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october, 2018

Everyone Thinks They’re The Good Guy

Editor. 이희조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하고 느낄 때 있으시죠? 뒤돌아 후회하지 말고 미리 읽어두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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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감정론』 아담 스미스,
비봉출판사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애덤 스미스,
세계사

과연 이 세상에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나 정도면 선한 마음을 갖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며 세상의 수많은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능력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즉 자기혐오에 능한 사람은 많지만 자기를 비도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끔은 ‘사람들이 나 같이만 살면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 않나?(부디 나만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말아달라…)
딱 잘라 말해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국부론』에 가려 빛을 보진 못했지만 애덤 스미스가 평생에 걸쳐 고치고 또 고쳐 완성한 또 하나의 역작 『도덕감정론』에는 이 자기기만의 주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스미스가 보기에 인간은 자기애가 너무 강해 자기기만에 빠지기 쉬운 동물이다. 나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또한 사랑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한다. 제3자의 시각에서 “세상에 어떻게 저런 일을…”이라고 할 일도 그게 내 일이 되면 객관적으로 보기가 훨씬 어렵다. 타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스스로에 대해서는 증거가 아무리 명백해도 같은 태도를 취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겉으로는 사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행을 베푸는 것은, 사실 남에게 사랑받기 위함이고 그렇게 하여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함이다. 실은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되는 일인데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한 선택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즉, 겸손한 사람일수록 그만큼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랄까?
스미스의 논리를 확장하면 조금 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도 모른 채 집단적 자기기만에 빠져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미국 CIA 대테러 센터에서 10년을 일한 한 전직 요원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ISIS에 대한 논의가 굉장히 편협한 시각에서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인들에게 ISIS가 절대 악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이라크나 시리아 국민들에게 미국 또한 이슬람 문명에 일방적으로 전쟁을 선포한 침입자와 다름없다고 밝혔다. 알카에다의 한 군인은 미국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외부 침략자야말로 미국이며, 정작 자신들이야말로 <스타워즈>의 루크, <인디펜던스 데이>의 윌 스미스라고 말했다.
양쪽 모두 네가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는, 명백히 피해는 발생했지만 책임자를 가릴 수 없는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가족과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고 굳게 믿고 있는 군인과 무고한 민간인들 뒤에 사적인 부와 권력을 취하고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드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그들도 스스로 깨닫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자신이 올바르고 정의롭다고 믿고 있을지도.
이처럼 스미스는 자기기만이라는 인간의 속성을 파헤치고 올바른 삶에 대해 고민한 진성 윤리학자였다. (당시에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흔히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인물이며, 철저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키고 사회의 자원도 적절하게 분배한다고 주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인간론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는 인간 내면에는 ‘공평한 관찰자’라는 것이 있어 우리의 부정한 행동에 제재를 걸고 이타적 행동을 하게끔 유도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기기만에 빠지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다행히 이 관찰자의 영향력을 강화해 극복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700쪽에 달하는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가 역설하고 있는 이러한 인간론을 어떻게 『국부론』과 연결해 해석할 것인가는 그가 사망한 지 200년이 넘은 현재에도 여전히 핫한 연구 주제다. 중요한 것은 『도덕감정론』에는 돈벌이 위주의 삶을 변호하는 내용이 거의 없으며, 스미스는 오히려 물질적인 야심을 매우 경멸했다는 점이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도덕감정론』을 짧고 쉽게 요약한 책이다. 직접 원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7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버겁다면 예고편을 보는 것처럼 가볍게 읽어도 좋을 것이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연결 짓는 저자의 해석도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