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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9

혼술의 맛이란, 푸슈~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와카코와 술』
신큐 치에 지음
AK

술을 좋아해서 다크호스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말술’이라서가 아니라 술자리를 좋아해 최대한 맑고 깨끗한 정신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페이스 조절을 하다 보니 오해를 샀다. 취하는 순간 그 술자리가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은 취기에 반비례한다는 신념으로 잔은 부딪히되 눈치껏 잔을 내려놓거나 ‘쏘사(소주+사이다)’를 좋아한다며 처음에는 소주를 가득 붓고 마실 때마다 사이다를 추가해 점점 알코올 농도를 낮췄다. 어릴 때는 그랬다. 요즘은 젊음의 패기를 넘어 직장인의 객기로 술을 마신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업무 총력기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술맛이 가장 좋을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일탈의 순간이다. 시험이 끝난 후, 퇴근 후, 마감 후가 아닌 시험기간, 점심시간, 마감기간에 술맛이 가장 좋다. 어떤 일 하나 참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기간에 유일하게 스스로의 의지로 호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혀끝에 머무는 씁쓸하고 달달한 맛에 몸이 부르르 떨리면 떨리는 대로, 식도를 타고 소주가 이동하는 게 느껴지면 느껴지는 대로 그 맛이 일품이다.
2014년 12월 국내에 첫 번역본이 출간된 『와카코와 술』은 술을 원하는 혀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매일 밤 혼자 술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젊은 여성의 짤막한 이야기를 모은 만화다. 주인공 무라사키 와카코는 대체로 혼자 술집에 앉아 그날의 상태에 따라 먹고 싶은 안주를 주문한다.(술은 안주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메뉴판은 책을 읽듯 음식 하나하나 맛을 떠올리고, 술집의 손님과 주인장, 공간의 분위기를 살핀다. 혼술의 의미는 ‘혼자 술을 마신다’라고 정의할 수만은 없다. 혼자 술집을 찾아가고, 메뉴판을 훑어보고, 직접 술을 고르고,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과 분위기를 공유하며 그 가게에 흡수되어야 진정한 혼술이라 말할 수 있다.
『와카코와 나』를 동일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머리가 복잡하면 자주 가는 술집, 즐거우면 새로운 술집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안주를 시켜 술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와카코. 기름진 생선구이 한점 먹고, 따뜻한 사케 한 모금. 입안 가득 돌던 기름기가 새콤한 사케와 뒤엉켜 고소한 맛을 내고, 퍽퍽하던 생선 살이 촉촉해지면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노곤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입 밖으로 터지는 탄성. “푸슈~.”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함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도.
혀에 맛이 더해졌을 때 따뜻한 술을. 얇게 자른 무. 단맛과 매운맛 덕분에 꽤나 말끔. 이렇게 되면 다시 가라스미가 그리워져서 또 한입. 또 따뜻한 술. 가라스미의 독특한 풍미는 술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머금어서 맛보는 것. 그러면서 화악 퍼져서 부드럽고도 짙은 향기가 된다.
“푸슈슈~”

올해 10월 혼자 제주도를 다녀왔다. 한 달간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인쇄 감리를 끝낸 그 날, 훌쩍 제주로 떠났다. 제주 공항에 내려 함덕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 혼자 먹고 마실 수 있는 술집을 찾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밥집을 찾기 어려웠고, 술집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본격 혼술’을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그리고 가게에 혼자 들어서서 테이블에 앉자 사장님과 나눈 대화에 계속 혼술이 하고 싶어졌다.
“밥은?”
“아직이요. 방금 막 제주도에 도착했어요.”
“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조금씩 줄게. 소주파? 맥주파? 일단 맥주 한 잔 마시고 시작하자.”
“푸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