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Suffragette 서프러제트

에디터 유대란, 박소정

‘아인슈타인도 한 표, 벙어리 삼룡이도 한 표’가 말이 되느냐고 어느 대학교수가 물었다 한다. 민주주의의 장점이 실은 거기 있다. 1%가 아니면 사실상 벙어리 삼룡이다. 벙어리 삼룡이는 1% 엘리트의 현명함이 아니라 저 자신의 한 표로 자신을 지킨다. —황현산
그 ‘한 표’를 행사하는 것, 지금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권리가 여성에게 주어진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당연히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이 투표권을 얻기까지는 수많은 ‘서프러제트’의 외침, 노력과 희생이 따랐다. 수많은 그녀들 덕에 전 세계 많은 여성은 비로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을 갖게 되었다.

서프러제트
먼저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과 운동가들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이지만, 현재 이 용어는 일반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단어가 파생된 ‘서프리지suffrage’는 공식 정치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19세기 말엽까지 세계 여성 인구 중 투표권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일정 이상의 자산을 가진 소수의 여성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만 21세 이상의 백인 여성에 한하여 투표권이 주어졌다. 자치 국가로서는 뉴질랜드가 1881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고, 남부 호주는 여성의 투표권에 이어 1895년 여성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권리를 승인했다. 일찍이 민주주의가 발달한 영국으로서는 뒤늦게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1918년에 이르러서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고, 1928년이 되어서야 21세로 나이 제한을 완화했다. 1920년 헌법 수정 제19조로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비록 백인 여성에 한한 것이긴 했지만)의 투표권을 인정한 미국에 비하면 뒤처진 것이었다. 변화가 더뎠던 만큼 저항도 강했다. ‘서프러제트’가 당시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것은 영국에서 벌어진 서프러제트 운동이 지구 어느 곳에서 벌어진 여성 운동보다도 격렬했고, 이후 벌어진 전 세계 여성권 신장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서프러제트’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영국이었다.

이름을 갖다
영국 내 여성 참정권에 대한 요구는 19세기 중반부터 거세지고 있었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정치사상을 발전시킨 존 스튜어트 밀이 당대의 대표적인 여성 참정권론자로서 사상적 기틀을 제공했고 점차 지지층을 늘려갔다. 1897년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전국의 여성들이 모여 ‘여성 참정권 협회 국민동맹National Union of Women’s Suffrage Societies’을 설립했다. 그들은 인쇄물을 배포하고, 지역구 회의를 주최하고, 청원서를 넣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벌였다. 곧이어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또 다른 조직을 구성했다. 조직의 이름은 ‘여성 사회정치 연맹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이하 WSPU)’이었다. 팽크허스트는 좀 더 조직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으로, 보수적인 영국 사회는 그녀가 이끄는 WSPU와 팽크허스트에게 갖은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1906년, 일간지 『데일리 메일』의 기자 찰스 핸즈가 연맹의 구성원을 지시하는 야유조의 비하적인 용어를 창안해서 지면에 실었다. 그는 참정권을 의미하는 ‘suffrage’에 ‘작은 것’ 또는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여서 ‘suffragette’라는 말을 만들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차별적인 언어를 기꺼이 수용하고 그렇게 호명되길 자청했다. ‘서프러제트’는 여성 참정 운동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묶어주는 공통된 이름이 되었다.  
‘서프러제트’라는 이름에 얽힌 일화와 유사한 이야기는 수많은 문화 운동에서 발견된다. ‘펑크Punk’는 날라리 또는 문제아를 의미하는 동어를, ‘잡년 행진Slut Walk’은 ‘잡년slut’을, ‘네그리튀드Négritude’는 ‘검둥이’라는 뜻의 ‘네그르nègre’를 채택했고, 동성애자들은 자신을 ‘이상한’이라는 뜻의 단어 ‘퀴어queer’로 부른다. 이는 소외된 삶에 주어진 모욕적인 이름을 채택함으로써 자기의식과 집단적 연대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부정적 인식이 내재된 이름을 적극적으로 재전유하고 현실의 문제를 더 생생하게 드러내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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