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 : Art 책 속 이야기 예술

海女

에디터: 유대란
사진: 김형선

해녀 사진인데 바다가 안 보인다. 제주의 푸른 하늘도, 바위도. 김형선 작가의 작품에는 오로지 해녀만 등장한다. 업의 터전인 바다가 없으니 당연히 어떤 행위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곤 ‘서 있음’ 하나다. 해녀는 카메라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작품 속에서 해녀는 그저 존재한다. 해녀가 착용한 복장, 채취 장비도 행위가 아닌 주체를 돋보이기 위한 수단이 된다. ‘해녀’는 존재가 드라마다.

김형선 작가의 < 해녀> 연작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작년 뉴욕 전시가 열렸을 때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뉴요커』(그 콧대 높은 뉴요커가)가 소식을 싣고, 영국의 『가디언』은 8쪽짜리 사진 기사를 내보냈다. 워싱턴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원로 기자들이 그의 사진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기도 했다. < 해녀>가 알려지며 올해 상반기 프랑스 반느와 툴루즈,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초대전이 열렸다. 내년 3월에는 런던 해양박물관에서 영국의 현대미술가 미카엘 카리키스의 2인 협업전을 펼친다. 그들은 ‘해녀’의 무엇에 그토록 움직인 걸까.

김형선 작가는 해녀라는 주체에 집중했다. 매체나 기존의 사진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고되고 억척스러운 삶에 표류하며, 자신은 언제나 뒷전일 어머니상의 기호화된 모습과 거리를 둔 독립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경을 제거하고 흰 천 앞에 서 달라고 부탁했다. 해녀 무리가 아닌 해녀 한 명 한 명을.

그는 2012년 제주 여행 중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막 올라온 해녀와 우연히 마주치며 강인하고 신비로운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고, 이래 ‘해녀’ 작업에 몰두했다. 촬영하는 순간은 찰나지만, 그 찰나에 피사체의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녀’ 작업과 함께 해녀 문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촌계를 중심으로 엄격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한 그들은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에 앞서 해녀들의 자기 부정이 더 높은 장벽이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다수의 해녀는 평균 13세를 전후로 물질을 시작했다. 3~4대에 걸쳐 물질을 이어받았지만, 자긍심을 가진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생계를 위해 타의에 의해서 해녀가 되었고, 심신이 고되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해녀는 하루에도 수백 번 삶과 죽음의 수평선을 오르내리고, 높은 수압에 장기간 노출돼 갖은 질병과 난청을 겪는다. 그들은 긴 숨비 소리로 삶의 경계를 확인한다. 그래서 해녀들은 자신은 어쩔 수 없었지만, 자식에게만은 같은 업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해녀라는 직업이 존속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등록된 해녀는 총 4,000명이 넘지만 활동하는 수는 절반을 웃도는 정도다. 활발히 활동하는 해녀는 60~70대에 많이 포진되어 있고, 많게는 80대 후반의 해녀들도 수심이 비교적 얕고 물살이 약한 곳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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