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Art 책 속 이야기:예술

가장 빛나는 지금 이 순간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 안웅철

한때 우리에게는 원하는 곳 어디로든 도달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기술을 발달시킨 인간이 응당 누리는 권리이자 특권이었다. 그토록 빛나던 특권은 남발되었고, 이제 우리는 아무 곳에도 마음껏 다니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마주했다. 그래서일까? 특별할 것 없던 타국의 풍경이, 다른 생김새와 표정들이, 지나간 옛사람들의 엷은 미소가 더욱 애 틋하게 느껴진다. 이전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대상으로의 접근, 쉬이 떠오르지 않는 기억으로의 회귀로 나는 사진을 제안하고 싶다. 사진에는 분명 어떤 힘이 있다. 먼 곳에 있는 우리를 연결하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눈앞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다시 그 순간을 살게 하는 힘. 오늘날 우리가 그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 매체를 꼽으라면, 나는 두 번 생각 않고 그것이 사진이라 말하겠다.
난생 처음 비행기 탔을 때를 기억하는가? 집보다도 큰 거대한 물체에는 수많은 사람과 짐이 실린다. 묵직한 굉음을 내며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 무거운 물체는 거짓말처럼 허공에 붕 뜬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높은 하늘을 향해 오르던 비행기는 고도를 잡기 위해 잠시 주춤한다. 그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출렁이고 꿈틀거린다.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은 어떠한가? 하늘 위의 또 다른 하늘, 그 위에 펼쳐진 압도적인 풍경은 또 어떻고?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어떻게 영원히 기억할 것인가? 저 밑으로 보이는 어딘가의 얼어붙은 땅은 한 폭의 멋진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황홀함에 휩싸인다. 그런데 이러한 감동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더라?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 안에서의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피곤함, 앞좌석 뒷좌석 사람들의 무례함에 지쳐 무엇 하나 경이로울 것 없는 상태를 맞이한다. 이제는 이마저도 언제든 원한다고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 되었지만.
사진작가로 사는 삶을 짐작해본다. 얼마나 큰 축복인 동시에 애처로운 삶이던가? 수많은 장소에 이르고 떠나기를 반복하고,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뷰파인더는 마음이 미처 붙잡지 못한 순간들까지도 부지런히 기록한다. 삶에 대한, 찰나에 대한, 인연에 대한 미련. 그리고 만나고 지나치던 장소와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 그 기록들은 순수예술 작품으로, 상업 사진으로, 그저 우연히 찍은 가벼운 스냅사진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진 작가가 자신의 기록물을 내놓는 행위는 어쩌면 그들이 살았던 순간을 우리 앞에 재현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들의 시선과 시간,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이미지는 지극히 사적인 사건을 공유하는 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진작가 안웅철은 광고와 패션 화보 촬영을 겸하여 전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그는 여행 중 만나는 풍경들을 부지런히 사진으로 남겼다. 뉴욕과 아이슬란드, 몽골, 페루, 인도, 홍콩, 스코틀랜드 등을 다니며 포착한 순간들은 짧은 몇 초의 시간을 영원히 머금고 있다. 그의 사진에 담긴 사람 중에는 유명인도 있고 전혀 모르는 얼굴들도 있다. 그가 마주했을 숱한 만남 속에서 그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과거는 흩날려지기에 아름답고,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소중하다. 미래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순간이기에 열망하게 되고, 이왕이면 찬란하기를 소원하기에 더더욱 빛난다. 우리가 시시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유일하게 부여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뿐이다. 하지만 이 순간은 또 얼마나 유일한가? 다시없을 순간이기에 어찌나 소중한가? 사진작가 안웅철이 낯선 풍경 속에서 길어 올린 일상적인 순간들은 우리 모두가 지나고 있는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고,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음을 생생히 전해오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자의든 타의든 이상한 시대를 지나고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전반적인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또 바뀐 패러다임에 적응해야하고 즐겨야 한다는 모험심도 슬슬 생기고있다. 작년 수개월 동안 네이버에 글을 기고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편 한편이 작은 규모의 전시회 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형태가 인터넷 매체건 아니면 활자화 된 책이든 간에 전시회 였던 것이다. 이 이상한 시대에,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기 어려운 시대에, 전시의 좋은 대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블로그에 연재한 20여개의 텍스트들은 여행과 사진 그 사이에 놓인, 사진가가 가지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 세상의 모든 풍경을 사랑하는 한 인간의 일기나 다름없다. 세상의 모든 풍경에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좋지 않으며, 또한 어느 것은 아름답고 어느 것은 그러하지 못함이란 없다. 다만 사진가인 내가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면 모든 풍경은 아름다운 것이다. 작지만 소중했던 풍경, 실상은 멀리 있지만 언제나 내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있는 그 수많은 풍경 이야기를 하고 싶다.” _「작가 노트」 중
January21_Inside-Chaeg_02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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