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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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0

Ut Pictura Musica

글. 전지윤

박학다식을 추구했지만 잡학다식이 되어가는 중. 도서관의 장서를 다 읽고 싶다는 투지에 불탔던 어린이.
다 읽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클래식 인 더 가든: 음악, 정원, 그림의 삼중주』
김강하 지음
궁리

味摩詰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
(마힐의 시를 감상하노라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림에 시가 있네.)

소식(蘇軾)은 문집 『동파지림(東坡志林)』에서 그보다 거의 3세기를 앞서 살았던 왕유(王維)의 산수화를 보며 ‘마힐의 시를 감상하노라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림에 시가 있네’ 라고 했다. 사람과 자연의 본질인 기(氣)를 오롯이 담아내는 것을 주(主)로 보는 것인데, 덧붙이면 어떤 것을 표현하는 장르와 재료의 다름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본디 좋고 나쁜 것은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햄릿의 말처럼 미(美)와 예술에 있어 맞고 틀림이 있다고 하긴 어렵다. 그런데 왜 철학자들은 예술을 분류하고 그 의미를 파헤치는 데에 신념을 불태우고 수 세기가 지나도록 격렬하게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을까. 그 모든 철학의 숙고와 논쟁에도 우리는 각자 저 좋은 대로, 저 아는 대로 자연에 대한 경외,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감상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갖고 어떻게 했는지를 크게 따지지 않는다.
『클래식 인 더 가든』의 저자 김강하는 인디안 다코다족의 인사말로 시작한다. “미타쿠예 오야신(Mitacuye Oyasin)!” 모든 섬이 바다 밑에서 육지와 닿듯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김강하는 왜 이 인사말을 프롤로그의 첫 문장으로 골랐을까? 나와 당신,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다른 모습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의 일부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이 세계관은 온화하고 포용적이다. 이를 견지한 채 인문과 예술에 있어 ‘미메시스’라는 일종의 모방 같은 성격을 생각해보면 음악과 그림, 정원을 오가는 이 책의 경쾌한 첫 발걸음으로 이 말이 무척 적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소박한 베란다 정원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미메시스’이고 예술 역시 자연과 세계의 미메시스이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재현(再现, representation)만이 아니라 음악과 그림, 가드닝으로써 자연이나 세계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통로이자 매개체라는 뜻에서 그렇다.
나의 정원에서 사랑스럽고 근사한 꽃들을 찾아내 그것들을 묶어 화환을 만들고 천 개의 생각과 인사를 함께 엮습니다.
_브람스의 가곡 ‘정원사(아이헨도르프의 시)’ 2연의 가사

쉽고 재미있게 쓴 글에 대해 어려운 서평 늘어놓기를 멈추고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 본다. 김강하는 꽃과 나무, 정원을 주제로 한 음악과 미술 작품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음악과 그림, 정원의 삼중주를 더욱 생생히 즐길 수 있도록 삽입한 QR 코드는 일일이 음악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클래식 전문 방송작가이자 진행자인 김강하의 센스와 배려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중간중간 오페라의 역사와 종류, 음악 용어, 실내악 감상에 대한 안내와 발레 음악의 이해,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이외에도 클래식 음악 관련한 교양 지식들을 꼼꼼히 수록하여 클래식 음악 입문자의 기본기를 다져준다. 음악 애호가들이 잘 아는 음악 이야기에는 명화 설명을 더해 또 다른 감상 포인트를 짚어주니 많이 들어봤던 음악도 새롭게 들린다.
『클래식 인 더 가든』은 넓고 넓은 음악이론을 조곤조곤 다정하게 알려준다. 클래식 음악은 지루하리만큼 길고 어렵기만 하고, 명화란 자고로 유럽 배낭여행 갔을 때 수많은 관광객에게 떠밀려 스치듯 지나갔던 작품이라는 편견을 장착한 이들에게 예술 입문 교양서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오,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고 볼 수밖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