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공기의 떨림을 설명하는 일 음악학자 민은기

글 김겨울 에디터 현희진

음악이 시간예술이라는 점은 늘 나를 매료시킨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향유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음악은 삶을 ‘함께 살아가는’ 느낌을 주는 예술 형식이고,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예술이다.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삶의 질곡들을 조금은 더 힘겹게 건너와야 했을 것이다. 인간의 몸과 숨과 시간이 공기의 파동으로 전해져와서 나는 그 타인의 파동으로 공명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파동에 대하여.
Q. 반갑습니다. 이번에 학장으로 부임하셨다고요. A. 네,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6월에 막 보직을 시작해서 앞으로 2년 동안의 계획을 세우느라 바빠요. 누구든지 새로 뭘 하면 바꾸고 싶은 게 너무 많잖아요. 관성을 바꾸느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있어요. 요새는 입시철이기도 해서 정신이 없고요.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도 계속 집필 중이에요.
Q. ‘난처한 클래식 수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A. 오래전에 다녀왔던 여행을 돌이켜보는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진짜 오래 쓰고 있는데, 빨리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몇 년 안에 출판에 대한 에세이도 쓸 예정이에요. 출판계가 참 좋으면서 문제도 있는, 명암이 있는 동네잖아요. 그런데 소설만큼 빨리 나오진 않을 것 같아요. 소설이 저에게 딱 맞는 장르라 픽션이 아닌 글을 쓰는 건 너무 어렵네요.
Q.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A. 사실 ‘난처한 미술 이야기’ 시리즈가 먼저 나왔는데, 클래식 음악으로 이 시리즈를 하자고 했을 때 제가 거절했어요. 거절하면서도 너무 고맙고 아까웠어요. 미술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음악도 이런 시리즈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미술은 펼쳐놓고 설명할 수 있지만 음악은 그게 안 되니까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독자 수요조사 결과를 저에게 보여줬어요. 저로서는 처음으로 대중의 이야기를 들은 거죠. 독자들의 희망사항을 읽고 나서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딱딱한 내용을 쉽게 설명하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어요. 말랑말랑한 내용만 건드리지 않으려고도 하고요.
Q. 그런 점이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를 돋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A. 많은 클래식 입문서가 정작 음악 이야기를 안 해요. 음악이 어렵거든요. 음악은 공기의 떨림이잖아요. 이걸 설명하기가 힘드니까 주변만 이야기해요. 그러면 독자는 주변 이야기는 많이 알아도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게 돼요. 근데 음악을 안 다루고 넘어가면, 아무리 모차르트의 생애를 꿰고 있어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알 수 없잖아요. 타협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젊을 때 클래식밖에 몰랐어서, 젊음의 에너지가 있는 음악을 젊었을 때는 몰랐어요. 그래서 더 균형있게 많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20년이니까 2020년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클래식은 음악이 음악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까지 찍은 음악이에요. 19세기 유럽의 아주 특이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음악이고, 이게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남은 거죠. 그게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경시되는 건 좀 불공정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알고 나서 ‘클래식 음악은 나에게 안 맞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르니까 싫어하는 건 아쉽잖아요.
Q. 교직이수 하셨으면 교생 실습도 하셨겠네요? A. 역사교육과, 국문과 모두 교직이수 했어요. 교생 나갔을 때 학생들이 고3이어서 나이차가 아주 나진 않았어요. 재미있게 놀다 왔죠.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Q. 학생들은 자신의 교생 선생님이 이렇게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A. 네. 근데 그렇게 신기해하진 않는 것 같아요. (웃음)
Q. 시리즈이기도 하고 내용도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고, 자료도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책이에요. A. 사실 이 시리즈는 편집자와의 궁합이 만들어내는 시리즈예요. 처음에 책을 쓸 때 별짓을 다 해봤어요. 문답 형태로 구성한 적도 있었고, 강의를 통째로 녹음해서 받아 적은 적도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내용을 구성한 적도 있고요. 시행착오가 굉장히 많았죠. 결론적으로는 일단 제가 담고 싶은 모든 내용, 책에 담기는 것보다 5배 정도는 많은 분량을 씁니다. 그다음에 ppt를 만들어요. 슬라이드 100개짜리 3개면 1권이 나오더라고요. 그 ppt를 가지고 편집자를 비롯한 책을 만드는 분들 앞에서 하루종일 강의를 합니다. 3일 동안 강의를 한 후 녹취를 뜨는 방식으로 말글을 담아요. 구어체는 글로 쓴다고 풀리는 게 아니더라고요. 녹음을 해서 풀지 않았다면 생생한 말글이 담기기 어려웠을 거예요.
Q. 엄청난 과정이네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더욱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책의 인기를 실감하시나요? A. 놀랍죠. 이전까지는 읽을 사람이 천 명밖에 안 되는 책들을 쓰고 살았으니까요. 1권 내고서 음악회를 했는데, 책 소개를 하면서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북콘서트였어요. 그때 진짜 신자들이 온 거죠. (웃음) 이분들에게 내가 행복을 드렸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음악은 임팩트가 세잖아요. 모차르트에 관한 책을 읽은 독자가 모차르트 음악을 코앞에서 듣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죠. 음악회가 끝난 후 독자분들이 다음 권은 언제 나오느냐고 물으시는데, 정말 열심히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겠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Q. 저도 묻고 싶네요. 다음 시리즈는 언제 나오나요? A. (웃음) 5권을 크리스마스에 내는 게 목표예요. 마치 폭탄 돌리기 하듯이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고 있어요.
Q. 그동안 책을 많이 쓰셨는데, 『대중음악의 이해』 같은 책은 의외였어요. A. 한번은 제자랑 같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라는 오페라를 봤는데, 제자가 “저는 이런 걸 보면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그러는 거예요. 그때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지금 이 친구가 생각하는 현재의 음악은 뭘까. 그래서 대중음악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팬심으로 쓴 책이 많았어요. 마찬가지로 음악 이야기가 별로 없었고, 음악 내용과 사회적 배경에 관한 안내서가 없었죠. 이런 책이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어서 내가 쓴다, 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내가 너무 모르니까 차갑게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썼죠.
Q. 그런 책이 많으신 것 같아요. ‘없으니까 내가 쓰자.’ A. 왜냐하면 제 책들이 결국은 교재였거든요. 저는 강의 욕심이 많은데, 교재가 없으면 강의 시간에 정보를 주게 돼요. 저는 정보를 주는 강의만큼 재미없는 강의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보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봐야죠. 감 잡고, 소통하고, 공감하고,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게 강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하려니 정확한 내용이 담긴 교재를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Q. 『음악과 페미니즘』은 2000년에 내신 책이에요. 이후 20년 동안 음악계가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A. 많이 달라졌죠. 제가 1995년에 서울대에 왔는데, 작곡과 최초의 여성 교수예요. 지금은 더이상 ‘여류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안 쓰잖아요. 서울대 음대 여성 교수 비율도 50%가 살짝 넘고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빈필이나 베를린필에 여성 단원이 없었어요. 빈필은 아예 없었고, 베를린필도 게스트로 초대하는 정도였죠. 당시 여성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집필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음악학자의 길은 어떻게 걷게 되셨나요? A. 제가 작곡과 음악이론 전공 2기예요.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연주가 아닌 공부를 하고 싶었던 사람들을 위한 길이 생긴 거죠.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연주자의 길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뒤로는 연주자가 될 생각은 일절 안 했어요. 『음악과 페미니즘』에도 썼지만, 엄마가 ‘여자는 피아노를 쳐야 해’라고 생각하셨어요. 오빠와 남동생은 피아노를 치지 않았는데 저만 배웠죠. 그걸 반항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기로 했어요.
Q. 음악학자로서 음악을 들을 때 발휘되는 직업병이 있나요? A. 아무래도 음악을 들으면서 잘 쉬지는 못해요. 듣고 싶어서 들을 때도 있지만 필요해서 들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요즘 누가 새로 녹음했다는데 들어봐야지, 이 레퍼토리를 저 레퍼토리와 비교해야 하니까 들어봐야지, 이런 목적에 의해서 듣게 돼요. 어쩔 수 없이 직업적으로 분석하게 되고 비판할 점도 찾게 되고요.
Q. 우리는 왜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들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A. 우리 DNA에 있을 거예요. 음악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조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음악을 듣는 게 아닐까요? DNA에 뭔가가 들어가려면, 전 인류가 보편적이고 반복적으로 그 행동을 해야 하잖아요. 음악이 우리를 뭉치게 하거나 보호하게 만들거나 짝짓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음악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음악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라는 거겠죠.
Q. 요새 들으시는 플레이리스트는요? A. 음악은 시간예술이에요.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에 듣는 것이죠. 그래서 20세기 초의 좀 신선한 작곡가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요새 들어요. 드뷔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드뷔시 프렐류드도 좋고요, 19세기 말에 쇼송이라는 작곡가가 있어요. 쇼송의‘포엠’ 같은 곡은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좋습니다. 최근에 스트라빈스키와 조지 거슈윈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