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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6

해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ditor. 신사랑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의 기디언이 이상형이다.
해질녘 산들바람과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흡족해진다.
블러디 메리로 해장하길 좋아하고, 영화 ‘황해’를 무려 여섯 번 보았다.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Everybody counts or nobody counts.” (모든 사람은 다 중요해.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도 중요하지 않아.) —해리 보슈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범죄담당 기자였던 마이클 코넬리는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범죄소설가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나 ‘블러드 워크’ 같은 법정 스릴러, 또는 FBI 프로파일러 소설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마이클 코넬리를 있게 해준 ‘효자 캐릭터’는 그의 데뷔작의 주인공이자 가장 많은 후속작을(현재 총 20권이 출판되었다) 탄생시킨 해리 보슈 형사다. 해리 보슈는 외모가 특출나지도 않고, 천재적인 특수 수사관도 아니다. 게다가 재치 가득한 입담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무뚝뚝한 중년 홀아비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그를 등장시키고, 아마존 프라임이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했을 만큼 해리 보슈는 ‘크라임 노블계’의 스타 캐릭터다.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해리 보슈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이름이 특이하다. 히에로니무스 ‘해리’ 보슈. 몽환적인 지옥과 그 속에 버림받은 사람들로 가득 찬 그림을 그렸던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이름과 같다.
소설 속에서는 고급 콜걸이었던 해리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화가였기 때문에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이야기되지만, 사실 그의 이름에는 저자인 코넬리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다. 코넬리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로스앤젤레스를 현대판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s of earthly delights’ (1490~1510경, 히에로니무스 보슈 作)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 화려한 도시, 그 속을 누비는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 하지만 그 실체는 일그러진 야망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환락의 도시에서 주인공 해리는 답답할 만큼 고루하게 사건만을 쫓는 구닥다리 형사 양반이다.
외로운 안티 히어로 해리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열한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거리에서 살해당하고, 청소년 보호소와 위탁가정을 오가며 성장한 그는 16살에 군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후 해리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강력반 형사가 되고, 남다른 수사능력과 피해자들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부당한 권력에 맞서 대항하고 거짓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경찰 상부의 눈 밖에 나서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되고 만다.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 속 세상처럼 지상 세계의 방탕함과 폭력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정화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애쓰는 해리. 그에게는 항상 어둡고 씁쓸한 외로움이 함께한다.
코넬리는 열아홉 살 때 처음 읽은 레이먼드 챈들러의(미국의 범죄소설 작가로서 현대 범죄소설 분야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하드보일드와 필름 누아르의 대가로 불린다) 소설 때문에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데뷔작이자 최고 흥행작인 ‘보슈 시리즈’에는 항상 누아르 장르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코넬리는 재즈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을 정도로 재즈광인데, 이것을 주인공 해리에게 똑같이 반영시킨 점도 흥미롭다. 해리 보슈 소설 속에는 항상 프랭크 모건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이 흐른다. 화려한 도시 뒤의 이면과 감미로운 재즈, 쌉싸름한 위스키, 그리고 경치 좋은 로스엔젤레스의 도로들. 이것이 ‘해리 보슈 시리즈’의 전형적인 매력이다. 출판되는 족족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를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에서는 현실적이고 진지한 사회범죄에 대한 내용을 저자의 기자 시절 경험을 토대로 노련미 있게 시사한다. 지극히 사실적인 범죄와 경찰 조직 속의 복잡한 정치적 관행까지, 보슈의 세계는 현시대의 범죄와 사회상을 명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코넬리의 소설이 중독적인 이유는 해리 보슈라는 어쩌면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걸출한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순응하지 못하며, 정의로움에 젖어 상부에 대항하는 영웅적 형사의 이야기는 지금껏 많이 쓰였지만, 해리에게는 그보다는 모호하고 암울한 그만의 특별한 매력이 분명히 있다.