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1.4kg의 작은 우주

에디터 : 전지윤, 오혜진, 김수미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의학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영역을 세밀하게 밝혀냈다. 그러나 몸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작은 우주, 뇌에 대해서만큼은 다 안다고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정교하고 이해 불가한 뇌는 오늘날 정복해야 할 마지막 대상이자 인간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뇌가 불가사의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온 우리의 고정관념은 뇌에 관한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그저 흘려보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뇌라는 최후의 미지수를 탐구하며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그동안 인류가 궁금해했던 아주 많은 궁금증이, 단지 뇌에 관한 작은 사실 하나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 해소될지도 모른다.
1-뇌에 관한 오해와 진실
“뇌를 더 잘 이해하면, 우리가 개인적 관계들에서 진실로 간주하는 것과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것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_데이비드 이글먼, 『더 브레인』 중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저서 『더 브레인』에서 성인의 뇌를 가리켜 1.4kg가량의 무게를 지니며, 단단한 젤리처럼 기이한 균질성이 있고 전체적으로 깊은 골들이 패인 쭈글쭈글한 물리적 대상이라고 설명한다. 두개골 속에 있는이 이상한 물질은 “우리가 세계를 파악할 때 의지하는 지각 장치이자, 우리의 결정들이 발생하는 장소, 상상이 제작되는 바탕”이다. 우리 각자의 행동과 신념, 의지, 편견 등에 이르는 정신적 과정들은 뇌에서 산출되고 수많은 연결망에 의해 작동되지만,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이 연결망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뇌라는 정교한 기관의 역할과 과정을 ‘인간의 뇌’로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 탓에 뇌의 작동을 절대적이고 신비롭게 여기는 오랜 통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왔다

“‘뇌는 몸의 통제본부control center다’라는 진술을 우리 모두 마주친 적이 있다. 이것은 뇌가 회사의 CEO나 배의 선장과 같다는 의미다. 그것은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 신경과학psychedelic neuroscience(환각제의 신경생물학적인 메커니즘, 뇌 활동에서의 변화를 다루는 신경과학의 한 분야—옮긴이)의 선구자인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는 대뇌 지배적 관점을 열정적으로 극단으로 끌고 가 ‘당신의 뇌는 신이다(Your Brain Is God)’라고 선언했다. (…) 노벨상 수상자인 신경생물학자 에릭 캔델Eric Kandel은 인지 기능이 ‘어떤 다른 것이 아닌 오직 뇌로부터’ 나온다는 고대 철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을‘가장 사소한 반사에서부터 가장 고상한 창조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신 기능은 뇌로부터 온다’라고 재진술했다. (…) 패권을 장악한 뇌와 비교할 때 신체의 나머지 부분은 거의 불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_앨런 재서노프, 『생물학적 마음』 중

생명공학과 뇌·인지과학 분야 최고 수준의 연구자인 앨런 재서노프Alan Jasanoff는 『생물학적 마음』에서 뇌를 지나치게 특별한 기관으로 여겨온 보편적 인식에 반론을 제기한다. 뇌가 인간 행동의 중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뇌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뇌를 전지전능하거나 유일한 통제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뇌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재서노프는 이러한 오류가 여러 문제의 책임을 오직 개인에게만 전가하고 사회적 차원의 대안을 제시할 필요성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그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우리의 마음이 가진 생물학적 본질을 가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심리학, 의학, 신경과학 기술 등 여러 분야에 대한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재서노프는 우리 몸을 조종하는 절대적인 통제센터라기보다, 우리 몸의 각 기관을 연결해서 조율하고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여 전달하는 플랫폼으로서 뇌를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마치 뇌가 절대적인 것인 양 보이게 만든, 이제까지의 뇌과학이 쌓아온 뇌에 관한 신화를 파헤친다.

“뇌는 신체의 나머지 부분과 본질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사고와 느낌이라는 가장 개인적이고 개별화된 측면 중 일부는 이러한 상호작용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만약 당신을 당신으로 만들어주는 일부가 당신의 감정적 측면, 신체적 능력 및 의사 결정을 포함하고 있다면 당신 자신을 당신의 뇌와 동일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
_앨런 재서노프, 『생물학적 마음』 중

2-생각만으로 모든 게 가능한 시대가 올까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는 미래 인류가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의 뇌에 컴퓨터를 이식해 기능을 강화시킨 ‘전뇌’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전뇌를 통한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기 때문에 이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텔레파시를 전달하듯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기억을 데이터처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방영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은 SF 작품 속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꽤 그럴듯한 이야기가 됐다. 바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 혹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Brain Machine Interface라고 불리는 기술이 현실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BCI 연구는 최근 들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BCI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뇌에 기계장치를 연결해 뇌의 신호를 인식하고, 이 신호를 기계가 이용할 수 있도록 변환해 기계를 제어하는 기술을 말한다. 뇌의 신호로는 보통 뇌파를 인식한다. 뇌의 활동은 뇌세포들이 주고받는 전기적 신호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뇌세포 하나의 신호 세기는 매우 약하지만 수만개의 뇌세포가 동시에 신호를 주고받으면 그 세기를 측정할 수 있다. 이 전기적 신호의 흐름을 뇌파라고 한다.

BCI는 뇌의 신호를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침습형과 비침습형으로 나뉜다. 먼저 침습형은 뇌에 칩을 넣어 뇌파나 뇌의 신호를 측정하는 것으로, 정확도가 높지만 뇌에 칩을 넣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한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연구는 주로 원숭이 등의 동물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08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은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과일을 집어 먹게 하는 데 성공했다. 원숭이의 뇌 운동 피질에 머리카락 굵기의 탐침을 꽂고 탐침이 측정한 신경 신호를 컴퓨터로 보낸 뒤, 컴퓨터가 로봇 팔을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리게 한 것이다.

뇌에 칩을 심는다는 생각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람은 그 유명한 일론 머스크Elon Musk다. 일론 머스크는 2016년 ‘뉴럴링크 Neuralink’라는 생명공학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BCI 연구를 시작했다. 머스크는 인간의 지능을 증강시키고, 인간의 생각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2020년 8월, 뉴럴링크는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돼지 거트루드Gertrude를 공개했다. 뉴럴링크가 개발한 이 칩은 가로 23㎜, 세로 8㎜ 크기의 동전 모양이며, 뇌파 신호를 초당 10Mbps 속도로 전송한다. 공개된 영상에서는 돼지가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코에서 뇌로 전달되는 신호가 칩에 의해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어 올해 4월, 일론 머스크는 뇌의 운동 피질에 칩을 이식한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핑퐁게임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원숭이가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할 때 나타나는 뇌의 활동을 기록해 패턴을 분석하고, 조이스틱을 없앤 뒤 생각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머스크는 올해 말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이미 칩 이식수술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뇌 임플란트 로봇 ‘브이투V2’를 선보인 바 있다. 이 로봇은 1시간에 1,024개의 전극을 뇌에 심을 수 있다.

현재 인간을 대상으로 한 침습형 BCI 연구는 사지마비 환자나 뇌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2019년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연구팀은 뇌 신호로 조종할 수 있는 외골격로봇을 개발하고, 사지마비 환자에게 입혀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환자의 뇌에 신호를 수집하는 칩을 심고 걷기와 물건 집기 연습을 반복하게 했다.이 과정에서 뇌 신호를 분석해 외골격로 봇이 작동하도록 만들었다. 약 2년 간의 연습 끝에 환자는 외골격로봇을 입고 손과 팔을 움직이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두피 표면에 센서를 붙이거나, 뇌파를 측 정하는 모자나 헬멧 등의 장비를 써서 뇌파를 인식하는 비침습형 BCI 기술도 있다. 이 방법은 수술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지만, 뇌의 신호가 두개골을 지나 두피 표면까지 도달하는 동안 세기가 약해지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2016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연구팀은 뇌파를 측정하는 모자를 쓰고 여러 대의 드론을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128개의 전극이 달려있는 모자는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드론을 띄우거나, 드론끼리 모이게 하는 등의 생각을 하면 이 신호가 컴퓨터에 전달돼 드론을 조종할 수 있다. 연구팀은 한 사람이 최대 4대의 드론을 조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는 뇌파를 측정하는 헤드셋을 쓰고 드론을 조종하는 대회까지 열리기도 했다. 이 기기를 쓰고서 드론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날아가고,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떠올리면 드론이 옆으로 움직인다.

3-상처 입은 뇌의 세상
얼마 전 오른손 손가락 하나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작은 상처가 생겼다. 어떻게 다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 치고는 꽤 깊었던지라 물이 닿거나 어딘가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컸다. 얼마간 양치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등의 일상적 습관 하나까지 신경 쓰고 바꿔야 했다. 이처럼 우리 몸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조금만 다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뒤틀린다. 하물며 그 부위가 만약 뇌의 어딘가라면? 치매에 걸리거나 정신세계가 지금과 달라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막막해지고 두려움을 느낀다. 뇌의 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거나 완전히 회복하는 방법을 아직 다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이 자신의 현실인 사람들이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국내에 등록된 정신장애, 즉 뇌의 일부가 아프거나 상처 입은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10만여 명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예측 불가한 사람’ ‘이상한 사람’ ‘위험한 사람’이라는 편견 속에서 이들은 병을 숨기거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뇌의 병에 대한 우리의 굴절된 인식을 마주하고, 아픈 뇌를 가진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것이 가능하다.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지도, 불필요한 오해를 빚지도 않고, 그저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의 도움을 빌려서 말이다.

바버라 립스카Barbara Lipska는 신경과학자이자 분자생물학자로서 30년간 정신질환, 특히 조현병의 원인을 찾는 데 헌신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몸 안에 있던 흑색종(멜라닌 세포로부터 유래된 암)이 뇌에 전이되면서 그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뒤바뀌게 되었다. 흑색종의 전이와 방사선 및 면역치료의 이중 공격으로 뇌 전체가 부으면서 전두피질(전두엽의 앞쪽 윗부분에 위치하며, 사고하고 기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이 제자리에서 밀려나고 짓눌리게 된 것이다. 전두엽에 일어난 변화로 인해 그는 치매나 조현병에 걸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과 동일한 증상을 보이게 되었다. 극심한 두통을 앓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의심했으며,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한다는 망상에 시달렸다. 심지어 본인이 정신질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역할 또한 전두엽이 하기 때문이다.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당황스러우며 낯선 일이다. 너무나 혼란스럽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마음,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그들을 가장 믿지 못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안다. 통찰력과 판단력, 공간지각력뿐 아니라 글을 읽는 능력처럼 의사소통에 가장 필수적인 기능을 잃어버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싹한 것은 바로 그러한 결함들을 스스로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_바버라 립스카,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 중

한편, 『오작동하는 뇌』의 저자 히구치 나오미의 사례는 우리의 뇌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는지를 상기시킨다. 그는 뇌의 신경 세포 속에 레비소체(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 등 단백질이 모인 덩어리)가 축적되어 유발되는 ‘레비소체 인지저하증’을 50세에 진단받았다. 치매 중에서 알츠하이머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이 병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각종 어려움을 초래했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어 전처럼 요리를 할 수 없었으며, 환시나 환청을 겪기도 하고, 시계를 봐도 시간을 제대로 감각할 수 없어서 강연을 할 때마저도 타이머를 켜야했다. 또한 뇌에서 수면과 각성을 관장하는 부분에도 문제가 생겨 잠을 자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October21_Topic_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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