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21

K-스러움과 마주하다

글.김민섭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전국축제자랑』
김혼비, 박태하 지음
민음사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수강생들에게 꼭 추천하는 작가가 한 명 있다. 연예인들이 장동건이나 정우성 같은 사람들을 두고 연예인의 연예인이라고 말하듯, 나는 그를 ‘작가들의 작가’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내가 그의 글을 넘을 수 없는 벽처럼 경이롭게 보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는 많은 작가들이 그런 존재이지만, 특히 이 사람은 나만의 기준에서 더욱 특별하다. 그는 일상을 깊고 단단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독자가 글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과 선을 잘 안다고 느껴진다. 수사가 길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고 하니, 김혼비 작가다. 그가 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아무튼 술』을 읽고 나는 김혼비 전집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김혼비 작가와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가 『아무튼 술』에서 표현한, 소주의 첫 잔을 따를 때 난다는 “꼴꼴꼴과 똘똘똘 사이 그 어드매의 소리”가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즉석에서 “이렇게 하면 나잖아요!” 하며 직접 소주를 따르며 시연해 주었다. 글에서 보이는 우아함과 호쾌함에 더해 다정하기까지 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런 그가 다음 책의 주제는 축제라면서 남편인 박태하 작가와 함께 전국의 지역축제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영산포 홍어 축제’ ‘벌교 꼬막 축제’ ‘지리산 산청 곶감 축제’ 같은 곳을 다닌다는데, 나는 그런 축제에 별로 가본 일이 없기도 하고 딱히 재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런 곳들은 온갖 구습의 총체가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작가들이 ‘저 뭘 쓸 거예요’라고 하는 말의 절반 이상은 ‘아이고, 잘 안 되더라고요’로 끝나기 마련이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몇 년 만에 그는 박태하 작가와 함께 쓴 『전국축제자랑』을 출간했다. 이 책은 내 책장의 김혼비 전집 세 번째 책이 되었다. 읽으면서 나는 ‘역시 작가의 작가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굳혔다. 한국의 지역 축제를 두고 내게 바로 떠올랐던 인상들은 편집자나 추천사를 쓴 작가들이 이미 규정한, ‘K-스러움’이다. 축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K-스러운 기억이 있다. 대학생 시절에 교양 필수과목인 ‘축제의 이해’를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다루는 축제는 온통 유럽의 카니발이었다. 교수는 유럽에서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한번도 즐겨본 적 없는 유럽 축제의 기원을 공부하고 발표했다. 이조차 지극히 K-대학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K-POP, K-방역, K-FOOD… 어떤 현상 앞에 K를 붙이는 것은 이제 하나의 밈이 되었다. 이렇게 K라는 접두사를 활용하는 현상조차도 지극히 K-스럽다. 이 국가적이며 민족적인 인정욕구가 어딘가 남부끄럽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김혼비 작가의 새 책은 특별하다. 김하나 작가가 추천사로 적확하게 표현해주었듯, 이 책은 “용감하게도 K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그 흥과 웃김과 얄팍함과 가슴 찡함, 그리고 야만스러움과 진실됨까지 다층적으로 포착해 낸 훌륭한 보고서”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당장 영산포 홍어 축제에 달려가고 싶어졌으며, 우리 지역에는 어떤 축제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K가 난무하는 전국의 축제 현장을 찾아간 김혼비, 박태하 작가는 자신들의 피에 흐르는 K-유전자를 확인하고, 그 안에서 이방인이 아니라 한 명의 K가 되어 존재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자신의 K-스러움을 확인하고 그 실체와 마주하고 싶다면, 유쾌하게 우리의 기원을 향해 달려가는 책, 『전국축제자랑』을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