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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의 웃음풍경

에디터. 지은경 사진작가 김기찬 사진제공. © 눈빛

1970~80년대, 전쟁이 끝난 뒤 일상이 안정을 찾아가고 새로운 희망과 열망이 삶에 스며들던 그 시절. 골목 안이나 역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다닌 사진작가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사진 속에는 개발되기 이전 서울의 풍경들, 부족한 형편 가운데서도 웃음을 찾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순수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담겨 있다. 사진작가 김기찬의 사진들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주는 듯 큰 기쁨을 선사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비단 과거의 추억뿐이랴. 이전보다 훨씬 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온정 깊은 마음과 여유를 잃어버렸다. 그때 그 시절, 흑백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어린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가 촬영한 과거 파리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파리 사람들이 매우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복잡한 사연들이 생략된 사진 속에는 순간의 움직임이나 표 정, 눈빛만이 포착되는 까닭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두아노를 프랑스의 대표적인 휴머니즘 작가라 부른다. 아마 그의 사진 속 장면들에 순박한 인간의 냄새가 묻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 시내 관광지마다 있는 엽서 가판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두아노의 사진엽서는 바라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한다. 이런 서구 사진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왜 우리에게는 격동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을 온전히 담은 사진이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매우 경솔한 판단이었다. 사진 작가 김기찬은 나의 어리석었던 생각을 송두리째 날려보냈다. 그는 서울의 곳곳을 다니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들의 풍경을 담았다. 그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 꾸밈없이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같다.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기찬은 동양방송국 영상제작부와 한국방송공사 영상제작국 부장을 역임했다. 그의 ‘골목안 풍경’과 ‘역전 풍경’ 시리즈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던 과거 서울 사람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특히 중림동을 중심으로 1968년부터 2001년까지 작업한 ‘골목안 풍경’ 시리즈는 한국 사진의 역사상 기록사진의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둔 작품들이다. 그의 사진들은 분단과 군부 통치 등 여러 거대한 사건들을 겪어온 한국 사회 속 작은 삶들을 기록한다. 그 장면들에서 가난한 풍경 속에 자리한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사사로운 풍경이 주는 위안은 우리를 잠시나마 사진에 머물게 함과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을 곱씹어보게 만든다.
“송파에서 오금동 가는 길은 황톳길이었다. 비를 기다리는 날에 차 한 대만 지나가면 먼지가 펄썩거렸고, 장마가 지면 땅바닥이 질퍽거려 신발이 벗겨지던 길이었지만, 좌우에 배나무 밭이 있어 하얀 배꽃 피는 화사한 봄날이면 빨간 진흙 길 위에 무심한 봄바람이 하얀 배꽃을 뿌려놓고 가던 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새 아스팔트 신작로가 나 버렸다. 소년의 친구들도 하나 둘 다 떠나 버렸다. 배나무들도 모두 잘려나갔다. 덩그러니 버스 팻말만 서 있다. 버스 팻말 기둥에 매달려 몇 바퀴 돌아봐도 소년은 심심하고 쓸쓸하다. 황톳길 신작로가 그대로 있었으면, 운동화 헤진다고 엄마한테 꾸중 듣더라도 길바닥에 박힌 동그란 돌부리 하나 빼어 발로 툭툭 차며 집에까지 갔을 텐데.” _김기찬
사진 속 세상은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하거나 풍부한 먹거리와장난감이 있는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의 세상에선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없다. 무더운 여름 날 대야 속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집 밖으로 나와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함께 숙제하는 아이들, 강아지를 품에 안은 아이, 날이 저물도록 온동네를 달리며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문방구 앞에 모여 앉은 아이들. 이 아이들은 서로의 온기를 찾아다니며 까르르 웃어댄다. 작가는 특출나거나 낭만적인 이미지를 포착하려 하지는 않지만 서로 부둥켜안고 돌보는 우리네 손길 속 고귀함을 일깨운다. 과연 지금의 어린이들이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그때를 살던 당시의 어린이들보다 더 풍요롭다고 할 수 있을까? 그토록 열망하던 고층 아파트가 동네에 들어섰건만 우리는 왜 그때의 함박웃음을 잃어버린 것일까? 어른이 된 그때의 어린아이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March21_Inside-Chaeg_01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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