게’ 만들 필요가 있냐고 냉소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긴 세라믹 껍데기가 도서관 건물과 그 주변, 그리고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퍼뜨리는 분위기는 그저 미적인 효과 이상이다. 다양한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의 움직임을 직접 느끼며 거닐어보거나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평소에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은 사실이 머리속에 떠오를 것 같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목적과 기능에 부합하는 딱 그만큼의 공간이나 물건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잠재력을 지닌, 불나방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엇이라는 사실을.
March22_SpecialReport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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